새벽 내내 길고 자극적인 꿈을 꾸었다. 꿈의 전개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평소 악몽을 악몽인 줄 알면서 꾸고 있을 때가 있는데, 어제는 언제든 깨어날 수 있는 꿈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안심할 여유 없이 꿈에 사로잡혀 있었다.
꿈속에서의 내 남편은 꿈의 구성이 현실적이었던 것에 비하여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도 컸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남편은 꿈속에서 나에게 몹시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 나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집에 왜 안 와요?" 하고 묻는 나에게 "나 오늘 우리 집(시댁) 가서 잘 건데? 내 일에 신경쓰지마."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남편의 차가운 대답에 속상해하고 있는데 꿈 설정으로 새롭게 등장한 남편의 이모님이라는 분이 두 명의 초등학생 아들과 신혼집에 방문하셨다.
현실에서의 나는 남편과 시부모님의 배려로 친척분들의 댁을 돌며 인사드리는 절차는 생략했던 터라 내가 결결혼식장에서 잠깐 뵈었던 분인지 아닌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꿈속에서 처음 만난 가상의 이모님과 그 자녀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흡사 사랑과 전쟁에서 며느리를 구박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남편의 차가운 태도와 냉대, 더불어 가상의 이모님이 주시는 구박을 받으니 꿈속에서의 나는 너무도 슬펐다. 곧이어 나는 으아앙 악 으헝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내가 소리를 내어 울며 신음하자 꿈속 신혼집에 있는 작은 방 하나가 나를 쑥 빨아들였고 그렇게 나는 방에 갇힌 채 더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마망아 무서운 꿈꿨어? 왜 그래?"
남편이 놀라서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내 귓가에도 내가 소리 지르고 끙끙 거리는게 한참 들려왔다. "응." 나는 기운 없이 대답했다. 몹시 안심되었지만 그만큼 민망하기도 했다. 남편은 내가 안고 자는 돼지 인형을 이불속에서 찾아주었다. 남편이 물었다. "무슨 꿈인데?"
"그냥. 엄청 무서운 꿈."
나는 대충 우물거린 후 다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남편이 새벽의 일을 물어왔다. "어제 마망이 엄청 무서운 꿈꿨어? 엄청나게 놀라더라. 내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냐고 물었는데. 기억나?"
"응."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게 사실 꿈에서 사랑과 전쟁처럼 오빠 친척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꿈이었는데. 게다가 오빠는 나를 좋아해 주지 않았어. 그래서 너무 슬펐어."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큭큭 그래서 어제 무서운 꿈이었냐고 물으니까 그냥 그렇다고 한 거구나. 큭큭
친척들이 나를 괴롭히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난 뒤 괜히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친척들 험담을 한 것만 같아 미안해졌다.
"미안해. 친척분들이 싫고 그런 게 아니라. 꿈에서 내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았어. 그냥 그게 너무 무서웠나 봐."
# 장면 2
"마망아 내 차 열쇠 어디 있는 줄 알아?"
오늘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싣고 막 환승할 지하철을 타러 바삐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남편이 전화를 걸어 차키의 행방을 물었다.
차키? 아! 그러게, 내가 어제 차를 옮겼는데 말이야. 하며 기억을 더듬던 내가 지하철역에서 울상이 되어버렸다.
어제 몸이 안 좋아 2시간 늦은 출근을 하며 남편의 차키를 잠시 사용했다. 순간 이중 주차가 되어있는 남편의 차를 뺀 후 내 차를 꺼내고 다시 주차해 놓았던 게 생각났다. 평소 이런 경우 우편함에 차키를 넣어놓는데, 어제따라 우편함이 안전하지 못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화근이었다. 우편함은 안전하지 않으니 내 가방에 넣어가야지. 오늘 내 차를 가지고 퇴근하면 분명 남편의 차를 다시 빼야 하니 차키를 깜빡하는 일은 없을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 어제 오후 느지막이 읽고 싶어 주문한 책을 배송받았고, 퇴근길에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에 차를 두고 퇴근했다. 그러고 내 가방 속 차키의 존재는 완전히 잊은 채 열심히 출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몸이 안 좋아서 2시간 늦게 출근한 게 화근이었어. 내가 엄살만 부리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너무너무 미안한데 어쩌지. 미안함이 깊어지며 더 끔찍한 죄책감이 들었다.
"정말 너무 미안해. 미안해." 아무리 미안하다고 말해도 내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각이 확정되서 안 그래도 정신없을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카톡을 보냈다. 회사에 연락하고 부랴부랴 나가느라 핸드폰을 볼 시간도 없을 사람에게 연락한 것이다. 정말 미안하다고. 연거푸 말했다. 내 마음 편해지려고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남편은 회사 상사분에게 어찌어찌해서 어쩔 수 없이 늦게 되었다고 연락드렸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앞으로 차키는 우편함에 꼭 넣어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무도 우리 차는 안 가져갈 거라며 우편함의 안전함도 강조했다.
"응 알겠어. 그렇게 할게. 오빠의 아침이 엉망이 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괜찮아. 그 대신 이따 저녁에 OO 과자 한 봉지 사줘."
"알겠어. 두 봉지 사줄게. 어깨랑 등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마사지해 줄게."
자책하다가 나의 아침을 망쳐버리지는 않을까 배려해주는 남편의 말 덕분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내가 미안해하고 있을 모습에 미안함이 들었던 남편과.
내가 미안해하고 있을 모습에 미안함이 들었던 남편에게 미안한 나.
우리의 혼란스러운 새벽에 이어 혼돈의 아침은 사과로 시작해 사과로 마무리되었다. 엄청나게 미안해하고 보니 엄청나게 고마운 것도 알게 된 오늘의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