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유일한 요리사

할머니

by mamang



나는 주말 아침마다 신랑보다 일찍 일어나서 신랑이 일어나길 기다린다.

주중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따뜻한 차를 마시고 책을 읽다가 출근 준비를 하는 게 루틴이라 익숙한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주말 아침은 꼭 신랑이 수동 커피머신으로 커피 알을 '드르르륵' 갈고 우유 거품을 '치이 이익' 하고 만들어주고 하트를 그려주는 라떼를 마셔야 진정한 주말이 온 것만 같다.

요즘은 아침 7시면 주말에도 눈이 떠지다 보니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은 조용히 신랑이 일어나길 기다리다가 그래도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이면 스르륵 침실에 가서 발부터 다리까지 주물러 준다.


마망 : "오빠아~~ 시원하지? 그치?"
오빠 : "응 너~어무 시원해."
마망 : "주물 주물 주~우 물 잘 잤어유?"
오빠 : "응 엄청 잘 잤어."
마망 : "다행이야! 주물 주물 주~우물"
오빠 : "마망이 커피 마시고 싶구나? ㅋㅋ"
마망 : "으응? 아 허허 아니야 그냥. 나는.. 허허"


그럼, 이왕 마음을 들킨김에 냉큼 거실로 나와서 커피머신 옆에 우유를 당당히 꺼내놓는다. 나의 예쁜 라떼를 기다리며.(오예!)


오늘 아침도 신랑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나의 주말 첫 라떼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서 라떼를 영접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경건하게 기다리고 있었고, 오빠는 수동 커피머신 앞에서 우유의 거품을 정성껏 내고 있었다.


우유 거품 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라떼만드는 오빠를 보고 있으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다.


'내가 에스프레소 내리는 법도, 우유 거품을 만드는 법도, 멋지게 라떼아트 만드는 법도 배워서 오빠보다 더 예쁜 라떼를 만들게 되면 오빠의 마음은 어떨까? 그리고 우리의 주말 아침 풍경은 어떻게 바뀔까?'


우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주방에 나와서 나만을 위한 라떼를 만들겠지? 그럼 혼자만의 커피 타임을 즐기게 될 거야. 오빠가 어서 일어나길! 나의 귀한 라떼를 어서 만들어 주시길!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 나의 소중한 바리스타여! 일어나소서! 어서 이 불쌍한 소녀에게 귀한 주말의 첫 커피를 선물해주소서!'라며 간절한 마음으로 오빠의 다리를 주물러 주는 일은 줄어들겠지? 오빠에게는 누군가 다리를 주물러 주는 걸 느끼며 잠을 깼던 행복한 주말 아침이 사라질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오빠만이 우리 가족 중(가족 구성원이 아직 딱 2명이지만 말이다) '유일한 바리스타'라는 존경심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니,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났다.





우리 할머니는 우리 집의 '유일한 요리사'였다.

우리 할머니만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켤 수 있었고, 칼로 뭔가를 숭텅숭텅 썰어낼 수도 있었고, 무서운 게도 맨손으로 잡을 수 있었고, 게를 물리쳐서 맛있는 해물탕으로 변신시킬 수 있었다. 계란이 적당히 익은 맛있는 라면도 우리에게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었고, 오징어도 딱딱하지도 말랑하지도 않게 구워서 우리 세 자매가 싸우지 않게 나눠줄 수 있었다.(막내 동생은 나이차가 커서 세 자매가 함께 겪었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많다.) 딸기의 개수도 딱딱 맞춰서 각자의 그릇에 덜어줬고, 뜨거운 그릇도 냄비도, 어쩔 때는 부침개를 지지며 뒤집개를 잡지 않은 다른 맨손으로는 전을 뒤집는 걸 도와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정말 못하는 게 없었다.


마망 : "할머니~ 안 뜨거워?"
할머니 : "할머니는 손꾸락이 두꺼운 께 뜨거운지도 몰라야."
마망 : "할머니는 언제부터 손이 두꺼웠어?"
할머니 : "시골 살 때부터 그랬제. 기억도 안나제 인자."


내가 7살 때였나, 할머니가 내 짐과 할머니 짐을 싸서 시골에 있는 할머니의 오빠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그냥 '우리 할머니'였는데, 할머니에게도 오빠가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는 우리 집의 '유일한 요리사'였는데, 우리 집에서의 할머니가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의 전부였는데. 할머니가 버스를 탈 줄도 안다는 것, 할머니가 '방울빵'이 맛있다는 것도 안다는 것, 할머니가 나는 처음 가보는 구불구불 시골길도 잘 찾아갈 수 있다는 것, 할머니 손을 잡고 간 할머니 오빠의 집에 진짜 '할머니의 오빠'가 있었다는 것. 심지어 할머니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그 모든 여정 내내 너무 놀라웠다.

'아가씨 아닌데, 우리 할머닌데.' 하는 질투심도 있었을까? 나한테만 소중한 우리 할머니였는데 할머니를 반가워하고 예뻐해 주는 사람이 이런 시골에도 있었다는 게 어린 나이에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할머니가 혼자 시골을 간다고 하면 할머니가 집을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언니 둘까지 있지만 항상 집에서 나를 변함없이 기다려준 사람은 우리 할머니뿐인데. 할머니가 없으면 나는 더 이상 방앗잎이 들어있는 맛있는 부침개도 못 먹고, 맛있게 구운 오징어도 맛볼 수가 없으며 언니 두 명이 매일 나를 괴롭혀도 말려줄 사람도 없잖아. 이제 나는 굶어서 죽고 말 거야.'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앞으로도 모든 음식은 할머니 손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에게 "할머니! 이거 저거 먹고 싶어!" 하면 "내가 이 집 종 이제!" 하면서 투덜댈 때도 물론 많았지만, 할머니는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주고 배가 찢어질 것 같다고 할 때까지 뭔가를 우리에게 먹여줬다.




내가 절대 잊지 못하는 어릴 적의 몇몇 장면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슬펐던 건 저녁에 할머니가 모로 누워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던 장면이다. 나는 항상 할머니 오른편에서 벽을 마주 보고 자야 했는데, (할머니는 내가 그렇게 벽과 할머니 사이에서 안 자면 잠버릇이 심해서 티비 아래까지 굴러가버린다고 했다.) 초저녁인가 저녁인가, 내가 잠결에 눈을 떠보니 할머니가 내 반대편으로 등을 돌리고 울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울 줄 아는 사람이란 걸 몰랐다. 나는 맨날 속상해서, 아파서, 화가 나서 울고 할머니가 달래줬었는데. 할머니를 달래본 적이 없는 나는 어깨를 들썩이는 할머니의 울음을 어찌 멈춰줘야 하는지 몰랐다. 할머니는 내가 울면 안아줬었는데. 나보다 덩치가 큰 할머니를 어떻게 안아주지? 내가 친구들 앞에서 울면 창피한 것처럼 할머니도 나에게 울음을 들킨 걸 알면 창피할까?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할머니에게 "할머니 아파? 울지 마 할머니. 왜 울어? 응? 울지 마." 하며 어깨를 조금씩 만져줬다. 할머니는 내 말을 못 들었는지 너무 속상했는지 그 후로도 한참을 울었다. 유일한 요리사였던 우리 할머니에게도 힘든 일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점점 자라면서,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재미있어질 즈음부터 나의 투정이 늘었다. "라면을 직접 끓여볼 거야! 나는 할머니가 끓여준 라면보다 꼬들하게 먹을 거야!"라는 투덜댔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라면이 안 불믄 소화가 안 돼야. 아니 물은 더 넣어야제. 계란은 왜 안 넣는다냐!"했다. 나는 "아니, 할머니 라면을 조금 덜 익혀도 맛있더라니까. 내가 친구 집에서 먹어봤어. 계란을 안 넣어야 국물이 맛있더라고. 계란을 넣으면 국물이 탁해지잖아. 아니, 우리가 알아서 한다니까." 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나에게 토요일은 항상 '할머니와 목욕탕 가는 날'이었는데, 찜질방이 유행하던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부터 "나도 친구들이랑 목욕탕 가보면 안 돼?"하고 조르기도 하고, 조금 더 커서는 "내일 목욕탕 가자"하는 할머니의 말에 "나 친구들이랑 찜질방 가기로 했어 할머니"하기 시작했다.




언니들이 모두 서울로 대학을 가고 집에 직장인이 된 나와 남동생이 된 나만 남았을 때까지도 할머니가 해놓은 국과 밥을 먹는 대신 뭔가를 시도해보려고 주방에서 비닐 포장을 뜯으려고만 하면 귀도 밝은 우리 할머니가 주방으로 나와서 "뭐 하려고?" 하면서 라면을 끓이겠노라고 하면 냄비에 바로 물부터 받는다. 한 번은 요즘 '불닭볶음면'이 유행이라는 동생말에 함께 편의점에 가서 '불닭볶음면'과 함께 넣으면 맛있다는 '비엔나 소시지'를 사 왔다. 할머니 몰래 살금살금 부엌에 가서 포장을 뜯어보려 하니 어느새 할머니가 주방으로 나와서 "뭐 할라고?" 묻는다. 나와 동생은 멋쩍어서 "아니, 라면 같은 거 해서 먹어보려고." 한다. 할머니는 "라면이 뭐가 좋다고 그리고 먹어 쌌냐!"하고 툴툴대면서 라면 끝일 물을 냄비에 올려준다. "라면 어디 있냐"며. "한시도 가만히 못 쉬게 한다"며 툴툴거린다. "아니야. 할머니 이건 컵라면처럼 물만 부어서 소시지는 전자레인지에 몇 초 돌려서 라면에 넣어서 먹는 거야. 이거 그냥 이렇게 커피포트에 물만 넣어서 끓이면 된다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하니 "그래! 알아서 해라!"라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집의 유일한 요리사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때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우리 집 요리사에게 상처가 되는 말인지도 모르고 "할머니,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아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라는 말을 해댔다. 정말 나빴다.




엄마 아빠는 32년 동안 연중무휴로 식육식당을 하셨다. 저녁에 눈만 붙이고 가게에 나가는 생활을 했던 엄마는 식당이 문을 닫고 식당 문을 닫은 후 32년 만에 얻어낸 휴가라며, 이제는 퇴직했으니 쉬엄쉬엄 나 하고 싶었던 거나 하며 살겠다며 신이 났다. 가족들 모두 엄마가 그러길 바랬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줄 알았던 엄마는 냉장고를 청소을 시작하더니 또 어느 날은 찬장에 있는 그릇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가족들이 먹을 보리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반평생을 식당일만 했던 엄마라서 항상 빨리빨리 우당탕당 그래서 조용했던 주방이 너무 시끄러워졌다. 평생을 식당일을 했는데 집에서는 왜 또 부엌에 집착을 하는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면, 할머니는 엄마가 식당을 했던 시간 이상을 자신만의 부엌에 출근해서 온종일 가족들을 위한 밥, 국, 반찬을 만들어내고 마실 물도 보리차, 결명자, 둥굴레를 넣어 정성스레 끓여내는 삶을 살아왔다. 엄마가 집안 살림을 어쩔 수 없이 못할 때는 그렇다 하겠지만, 이제는 엄마가 우당탕당 하더라도 어찌 되었던 살림을 해보겠다고 하니 기꺼이 할머니가 '살림권한'을 엄마에게 넘겨줄 거라 생각했다. 지긋지긋한 이놈의 살림! 하면서 옛다! 하며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와 할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자의 반찬, 각자의 살림을 해내기 시작했다. 넓지 않은 부엌에서 서로의 동선이 자주 겹쳐서 예민해지는 게 눈에 보였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살림'을 했다. 무엇보다 가장 곤욕인 것은 누가 한 반찬을 더 많이, 맛있게 먹어야 하는 가였다. 가족들이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할 때가 되면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하는 엄마, 할머니의 말에 아빠, 나, 동생은 무엇부터 먹어야 하는지, 어떤 반찬을 어느 정도 맛있다고 해야 하는지 그도 아니면 아무 말 않고 먹어야 하는지 도대체 감을 잡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집 유일한 요리사였던 할머니는 이제 머리가 커서 '알아서 할 수 있다'라고 우기는 손주들과 '이제는 나도 엄마 노릇을 해보겠다'는 엄마에 밀려 요즘은 아주 몇 가지 음식만 하신다.

부엌의 대부분은 엄마의 차지가 되었고 부엌은 엄마의 공간이 되어 요즘 무척 우당탕탕하는 중이다.

할머니는 이제 우리가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고 음식을 해봐도 더 이상 깊게 참견하지 않으며 궁금해하지 않는다. 옛날 할머니가 등을 보이며 울었던 때로 돌아가면 할머니를 꼭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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