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망 : 오빠. 나 얼굴 커? 오빠 : 아니야. 누가 그래? 마망 : 음. 어제 다녀온 피부과 의사 선생님이. 오빠 : 응. 의사 선생님이? 마망 : 원래 얼굴 자체가 큰 거래. 뼈도 크데. 오빠, 마망 : 큭큭큭큭.
웨딩 촬영을 마치고 나는 다짐했다. 사실 나는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결혼을 앞둔 주제에 치킨과 치즈볼을 먹어버렸으니 말이다. 웨딩 촬영 전날 예비 신랑의 "치킨.... 먹을까?" 하는 한마디에 나는 내가 대답도 생략하고 핸드폰을 들어 아주 당장 주문을 해버렸으니까.
그런데 결과물은 너무 부어있었다. 괜히 사진 용량까지 함께 부어버린 것 같았다는 건 오버일까. 어쨌든 나는 웨딩 촬영의 원본 파일을 받은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핸드폰으로 봤을 때는 그나마 조그맣고 예쁜 사진들이었는데. 집에 도착해서 신랑과 노트북에 담긴 사진을 보니 나는 2천 장이 넘는 이 사진들 중에서 내가 살려두고 싶은 사진이 과연 있을까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굴욕적이었던 것은 대략 이러했다. 얼굴은 잔뜩 예쁜 척을 하고 있는 사진에 나의 통통한 팔뚝살 옆에 귀여운 부유방이 까꿍 하고 나와있다거나, 이를 드러내 보이며 양 볼을 귀엽게 추켜올려서 웃고 싶었던 사진이었는데 광대가 너무 튀어나와서 광대 특수 분장을 한 것 같다거나. 자연스럽게 까르르 거리며 웃는 파파라치 컷을 예상했는데 투 턱이 잡혀있다거나. 등의 진땀 나는 상황 말이다.
촬영해주신 분들께서 이걸 다 보셨을 생각을 하니 창피함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웨딩 촬영은 "보정하면 돼"라는 생각으로 자기 위안을 했는데, 보정으로 하객들을 속일 수 없는 본식을 앞두니 벼락치기는 하는 것처럼 마음만 몹시 급해졌다.
20대에는 살을 빼려고 마음을 먹으면 금방 빠졌다. 살이 빠지는 것과 함께 얼굴살도 조금씩 올라붙었었는데. 30대 중반에 하는 결혼을 앞두고 살을 빼려고 해도 잘 빠지지 않고 살이 빠지면 탄력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어쨌든 살은 안 빠졌지만 허허)
아무튼 그렇게 다이어트와 탄력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고민을 하던 중 최근 결혼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꿀이 흐르는 듯하였고, 그래서 그대는 너무나 여신 같았다. 그리하여 그대의 비법이 궁금하여 이렇게 연락을 한다. 뷰티 비법을 과하게 캐묻는 것은 예의가 아닌 줄 아오나, 나도 꿀이 흐르는 피부로 결혼식장에 입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연락을 해보았다. 그간 우리의 깊은 우정을 생각하여 미미한 조언이라도 이 소인에게 나눠줄 것이 없는가. 친애하는 나의 친구여.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들은 후 '레이저 리프팅'을 시술받았으며, 금액이 만만치 않았지만 그만큼 너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결혼은 1달여 남기고 그녀가 소개해 준 피부과에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예비 신랑에게 나의 고민을 주욱 늘어놓고 통보하듯이 "오빠 나 다른 거 아~무것도 없어도 되니까 100만 원만 나한테 투자해주라." 신랑은 "100만 원이면 몇 회 관리받는 거야?" 하고 답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응. 그거? 딱 한번 하루 가서 받는 거야. 피부의 진피층까지 레이저가 들어가서 피부 조직을 단단하게 ~~ 불라 불라 ~~ " 신랑은 잔뜩 어두워진 얼굴을 하고 말했다. "마망아. 그런 거 안 해도 돼. 결혼식 진짜 금방 끝난다더라. 차라리 오래가는 다른 걸 사주라고 해." 나는 준비했던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오빠. 내 이야기 들어봐. 오빠의 회사 동료들, 지인들, 친구들이 앞으로 나를 몇 번이나 보겠어? 평균적으로 평생에 딱 한번 정도 아닐까? 그럼 이왕이면 예쁜 아내로 기억되는 게 좋지 않아? 내 말이 맞아? 틀려?"
그렇게 100만 원을 오빠에게 빌려 피부과에 갔다. 청담동의 피부과는 좋은 냄새가 나고 조용하고 고급스러웠다. 내 차례가 되었고 원장님께서는 친절하게 시술 원리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원장님의 설명만 듣고 있어도 피부가 좋아질 것만 같았다. 원장님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원장님은 양손의 열 손가락으로 나의 광대, 턱, 이마를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만져보고 눌러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요상하게 쿡쿡 찔러보고 눌러보시더니 원장님이 입을 열었다.
"음. 마망님께서는 음. 일단 얼굴뼈 자체가 크시고요. 그 말은 기본 뼈대가 있어서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을 수도 있다는. 그게 음. 네 확실히 턱 라인에 있어서는 효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자신 있던 초반 설명과 달리 약간 산만한 설명을 해주신 원장님은 나의 경우에 적합한 레이저 리프팅 2가지를 혼용하여 시술할 것을 제안해주셨다. 나는 민망함을 감추고 원장실에서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다.
"원장님께서 2가지를 함께 혼용할 것을 제안해주셨는데요, 총가격이 500만 원입니다." 친절한 상담 실장님이 말씀해주셨다. 가격은 친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는 소리 내어 이렇게 말해버렸다.
"저 100만 원 밖에 없는데요."
상담실장님과의 밀당 끝에 나는 최소한의 최소한의 돈만을 쓰고 왔는데 암튼 무지 큰돈이었다. 1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내 피부 진피층 어딘가에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를 내고 있을 거라 그렇게 믿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2주에서 3주는 기다려야 효과가 나오기 시작한다는데. 결혼식이 다가오자 마음이 너무 급해져서 나는 각종 림프 순환 마사지와 괄사 마사지를 유튜브에서 찾아 매일 아침저녁으로 해주었다. 그러다가는 용돈 중 20만 원을 들고 동네 골격 마사지 샵에 갔다.
"안녕하세요. 제가 결혼식을 2주 남겨놓고 있는데요. 원장님 제 얼굴 좀 스몰 하게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원장님이 내 얼굴을 요리 저리 보며 말했다. "조금만 더 빨리 오시지. 얼굴 반쪽 만들어드렸을 텐데."
그래도 인심 좋은 원장님께서는 단기간에 효과가 나오면 나도 장사 못하지만, 예신님이 워낙 급한 상황이라 해준다며 겨드랑이고 뒷목이고 쇄골이고 순환에 좋은 마사지를 잔뜩 해주셨다. "원장님. 돈이 정말 좋네요. 겨드랑이가 뚫린 기분입니다." 겨드랑이가 가벼워진 나는 또 오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
결혼을 앞두고 나는 치킨과 군것질을 정말 끊었었다. 그러면서 살을 빠졌는데, 배고픔 때문인지 점점 성격이 좋지 못한 뾰족한 여자가 되어갔다. 덕분에 뱃살도 얼굴도 날씬한 결혼식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사진 속의 나와 지금의 나의 간극이 너무 커서 결혼 1년이 지난 지금도 본식 사진 선정을 못하고 있다는 거다.이 사람 지금 어디 있느냐는 놀림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신랑에게 어서 사진 고르자는 재촉도 하지 못한다.
(달라도 너무 달라 큭큭큭)
왜 그럴까. 결혼식을 앞둔 사람들은 왜 종종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인지 말이다.
나의 경우에는 특히 그랬다. 그 시작으로는 평소 크게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던 나의 외모가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나의 동글동글한 얼굴은 드레스에 어울릴 것 같지 않았고, 더불어 내 목이 다른 예비 신부들에 비해서 너무 소박하고 짧게 겨우 붙어있는 모양새인 것 같았다. 나중에는 나의 턱선은 왜 조금 더 뾰족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것부터 살을 왜 이리 더디 빠지는 등 총체적인 외모 고민과 비하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의 수수함이 못마땅해졌다. 수수한 얼굴, 수수한 몸, 수수한 나의 돈, 수수한 나의 배경도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이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구들에게 부디 무리해서 결혼 준비하느라 불행해지는 길은 선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친구 한 명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더 자세히 알아보고 고민하고 할 걸 결혼식에 너무 신경 쓰지 못한 게, 딱 한 번뿐인 결혼식을 만끽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데. 합리적이고 행복한 선택을 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 어렵다.
그나저나 지금 나에게 그 100만 원이 다시 주어진다면 뭘 했을까. 오빠와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 먹거나 커플 운동화를 사서 신거나 했을까. 나는 아직 피부에 다 양보해버리기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