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전쟁

누가 그들의 노력을 가벼이 여기는가

by mamang



공대여자 : "똑똑똑. 동생아. 시험 결과 언제 나와?"
동생: "7월 10일인데.. 내년 준비해야 할 듯. 커트라인 너무 높게 나왔어..."
공대여자 : "에고 고생이네 ㅠㅠ"
동생 : "어쩔 수 없지..."
공대여자 : "에구 지치지 말고"
동생 : "그랭 고마웡"



문송 하지 말입니다


9살 어린 내 남동생은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이기 때문에 진로 고민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동생이 전공한 어문계열의 졸업생들은 대부분 부전공 또는 복수전공을 해서 어문계열이 아닌 분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어문계열에서 직업을 구하고 커리어를 쌓아가기 위해서는 전공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에서의 유학은 기본이고, 한국말보다 외국어가 편할 정도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학생들이 천지에 널려있는 게 현실이라 그들과의 경쟁은 '시작점이 다르다'는 무력함만 줄 뿐이다. 취업 준비를 2번이나 해 본 누나라고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자신했지만, 공대여자인 나는 동생이 하는 고민 반의 반도 줄여주지 못한 것 같아서 지금도 항상 미안하다. 동생은 자격증까지 도합 2년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인문계열 학생들 대부분의 구직 방향은 대략 '경제 경영 또는 행정직'으로 향한다. 이는 '공과대학, 자연계열 전공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지원할 수 있는 직종'을 의미한다. '경제 경영 또는 행정직'이라 함은 남들이 준비하는 것은 다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니 준비해야 하는 '스펙'의 '스펙트럼'이 말도 못 하게 넓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동생 또래의 대학생들은 4년 내내 전공과목 이수와 취업 준비에 필수적인 어학(해외연수, 어학 시험 점수), 봉사활동, 동아리 등 대내외 활동은 기본으로 해내야 한다. 여기에 부전공, 복수전공, 심지어 제2외국어까지 시간을 쪼개서 얹어놓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8번의 방학까지 계절학기로 꽉꽉 채워 사용한다.


'행정직, 경영관리직'이라고 말하는 포괄적인 의미의 이 직종은 대부분 진입 장벽이 낮다. 이는 스펙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입할 수 있는 학부 졸업생들의 범위 또한 포괄적이기 때문에 정해진 선발인원에 비해 지원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해당 직종 대부분이 어문계열, 경영, 경제 등 전공을 막론하고 지원할 수가 있어 어디에서 어떤 고 스펙을 가진 고수가 지원할지, 도대체 몇 명이나 지원하게 될지. 내 자기소개서는 읽힐 수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2015년 전후로는 심지어 '국가 직무능력표준'을 뜻하는 'NCS 평가 제도'가 각 공공기관 채용에 도입되었다. 경영관리, 공업시설 등 각 직무를 직렬별로 세분화하고 각 직렬에서 갖추어야 하는 직원들의 역량을 분석한다. 이를 자기소개서(또는 입사지원서)의 항목에 녹여내고 서류 심사(자기소개서, 자격증, 학점 등을 확인하는 단계)를 거친 지원자들만이 필기시험에 응할 수 있다. 행정 관련 직무는 지원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행정직 NCS 통과를 하려면 빛의 속도와 같은 문제 풀이 능력과 높은 정답률이 좌우한다.


실제 취업 준비 기간 중 1년을 함께 공부했던 동생 하나는 스터디원 중에서 스펙과 문제 풀이 능력이 가장 탁월했다. 당시 새롭게 도입된 NCS(국가 직무능력표준) 문제 풀이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해냈기 때문에 모두들 이 친구가 가장 빨리 취업을 해낼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하지만, 스터디원 중 유일한 인문계였던 이 동생은 그 후 원하는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은 해야 하고 경력에 공백을 두기에는 부담이 돼서 3년간을 당장 그만두고 싶은 회사에 적을 두며 어학 점수를 갱신하고, 연차와 주말을 반납해가며 구직 활동을 이어갔다.

결국 이 동생은 이직에 성공했지만, 높은 문턱을 앞에 두고 돌아서야 했던 많은 학생들은 지금 원하는 일을 하고 있을까.



거절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구직에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거절들을 감수해야 할까.

취업 준비생들이 본격적으로 구직 시장에 뛰어들기 전까지, 즉 입사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까지 대략 1년 이상이 소요된다. 정식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고 나서부터는 개개인의 노력 및 역량에 따라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까지 소요되기도 한다. 1년에 최대 2번의 공채가 있는 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업 및 공공기관은 1년 단 한 번의 채용 계획이 있기에 한 번 흐름을 타지 못하면 수년 째 입사지원서를 쓰게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구직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어학 점수 만료'(대부분 2년 이내)를 만나게 된다.


취업에 대해 질문하는 후배들에게 나는 앞으로의 구직 여정을 셋으로 나누어 냉정하게 설명해준다. 1단계(입사지원서 조차 받아주지 않는다), 2단계(그나마 필기시험은 볼 수 있게 된다), 3단계(이제 면접에서 엄청나게 떨어져 봐야 하는 단계)를 거쳐야 시행착오의 경험치가 쌓이게 되어 합격과 가까워진다. 각 단계는 최소 6개월이니 이왕 하는 거 짐을 단단히 싸서 먼 길을 차분히 가보자고 조언한다.

기본 스펙을 만든 후 초반 6개월은 입사지원을 계속하면서 내가 거절당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거절당하지 않고 바로 회사의 간택을 받는 일이지만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취준생들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불균형 탓에 매년 반복되는 공채에도 준비생들은 항상 혼란스럽다. 취준생들은 본인의 어학 점수를 몇 점까지는 만들어야 할지, 이번 입사지원은 어학 점수로 떨어진 건지 자기소개서로 떨어진 건지 학벌로 떨어진 건지 도통 감을 잡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게 취업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탈락, 합격 사례들을 보면 모두 나보다 나은 것 같이 느껴져 매번 자신감은 떨어지게 된다. 어학 점수를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했으나,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서 영어부터 해야 하나? 아니면 자격증을 더 따야 하나? 아니면 도서관을 박차고 나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험을 추가해야 하나. 그야말로 열등감으로 뭉쳐 그들만의 먹구름을 몰고 다닌다.


첫 6개월을 무사히 보내고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자소설'로 만들어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내가 다 해내버릴 것 같은 가상의 인물 '나'를 만들어 놓는 데 성공한다. 필기시험의 필수 절차인 '인성검사'에서는 조직에 순응적이고 적응력이 뛰어나고 적극성이 있고 성격도 좋은 또 다른 '나'를 가상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자아 분리의 경지까지 오르게 되면 이제 서류 심사에 족족 합격하게 된다.


이제 또 다른 6개월은 최대한 많은 필기시험에 응시하고 많이 떨어져 봐야 한다. "회사 입사 필기시험은 돈 주고도 못 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비슷하게 출제되고 복원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의 분위기를 느끼며 실전 연습을 하는 것은 그 가치를 매길 수가 없다. 직접 시험에 응해야 하니 하루를 통으로 빼앗길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필수적으로 회사 리스트를 축소해야 한다. 사기업과 공공기관 중 하나를 선정하는 것을 필수이며, 하나를 골랐다면 그 대상 중 상하반기 공채 일정 중 내가 실제 시험에 응하고자 하는 회사 5개로 축소한다. 집중력을 분산하는 것보다 지난 시험들을 복기하고 정말 가고 싶은 회사의 다음 시험을 위해 칼을 갈아놓아야 한다.



"재능보다는 훈련, 열정, 행운이 우선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 제임스 볼드윈


이제 필기시험을 조금씩 합격하기 시작하는 금 같은 6개월이 그들을 기다린다. 지난 공채에서 필기시험에 떨어졌거나, 입사지원서 단계에서 탈락했던 회사들의 필기시험에 응시할 기회도 생기기 시작한다. 입사 지원서 탈락 6개월, 필기시험 탈락 6개월의 쓴맛을 충분히 경험했다면 이제 이 단계는 순풍에 돛 단 듯 마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면접비 벌려고 면접 다닌다"는 일부 고스펙 구직자들처럼 나도 드디어 당당하게 면접비도 받고! 당당하게 내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단계가 된 것이다. 나의 경우는 최종 면접에서 7번 이상 탈락한 후 8번째 회사에 합격했다. 조금만 더 파면 다이아몬드가 나올 것이다!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




공대생이라서 감사합니다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던가.

토목을 전공한 나는 졸업하면서 친구들을 따라서 '기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토목'과 유사한 업무를 하는 직종에 지원했다. 돌이켜보니 '공업직', '기술직'으로 취업문을 두드려볼 수 있었던 나는 동생에 비해 아주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전공이 확실하게 나눠져 있고 업무 분야가 명확하기 때문에 입사 지원을 할 때 인문계 친구들보다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으며, 불특정 한 회사의 직무를 두고 지원 여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지원하고 맥이 빠지는 감정 소모에 대한 부담 또한 덜게 되었다. 나는 단지 내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정하고 전공을 정했을 뿐인데. 게다가 엄마가 친척 오빠에게 조언을 듣고 와서 점쟁이가 찍어주는 학과를 정해주는 대로 지원했다.(공대 여자 사회생활 중 기나긴 시간 동안 나에게 많은 원망을 원격으로 들어야 했던 친척 오빠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


요즘 내 동생은 누나에게 의지하는 대신 꾸준히 '내가 뭘 하고 싶은가. 나는 뭘 해야 하는가.' 나름의 질문을 던지는 사람처럼 묵묵히 뭔가를 시도하고 참 성실하게도 꾸준히 그것을 해 나갔다. 사실 '해 나가고 있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기특하게도 꾸준히 방향을 요리조리 바꿔가며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야무지게 찾아나갔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는 농촌지도사 시험을 볼 수도 있겠다며 농과대학 부전공을 마치기도 했고, 운전병으로 뽑혔지만 중형차 시험에서 2번이 떨어져(바보 같다고 내가 많이 놀리긴 했지만) 취사병에 지원해 요리에 푹 빠져보기도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한식, 중식, 양식 조리 기능사를 따려고 주머니에 칼도 좀 차고 다녔고, 지금은 웬만한 요리면 뚝딱 잘 해내는 요리도 잘하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9살이나 어린 동생이 항상 어리게만 보였는데, 열심히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부쩍 진로에 진지해져 가는 동생의 모습에 나는 "시험 잘 봤어? 뭐하고 살래?"라고 놀리는 대신 조용히 치킨 쿠폰을 쏴주는 여유롭고 자애로운 누님의 길을 선택했다.



동생들 응원해



취업 준비 과정에 반복적으로 경험해야 하는 '거절'과 '무력감', 그리고 내가 부족하다는 '열등감'은 '마상(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공채 시즌을 지날 때마다 독서실의 휴게실에서 눈물 흘리는 이름 모를 선후배들, 명절에 독서실을 닫지는 않는지, 그럼 어디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들. 시즌이 되면 서로 예민해져 연락도 안부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는 친구들. 함께 공부하던 친구의 취업을 분명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는데 '나는 이제 누구랑 공부하지?' 하는 마음의 소리. 나는 언제쯤 운이 닿아 구직에 성공하게 될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기약 없이 계속 가야 하는 기분'과 항상 함께한다.


최근 운동장에서 시행한 안산의 한 공공기관을 보고 구직자들은 "저렇게라도 시험을 진행하면 다행이겠다."는 반응들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인 지금. 그나마 채용 일정을 예상할 수 있었던 정기 채용 일정을 비정기로 돌린다고 하는 대기업, 경제난으로 구직 공고를 내지 않는 중소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동생이고 후배인 많은 학생들이 지금도 그 터널 안을 묵묵히 걸어오고 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빛이 보인다고. 네가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성실하게만 걷는다면 터널의 끝으로 올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우리는 정말 성실하게 노력하면 터널의 끝을 만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가.

공대여자 : "동생 요즘 그 로또 취업(인국공 사태) 화나지? 괜찮아?"
동생 : "어쩌겠어.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공대여자 : ㅠㅠ

지금도 터널 안을 걸어오고 있는 동생들 많이 응원해!
보란 듯이 끝까지 걸어와보자! 그런 다음, 치킨에 맥주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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