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N은 말실수의 귀재였다. 그녀는 당연한 듯이 수십, 수백 번 발음해본 단어들을 생각지도 못한 완전히 다른 단어로 바꾸어 말한다. 그 단어들은 놀랍게도 본래 단어와 자음과 모음이 기가 막히게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지만 의미는 전혀 다른 식이었다.
N의 말실수는 모두 귀엽고 재미있어서 심각하거나 진지한 상황에 상쾌한 공기가 되어주었다. 더불어 그녀의 실수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특정 단어를 떠올리면 저절로 웃음이 나게 하는 중요한 웃음 버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N과 24시간의 사건사고들을 밀접하게 공유하던 그 시절이 참 좋았다.
내 주변 공기를 맑게 바꿔주는 그녀는 공기청정의 귀재인 것이 분명하다.
N의 말실수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주로 대학 후문 근처에 머물던 우리는 어느 날 멀리까지 산책을 가게 되었다.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는 것을 슬슬 뭉개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 정문까지 닿게 되었다. 우리 학교 정문에는 길고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나무들이 무척 크고 웅장해 보여 눈이 부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나라에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나는 뭘 먹고살게 될까.' 등등 큼직한 걱정을 등에 매고 점점 우울에 침잠하고 있었다.
그때 묵묵히 옆에서 나무를 보던 N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우와! 메소포타미아다!"
그녀는 메타세쿼이아를 메소포타미아라고 아주 크게 외쳐버린 것이다. 나는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쉽게 잊어버린 채 N을 한번 힐끔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나의 우울과 걱정을 순간 거둬들이는 능력이 있었고 나는 그녀의 능력에 기생하며 어두운 시간을 더듬더듬 지나왔다.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나 각자의 매일을 친밀하게 공유하기 어려워진 요즘. 부쩍 그녀와의 일상이 자주 떠오른다.
공기청정 귀재의 능력이 그리워지기도 했고, 요즘 들어 부쩍 내가 말실수의 귀재가 된 탓이 크다.
나는 '아빠'를 나도 모르게 '오빠'라고 부르게 된 것을 시작으로, 과장님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과장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을 '과자님'이라고 대상을 완전히 바꿔버린 다던가. 심지어 업무를 하면서 '주임님'이라고 메일에 적어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님'이라고 적어버린다던가 하는 등의 말실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머리와 말이 따로 나가는 경우가 많아져 불편하기도 하지만, 원조 말실수의 귀재가 남긴 업적들을 곰곰 더 떠올려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 업적들을 내가 재가공해서 누군가 가라앉고 있을 때 꺼내서 웃음 버튼으로 써야지 하고 결의를 다져보기도 한다.
말실수는 대부분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지만, 때로는 누군가를 살리는 말실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