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가장 말미에 이르러서야 결론을 말하는 사람.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위해 무척이나 정성스럽게 배경이 되는 내용을 깔아놓는 사람.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간에 정성스러운 서론을 지나가는 사람만이 진짜 이야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적지 않은 친구들은 학창 시절 나의 이야기가 길어지게 되면 주의력을 잃었다. 소심한 나는 '아직 중요한 말이 남아있는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만 급해졌고,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진짜 재미있는 일을 전하지 못한 채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했다.
어느 날 국어 시간에 '두괄식' 과 '미괄식'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두괄식'으로 결론을 우선 제시하고 그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결론의 뒤에 이어 서술하는 방식이 내용 전달에 효과적이라는 것도 말이다. 물론 이 방식을 차용하면 내가 놓치지 않고 친구들에게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빼먹지 않고 전달될 수 있었겠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온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참을성을 가지고 들어야 하니까. 기다려준 사람만이 진짜 재미있는 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글을 쓸 때만큼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조바심이 들지 않아서 참 좋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조급하게 끝내지 않아서, 무엇보다 내 글을 읽으려는 사람들은 내 이야기의 긴 서론조차 차분하게 기다려주고 읽어줄 거라는 믿음 때문에.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것이 안정적으로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행복'이라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행복의 기원'부터 꺼내놓는 책이 있다. 하노 벡, 알로이스 프린츠의 책 「내 안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들」이다. 이 책은 바로 행복에 대한 진짜 이야기를 한다.
경제학자인 두 저자는 온갖 다양한 수치로 정의할 수 있는 소득, 재산 등이 행복의 모든 것일까? 이어 "우리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를 가장 잘 결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다양한 질문을 통해 행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저자 하노 벡은 이렇게 말한다.
행복을 연구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아주 단순하다. 이 책의 집필이 경제적 성공과 무관하게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데 내가 살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8쪽)
이 책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다. 인류 역사는 왜 행복을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무엇을 알아냈는지 살펴보는 데에서 시작한 이 책은 행복의 기원이 보편적인 현대 인간 중 나에게도 부합할 수 있는 행복의 조건까지 순서대로 길을 잃지 않고 찾아온다. 이 글에서는 책의 중반 부분까지 다룬 후 다음 글에 이어 마무리할 예정이다.
제1부 무엇이 인생을 결정하는가(행복의 기원을 찾아서)
제2부 어떻게 불확실한 세상을 헤쳐나갈 것인가(인생이 주는 혜택을 제대로 누리는 법)
제3부 왜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사는가(자본주의가 결코 말하지 않는 행복의 조건)
저자는 '행복은 배울 수 있다'라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에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음을 인정한다. 많은 나쁜 일들이 그저 우연히 일어나고,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보호되지 못한다. 그 신 우리는 그것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32쪽)
그렇다면 인간은 왜 행복만을 학습하지 않고 불행도 함께 겪게 되는 걸까. 저자는 이 원인에 '우리의 이웃'이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스스로 행복을 단념하는 행위다. 비교는 불만을 낳고 불만은 불행을 낳는다."(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38쪽)
이와 더불어 남이 나보다 더 행복하고 성공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행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격의 절반이 유전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덧붙이며, 이 유전적인 요인 중 많은 부분에 다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문화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방식과 규범의 총합으로서 문화는 또한 유전자와 환경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하며, 물론 이 또한 절대적인 조건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유전적인 요소와 행복과의 상관관계는 어떠할까.
저자는 "행복이 행복을 부른다."라고 말하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낙관성이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물론, 이 낙관성 또한 학습할 수 있으니 행복도 학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인간이 행복하다는 것도 소득, 사회적 지위와 같이 수치화가 가능할까. 1970년대까지는 행복을 수치화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측정이 어렵다는 이론을 구축했다고 한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관찰할 대만 행복을 규정할 수 있다고 본다. 관찰된 행동을 통해 인간이 원하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73쪽)
그 후 심리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 등을 통하여 많은 심리학적 아이디어들이 경제학에 진입했다. 이후에는 연구자들이 인간의 행복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수치화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아일랜드 경제학자 프랜시스 에지워스의 발상으로 고안된 '쾌락 계량기'에서 시작해서, 트위터 사용자들이 활용한 단어의 특성을 조합하여 인간들의 기분과 만족도를 측정하는 것을 사례로 제시한다.
그리고 뒤이어 각종 민사소송의 사례와 보상 금액을 통하여 '불행의 가격'을 측정하는 현대의 현실에 관해 설명한다. 인간의 소득, 직업 등 명확히 정의 내리고 계산할 수 있는 것과 더불어 인간이 건강을 잃는 것, 불행한 것, 좌절감을 겪는 것 등을 '보상금액'으로 환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는 '나의 불행이 얼마짜리인가'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의문을 제시해준다.
그렇다면 경제학자인 저자는 '행복'하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은 일반적으로 삶의 만족도를 높이지만, 일상에서의 감정적 행복에는 특정 금액까지만 공헌한다." 저자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일정 수준의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면, 그 이후의 행복에 대해서는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돈의 액수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덧붙인다.
소비 욕구를 자제하고 저축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산다. 행복하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느냐다. (118쪽)
행복한 사람이 저축하고, 저축이 행복하게 한다. (118쪽)
저자는 타고난 성격이 삶의 만족도와 소득의 연관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격은 고를 수 없으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있다고 말한다.
비록 성격을 맘대로 고를 수는 없지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마음을 다스릴 수는 있다. (119쪽)
저자는 이 외에도 소비에 대해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는 부부가 더 행복하다, 돈보다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행복은 전염성이 강하니 행복한 사람들 틈에 섞이도록 하자, 당장 어렵더라도 인생의 진지한 질문을 외면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어가며 나는 아주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거지?" 안내자를 따라 주변 풍경에 감탄하다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것처럼, 저자는 인간이 행복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 기원부터 시작해 점차 현재를 사는 지금의 나에게 질문을 좁혀온다. 행복을 수치화 할 수 있는지, 이 통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정립되어온 것인지 어렵지 않은 각종 사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경제학자가 설명하는 통계적 수치, 경제적인 요소와 행복의 상관관계 등에 대해 흥미로운 다양한 사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오늘 아침, 남편과 나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우리가 매주 일요일 오전에 항상 챙겨보는 프로그램 2개를 연이어 시청하면서 말이다. 몸이 찌뿌둥한 내가 남편에게 "산책할까?"하고 말했고 간단히 트레이닝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산책 가는 길에 점심 식사를 위해 식당에 들어갔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 이 시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한참 하던 중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까 식당에 들어가서 앉아있는데,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남편이 물었다. "아 그랬어? 왜?" 내가 대답했다. "그냥. 딱 좋더라. 다시는 없을 이 시간이니까. 우리의 지금 시간이 딱 너무 좋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 남편이 으스대며 말했다. "그래. 행복은 멀리 있는게 아니야."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불행의 요인들에 집중하며 타인을 질투하는 데 온 에너지를 쓰고 있을 때, 당신은 진짜 딱 좋은 당신만의 때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지. 당신의 행복을 위해 '인생의 진지한 질문'을 외면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