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속에 가득찬 주중의 사회생활들
아침엔 밥을 부르고
저녁엔 잠을 쑤셔 넣었다.
(최승자,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 벨이 울리고)
회사에 복귀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일을 쉬고 있을 때보다 더디게 지나간 한 달이지만, 정신없이 적응하면서 한 주 한 주를 보내다 보니 벌써 4번째 주말을 보내고 있네요. 그야말로 적응하는데 만도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최승자 시인의 말처럼 그야말로 아침엔 일하기 위한 커피를 부르고 저녁엔 다음날 일어나기 위해 잠들고 있는 요즘입니다.
복귀 초반, 저는 이런 걱정을 했습니다.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가족들, 친구들과만 접촉을 하다 보니 사회생활을 하면서 생길 수 있는 마음의 상처들에 대한 내성이 너무 부족해진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말입니다.
초반 3주 동안은 웬만한 공격이나 외모 평가 판단 등을 들어도 깊은 우울감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금요일에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이 저를 다시 습관적인 우울감으로 다시 데려가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던 업무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휴직을 하며 생긴 안정감으로 차분하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그 문제가 다시 터졌고 저의 과실도 일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지요. 다행인 것은 제 업무가 아니었던 것을 바뀐 업무 분장 탓에 떠맡게 된 일이라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의 불편함과 자책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저의 몫이지요.
그리고 평소 저에게 말을 너무 함부로 해서 상처를 많이 주었던 부서장이 너덜너덜했던 저의 마음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입니다. 업무에 생긴 문제를 스트레스 받지 말고 차분하게 해결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사무실 비품함을 지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자신의 방에서 나오던 부서장은 온 부서원들이 다 듣게끔 큰 소리로 이런 말을 합니다.
"공대여자 뒷모습 보고 엄청나게 놀랐네. 웬 덩치가 산만 한 여자가 서 있어서 엄청 놀랐어." 아무 말 없이 제가 서 있자 부서장은 다시 말을 더합니다. "옷 때문에 그런가? 엄청 덩치 크네 했어." 저는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곧이어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말합니다. "부서장님. 곧 인권 관련 부서에서 저를 만나시겠네요." 제가 농담을 받아준 걸로 오해를 한 건지 해맑게 허허 웃으며 방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자리에 돌아와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팀장이 저를 부릅니다. 업무 지시를 내립니다. 잘 대답하고 자리에 돌아옵니다. 팀장님들을 포함한 부서원들 모두가 나를 조롱하는 부서장의 말을 들었을 텐데. 나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고, 저들 또한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작용이 많은 약을 6개월 이상 장기간 복용을 하며 체중 증량, 식욕 증가 등을 겪으며 충분히 자신감이 많이 결여되고 있는 요즘인데. 부서장은 복귀 첫 주부터 "살이 많이 쪘네." "머리는 왜 잘랐어? 시골 여자 같아."하는 등 잊을 만 하면 상처를 주는 말들을 내뱉었습니다.
휴직하기 전의 저였다면 큰 소리로 웃으며 부서장의 농담을 받아줬을 겁니다. 꽤 오랜 시간 저는 회사에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성격이 좋고 호탕하고 술자리에서도 씩씩하고. 그래야 남직원들과 비교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꼬장꼬장한 여직원으로 보여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아직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없으니 속으로 화만 더 가득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진실을 알게 된 것 같달까요.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배포는 없는데 머리로만 이런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요즘을 보내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 이후부터 상대방에게 어떻게 대응하면 좋았을지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합니다. 이렇게 받아쳤어야지, 저렇게 말했어야지 하는 후회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4주 전 복귀를 앞두고 남편과 약속을 한 게 있습니다. 그날 일의 목표를 과하게 잡고 욕심내지 말기, 중간중간 충분히 휴식을 취해주기, 스트레스받지 않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기였습니다. 제 건강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보니 나의 불행이 가족들에게도 온전히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 혼자 아프면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정말 간단한 일인데 사람은 늘 그렇지 않나요. 겪어야 알 수 있는 것 말입니다.
회사에 복귀하면서 단단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너무 묶여있지 말자고 말입니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내 진짜는 없으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과거와 미래 중 그 무엇에도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니 점점 더 그것들에 단단히 발목 잡히는 요즘의 제가 말입니다. 끊임없는 후회를 반복하는 것과 다가올 다른 상처들을 두려워하는 저를 보면 그게 딱 과거와 미래에 몹시 묶여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첫 3주 동안, 그러니까 딱 일주일 전 주말은 몹시 차고 넘치는 행복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몹시 기분이 좋았던 저는 "이번 한 주도 예전의 나와 몹시 다르게 굴었단 말이지. 주변의 이상한 이야기도 흥 하고 넘길 수 있었어. 외부의 자극이나 타인의 신경 거슬리는 행동들에도 '반사'할 수 있었어. 정말 성공적인 한 주였어."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번 주말은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주말의 첫날인 오늘, 그러니까 토요일 종일 지난주 저의 사회생활에 단단히 발목이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이 저녁 7시경이니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내내 주중에 벌어졌던 사건들에게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번 달에 함께 할 얄롬의 [치료의 선물]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겠다고 큰소리를 친 게 불과 일주일 전인데 말입니다. 이 민망함을 예상할 수 있었다면 브런치의 글을 발행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마음먹기 나름이겠지만 마음 먹는다고 뭔가를 해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자 얄롬은 치료자에게 "지금-여기를 끊임없이 활용하라"고 말합니다. 저는 저자가 강조하는 '지금-여기'의 중요성을 활자로 읽기는 했지만, 생활에 접목하는 일은 해내지 못했던 듯 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여기란 치료시간에 일어나는 즉각적인 사건을 말한다. 즉, 여기(here), 이 상담실, 이 관계, 나와 당신 사이에서, 지금(now), 이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일컫는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비역사주의적 접근이고 내담자의 과거나 외부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덜 강조하는(그렇다고 해서 그 중요성을 무시하지는 않는) 접근이다.
오늘 아침 눈을 뜨고 남편이 내려준 커피를 마셨습니다. 이상하게도 주말 아침부터 행복감에 가득찼던 지난 주와는 아주 달리 지난주 회사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분명 커피향도 너무 좋고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인데 말입니다. 주말이니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고 오자는 남편의 제안에 옷을 따뜻하게 입고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막 집을 나서려고 하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져버렸습니다. "지난주에 부서장이 했던 말이 귀에서 떠나질 않아." 양손으로 귀를 막고 엉엉 울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속상해하며 "다음에는 제발 뒤에서 울지 말고 한마디라도 꼭 하고 와. 제발 부탁이야." 그럴 자신은 없지만 알겠다고 대답하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너무 기다려온 주말 아침의 산책이지만, 저 때문에 망쳐버린 것 같아서 또 속이 상하고 그러다 보니 저 자신이 익숙했던 우울감으로 다시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두드러기가 처음 발병되었을 때 퇴근 후에 끊이지 않은 회사 생각에 시달렸던 일이 문득 떠오릅니다.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나에게 좋지 못한 일이 생긴다면 내가 쓰는 이 글들이 소중한 증거물이 되어줄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요가를 한 후 가장 달라진 것이 뭐냐는 질문에 한 일러스트 작가님께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가를 하기 전에는 우울할 때 감정의 바닥까지 내려갔는데, 이제는 바닥에 내려가기 전 중간에 잡고 올라올 무언가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심리학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는 감정이 우울의 바닥까지 내려가기 전에 뭔가 감정을 관찰하는 방법, 나의 감정을 활자로 변환하면 어떻게 써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조금씩 잡을 무언가를 찾게 되었습니다.
주말의 두 번째 아침인 내일은 반드시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하리라 마음을 먹고 예상보다 이른 마감을 위해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감정 쓰레기통을 찾는 대신, 엉엉 우울의 바닥에 가라앉아 내리 울어버리는 대신, 그도 아니면 모두다 포기해버리는 대신. 저는 지금 과거에 묶여있지 않기 위해 무언가라도 하고 있는 저에게 아주 많이 감사합니다. 하나씩 방법을 찾아가고 서툴지만 하나씩 해나가는 제 모습에 안쓰럽고 기특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아직 지금-여기에 있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하나씩 생긴 상처에 직접 후시딘도 발라보고 소독도 해보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빨리 회복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는 저에게 익숙했던 감정으로 다시 걸어들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