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마음담론] 상사와 공적 거리두기

싫은 사람 옆에선 숨도 쉬지 않는 여자

by mamang


대학교 도서관에는 흡연자들과 비흡연자들, 향수를 과하게 뿌리는 자들과 잘 씻지 않는 자들, 그 냄새들에 괴로워하는 자들, 그 외의 다양한 인간군상이 모여있다. 국립대학의 경우 불특정 다수에게 열려있는 탓에 인간의 다양성과 함께 도서관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끊이질 않았다.


갑자기 열람실에서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 몇 년 동안 한자리에 앉아서 각종 신문을 종일 오려 열람실 칸막이에 붙여대는 아저씨,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괜히 다가가 하루 한 건 이상의 싸움을 하는 쌈닭 아주머니까지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에피소드와 함께 그들의 체취 또한 층층이 쌓아 올려져 만들어내는 열람실만의 냄새가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냄새에 아주 예민하였는데, 늦은 오후가 되면 매일같이 맞이하게 되는 열람실의 진한 향기로 코피가 날 것만 같았다. 도서관 말고는 딱히 시간을 죽일 곳도 없었기에 결국 나는 선택적 구강호흡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비교적 상쾌한 오전과 이른 오후 시간에는 충분히 코로 호흡을 하고 그 이후에는 코 대신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을 뜻하는데, 시간이 지나 노련함이 생긴 나는 점차 도서관 밖의 생활에서도 이 능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싫어하는 선배들이 지나가면 고개 숙여 인사는 하되 코로 숨을 쉬지 않고 입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티 내지 않고 소심하게나마 복수를 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나는 당신의 냄새도 맡기 싫어. 흥!" 하고 말이다. 누군가가 내 옆으로 지나가게 되면 2~3초 후에 바람에 묻혀 뒤늦게 체취가 나에게 밀려나는데 나는 그 타이밍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정작 나만 알 수 있는 소심한 복수였지만 성취감은 아주 컸다.


대학 생활 4년, 사회생활 10년 차인 지금은 뇌와 콧구멍이 거의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가 되었다. 요즘은 주로 회사 복도와 탕비실, 계단 등에서 코의 후각 센서를 켰다가 껐다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중이다.


뇌와 콧구멍 간의 메커니즘은 대략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데, 눈이 내 앞에 있는 인물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받아들인 후 빠른 시간 내에 뇌에 전달하여 좋아하는 사람인지 싫어하는 사람인지 구분한다. 그 후 콧구멍을 키워도 될지 잔뜩 줄여야 할지 선택하여 적용하는데, 콧구멍을 줄이기로 했다면 당장 코의 가장 안쪽과 목구멍의 경계에 있는 문을 닫아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나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냄새를 맡게 될 테니까.


나의 뇌는 근래 나에게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기준으로 콧구멍을 막아야 할 사람과 막지 않아도 될 사람을 구분한다. 시시각각 콧구멍을 차단하는 상대가 아주 제각각인데, 요즘 나의 콧구멍은 부서장에게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최근 부서장이 나에게 했던 다소 경거망동한 행동의 결과로 요즘 내가 회사에서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바로 부서장이다. 나의 콧구멍 메커니즘은 흡사 데스노트와 같은 것으로 뇌에서 적이라고 인식되는 사람의 앞에서라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후각이 정지하게 된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를 탕비실에서 마주칠 때면 혀뿌리가 자동으로 콧구멍 뒤를 막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데, 때로는 나도 모르는 사이 탕비실 안에 가득한 커피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나의 소심한 복수는 잊지 않고 매일 실천되고 있는 게 분명한데, 나는 그에게 제대로 된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래도 근래 들어 별 잡다하고 해괴한 소리로 나를 괴롭히고 있는 부서장에게 받은 내상이 아직 아물지 않은 탓이 아닐까 싶다.


지난주에 있었던 이른바 '부서장의 큰 덩치 공격'(부서장이 부서 직원들 앞에서 나에게 "아주 덩치 큰 여자가 떡하니 있어서 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발언) 이후 군것질을 줄이고 다이어트 도시락을 샀던 일련의 상황들을 떠올려보니 나는 분명 엄청나게 큰 상처를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 상처가 아물기에는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또한 아주 분명하다.


명색이 매주 심리학책을 읽고 글을 써내는 사람이니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며 지난주 내내 가지고 있었던 끔찍한 기분을 글로 풀어썼다. 나의 글을 읽고 많은 분이 객관적으로 나의 입장을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셨다. 함께 글을 쓰는 효정님께서는 나의 상황에 읽으면 좋을 듯한 글을 공유해주셨다. 그 글에는 나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는 손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적혀있었고, 손절하기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가족과 상사들의 경우에는 거리두기를 실천해보라는 조언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내 콧구멍의 크기만 조절하기 바빴지, 부서장과의 거리두기는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난 한 주 동안은 부서장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도록 바짝 몸을 숙여 나의 일에만 집중하며 보냈다. 더불어 나름의 생활 수칙을 정해서(나만 아는 나의 생활 수칙) 매일 성실하게 실천했다.


수칙 1. 부서장이 탕비실에 자주 가는 시간은 피해라.


부서장은 하루 2번 커피를 내리러 탕비실에 들린다. 아침 9시경, 점심시간 후 오후 1시경 이 두 시간대에 꼭 한 잔씩 커피를 마신다. 불과 4개월 전에는 부서장과의 거리두기를 엄두도 내지 못했던 터라 이 두 시간대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부서장은 예전에도 술은 왜 살쪘냐 뭘 먹었냐, 왜 아프냐 신랑이 괴롭히냐 등등의 괴롭힘은 다 그를 마주치기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한 말을 들어도 내가 예민한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하는 자책을 했는데 이제는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되도록 동선을 겹치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수칙 2. 부서장과 함께 하는 점심시간은 피해라.


자칭 '미어캣'인 나는 20명 정도인 부서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들만 들어도 대략 분위기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다. 본래 기획팀이었던 나는 후임과 맞교환이 되어 그 아래의 팀으로 가게 되었는데(당시 나는 좌천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두드러기들을 그때 만나게 되었다) 지난주에는 한번 기획팀의 인원 대부분이 회의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날 친한 동기와 점심 약속이 있었던 나는 어서 어르신들이 식사하러 나가시기를 기다리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내 앞자리에 앉아있는 후배 하나가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며 나에게 대뜸 1팀인지 2팀인지 묻는다. 나는 대답을 하고 다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후배는 회의에 간 기획팀의 다른 선배들을 대신해서 부서장과 1대1로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의 나였으면 "왜요? 무슨 일이에요?" 했을 텐데 나는 필요한 말만 하고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급하게 다른 팀의 선배들에게 이런 저런 걸 묻더니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는다. 곧이어 부서장이 밖으로 나왔고 후배와 단둘이 식사하러 가게 된 부서장이 난감하고 어색해하며 굳이 멀리 있는 나에게 묻는다. "공대여자 식사 안 해?" 나는 미어캣처럼 고개만 내밀고 "네. 저는 약속이 있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했다.


불과 몇 개월 전의 나는 후배의 난감한 상황이 나의 상황인 것처럼 아등바등하며 약속을 취소해야 하나 어디로 식사를 가야 하나 했을 텐데 거리두기를 잘 해냈다는 생각에 점심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만 같았다. 이와 같은 상황이 또 생겨도, 그때는 점심 약속이 없어도 약속 있다고 말하고 되도록 피해야지. 좌천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업무 분장이 거리두기에 이렇게 도움이 되는 조치였다니. 이제 보니 감사할 일이 한두개가 아닌 인생이다.


수칙 3.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저 사람은 퇴직하고 길에서 만나면 그냥 아저씨나 할아버지다.


부서장이 주는 일은 항상 아기 새가 받아먹는 것처럼 낼름 받아먹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부서장이 일을 시키는 루트는 다양하다. 팀장님에게 일을 시켜서 업무를 우리가 하달받도록 하는 방법. 본인 방에 불러서 다짜고짜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상대방이 잘 대답을 못 하면 잔뜩 주눅 들게 하고 기를 죽인 후 일을 지시하는 방법. 아니면 본인 방에서 직접 나와 실무자의 책상에 찾아와 일을 시키는 방법.


지난주의 중간쯤 부서장이 방에서 나오며 내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서 점점 내 자리로 걸어온다. 콧구멍을 줄여본다. "공대여자. 요즘 바빠?"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나는 이 질문이 분명 "내가 일을 줄 건데, 너는 바빠도 안 바쁘다고 해야 한다." 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렇지만 나는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척 이렇게 말했다. "네. 바쁜 것 같습니다." 부서장이 당황한다. "어? 바빠? 왜?" 나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한다. "현장 관리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시공사에 챙겨줄 게 많아서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그런데 왜 그러시나요? 시키실 게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봐 주길 부서장은 바라고 있겠지만,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조용히 있는 나에게 부서장은 한 박자 쉬며 일을 시킨다. 후임에게 업무분장이 넘어간 일을 굳이 나에게 찾아와서 시키는 부서장이라니.


그때 타이밍 좋게 후임이 자리로 돌아온다. 부서장은 말을 이어간다. "이걸 저렇게 요렇게 할 수 있는지 검토해봐."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후임이 대신 대답한다. "네. 알겠습니다." 부서장은 계속 나를 본다. 나는 시선을 피하고 지시하신 내용을 확인하는 척한다.


업무분장이 바뀌어 내 일을 빼앗겼다고 울고불고했던 4개월 전의 공대여자였다면 벌떡 일어나서 "넵! 넵! 알겠습니다!" 했을 텐데 이 업무를 시키면서 나의 거리두기를 무산시키겠다는 의도인 듯하여 나는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책을 읽고 글을 써보려고 노력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졌던 것은 내 인생에서 직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내 인생의 전부일 수 없으며, 그곳에서 내가 듣는 이야기들이 나에 대한 정확한 평가일 수 없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에 갖혀 있기에 나에게 주어진 능력이 많으며 만끽해야 할 행복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부서장은 퇴직하고 길에서 만나면 인사를 할까 말까 한 아저씨일 뿐이다.


엄청나게 거대하게 내 앞에 버티고 서서 나를 이리저리 괴롭히는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보이던 부서장을 '나중에는 그냥 아저씨일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하게 편해졌다. 부서장 앞에서 여전히 콧구멍은 줄어들겠지만, 그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나의 마음과 몸을 보호해나갈 것이다.


효과적인 치료는 정서의 환기, 정서의 경험, 그리고 후속하는 감정의 분석과 통합을 번갈아가며 배열함으로써 이루어진다.(치료의 선물, 어반 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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