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마지막을 생각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음통을 이기는 근육통 만들기. 그리고 시선 거둬들이기

by mamang


마음통을 이기는 근육통을 기꺼이 직면하기


나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항상 밑이 빠진 독을 생각한다. 밑 빠진 독에도 순식간에 많은 물이 소나기처럼 들이닥치면 차오르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나는 무모하리만큼 용감해진다.


3년 전, 일반 요가회원이었던 내가 붓고 있던 적금을 깼다. 그리고는 곧바로 요가지도자 과정에 등록했다. 날씬해지고 싶고, 유연해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더 나아지고 싶었다. 요가 선생님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열심히 해야 내 마음이 보통 사람처럼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시작은 이랬다. 처음 요가원에 등록했을 때는 다만 왼쪽 어깨가 나아졌으면, 꾸준하고 차분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일반 회원으로 요가를 하고 보니 신기했다. 분명 종일 애쓰면서 살아내느라 피로감에 절어있는 상태로 요가 수업에 들어가는데, 마치고 나면 사우나를 하고 나온 것처럼 개운했다. 따뜻한 바닥, 약간 어두컴컴한 조명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종일 나를 괴롭혔던 세상의 일들이 일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여자라서 무시하는 업체 직원들, 목구멍에서 필터링 없이 내뱉는 날카로운 말들, 내 마음속에서 나에게 쉴 새 없이 떠드는 말들이 나에게 딱 붙어 지하철까지 함께 타고 요가원까지 왔다. 귓가에는 하루 동안 들었던 많은 말과 내가 했던 많은 말들이 조잘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엉망이 하루를 결국 요가원까지 데리고 온 나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매트를 챙겨 들어간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요가 스튜디오에 매트를 깔고 뭔가를 시작하게 되면 웬만해서는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몸 전체의 근육들을 이완하고 수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하다. 머릿속에 매트 밖 세상에 대한 잡념이 떠오르다가도 지금 당장 내가 균형 잡고 있는 이 자세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다시 지금으로 돌아온다.


"스트레스고 나발이고 나무 자세(한발로 균형을 잡는 자세)에서 호흡 10번 하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 내가 어제, 오늘 아무리 이상한 말을 들었어도 그냥 그 순간은 내가 안 넘어지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


그럴 때면 상투적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오늘 겪었던 형편없는 일들이 생각보다 끔찍한 일이 아니었구나." 귓가에 쉴 새 없이 반복되어 들리던 하루의 잔상이 흐릿해졌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닫는다.


잔뜩 얽혀버려 못생긴 매듭만 잔뜩 안고 있는 털실 같던 하루들이었는데, 땀을 조금씩 흘리다 보니 형편없던 하루가 예쁘고 매끈하게 정돈되는 것 같았다.


몸이 건강해질수록 마음이 더 나아지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그렇게 잘 살아내기 위한 요가 지도자 과정을 듣게 되었다. 이쪽으로 기울었다 저쪽으로 기울어지는 중이지만 마음이 좋지 않을 때 몸을 더 건강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깥에서 시선을 거둬들이고 이곳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고민의 무의미함과 인생의 유의미함


얄롬의 [치료의 선물]을 읽는 이번 달 내내 이 생각을 떠올렸다. 고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의미하고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유의미하다.


책의 중반부에서 저자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3개 장에 걸쳐 나눈다. 내가 심리치료에 대한 부담감과 반감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중반부인 '죽음'에 대한 부분 이후 저자와 비로소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인간 누구나 가장 두려워하지만, 언급을 꺼리는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나로서는 개운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죽음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죽음이 논하기에 너무나 두려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134쪽)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내가 기꺼이 찾아간 육체적인 고통, 즉 요가를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육체적인 고통이 적건 크건, 그것이 실제로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모든 고통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인간의 무의식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것과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글로 적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은 모든 것이 사라지기 마련이고 그 사라짐을 두려워하며, 그런 공포와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왔다.(135쪽)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 기쁨에 가득 차 노래를 짓는 것, 그와 더불어 마음속의 상처를 글로 남기는 것 모두가 기쁨이 가지고 있는 휘발성을 우리가 이미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뻐하는 것과 함께 슬퍼함과 동시에 그것이 지나가 버리고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 또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노력한다.


이러한 면에서 죽음이라는 심각한 단어를 염두에 두면 인간은 비로소 용기를 내어 하루를 이루고 있는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다시 조합할 힘을 얻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를 괴롭히는 누군가가 그저 하루를 이루고 있는 작은 역할들에 불과하다 생각하게 되고, 나를 괴롭히고 있던 끔찍한 감정들은 비로소 무의미한 것이 되는 것이다.


나 또한 내 일상의 악당들을 항상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데 매일 성공하지는 못한다. 다만 매일 시도하고 있고 매일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요가를 하며 얻게 되는 스트레칭의 고통과 근육통의 괴로움을 기꺼이 감내하면서 마음의 고통을 흐릿하게 만드는 것처럼. 근육통보다 더 큰 고통을 기꺼이 꺼내어보는 용기를 가짐으로써 우리는 진짜 삶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비록 죽음이 물리적으로는 인간을 파괴할지 모르지만 죽음이라는 생각 자체는 인간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연습


4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매일 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며 지냈다. 그래서 회사에 복귀한 첫 몇 주 동안을 나는 "사회에 다시 적응하고 있는 기간"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여자 선배 한 분이 나와 여자 후배 한 명에게 점심을 사주셨다. 식사하고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요즘 생활 어때요? 힘들지는 않아요?" 나는 선배에게 이런 말을 했다.


"회사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지내보니 이곳이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 다시 돌아와 보니 다시 스트레스가 조금씩 누적되는 기분이지만요." 선배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맞아요. 회사 생활에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는데. 참 쉬운 일이 아니죠." 나는 선배의 말에 덧붙였다.


"그래서 요즘 죽음에 대해 자주, 많이 생각해요. 병원에 입원했다가 건강하게 퇴원한 것도 감사하고. 지금은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게 된 것도 감사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 외에 너무 많은 것들에 에너지를 써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매일 저의 죽음,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떠올리면서 더 소중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요."


선배는 "아직 신혼이라 참 좋을 때인데 죽음을 매일 생각하기에는...." 하고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드러냈다.


깜빡이 없이 회사 사람들에게 너무 깊은 이야기로 들어간 것 같아 나는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죄송해요. 제가 지금 사회생활에 다시 적응 중이라. 너무 딥하게 들어가요 가끔."


적확한 나만의 방법 기다리기


그리고 몇 주가 흘렀고, 지난주 화요일이 되었다. 두 달을 건너뛰고서야 마음 담론 학인들과의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기꺼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각자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고 이해해주는 깜빡이가 필요 없는 이들과의 대화가 얼마 만인지, 그들의 대화를 온 마음과 몸으로 흡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온라인의 공간에 함께 머무는 동안 설명할 수 없는 갈증이 해소된 듯했다.


아무래도 죽음에 대해 자유롭게 언급하고 기꺼이 논할 수 있다는 해방감이 컸던 것 같다. 또한 '아, 이런 것을 함께 말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믿을만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마음이었던 것도 같다.


정신 치료에 대한 책인데도, 아이러니하게 치료자를 찾아가 즉각적인 진단을 받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게 만든 책이었다. 느려도 적확한 자신만의 갈증 해소 방법을 찾아가는 마음담론과 함께라면 기꺼이 기다려볼 수 있을 것 같다.


https://bit.ly/37S0ZfT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음담론] 상사와 공적 거리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