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

[마음담론] 프로이트의 의자 1

by mamang


1년후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요즘은 '프로이트의 의자'라는 책을 읽는 중이야. 프로이트 학파 중 한 분이 아주 쉽게 풀어낸 정신분석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 너무 쉽게 쓴 것 아닌가! 하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고 하셨는데, 물론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어. 그 비난의 원인조차 가늠하기 어려웠으니까. 편하게 말하자면 나는 요즘 이 책을 쉽게 읽어가기도, 때로는 어렵게 읽어가기도 하는 중이야.


심리테스트 많이 해봤지? 해설을 가린 상태로 선택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결과지를 받아 읽는 그 순간이 나는 항상 기다려졌어. 신기하게도 테스트의 출제자는 나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 맞는 해설들을 미리 써놓은 것 같아. 그러다가 언제 한번은 심리테스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무너진 적이 있었어. 어떤 심리테스트의 결과이든 간에 사람들은 그게 정말 자기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철석같이 믿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야. 그 후부터는 100%의 확률로 테스트 결과를 맹신했던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그래서 그걸 안 지금은 어떻냐고? 물론 지금도 심리테스트 결과지를 받아들면 남몰래 끄덕끄덕하면서 읽게 되. 알면서도 속게 되고, 모르면서는 당연히 속게 되지.


프로이트의 의자를 읽고 있는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 심리학의 여러 학파와 학자들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이 작가가 말하는 여러 사례가 바로 나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 말이야.


프로이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해. "'정상적 인간'이란 사실 평균적인 의미에서 정상일 뿐이다. 그의 자아는 여기저기에서 크게 또는 작게 정신병자의 자아와 비슷하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는 가장 심한 욕이 '정신병자'였어. 보이는 친구마다 때리고 화를 내고 다니던 아이도 '정신병자', 집중력이 몹시 떨어져서 수업 시간 마다 떠들다가 선생님에게 매일 혼나는 아이도 '정신병자'로 불렸지. 때로는 친구들끼리 말싸움을 하다가 상대방에게 내상을 입혀 K.O. 시키고 싶다면 각종 심한 말 배틀 끝에 꼭 이 단어로 상대를 모욕했어. '정신병자' 하고 말이야.


물론 정신과와 심리상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된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말싸움할 일이 많이 줄어들기도 했고, 상대를 '정신병자'라는 단어로 모욕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저질스러워 보이는 시대가 온 것 같아.


말이 너무 길게 돌아온 것 같네. 아무튼, 프로이트 말대로 한다면 인간들을 나누는 '정상'이라는 기준은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거지. 이 책에서 말하는 세부적인 사례와 인간 마음에 대한 탐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가 몇 년 전 친구 한 명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


당시의 나는 내가 공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몹시 저주스러웠어. 쉬운 삶은 아무대로 찾아보기 힘들겠지만, 온 마음의 촉수가 몸 바깥까지 삐져나와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사회생활은 마치 사포가 깔린 바닥을 매일 뒹굴어야 하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그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 조금이라도 일찍 이런 거친 사람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생활을 겪어보는 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싶었던 거야.


그래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어. "아무래도 나는 공대 여자가 아니었으면 요절하지 않았을까. 그나마 20대부터 억울함도 겪어보고 화도 쌓아보고 하면서 조금씩 단련이 되었던 것 같아."


이 책의 저자는 프로이트의 '구조이론'을 설명하며 이드, 초자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자아'에 대해 이런 말을 해. "이런 타협성을 이끌어내는 자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힘 있는 자아는 고통스러운 일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자아의 힘을 키워놓아야 합니다. 자아의 힘을 키우려면 다소의 시련은 필수적입니다. 살다 보면 즐거운 일도 많지만, 어려운 일들도 여러 가지 형태로 매일 나의 일상에 느닷없이 등장합니다. 이런 시련을 작 극복하고 대범하게 대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앞서 말했던 심리테스트 결과에 혹하는 사람이 다시 되어버린 것 같아 민망하지만. 이건 완전 내 이야기잖아! 했지 뭐야. 이건 진짜 내 이야기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역시나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군' 하는 마음에서 '이 작가는 역시 믿을만한 사람이었어' 하는 결론으로 이르게 되었지 뭐야. 그러니 이 책을 믿고 더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지.


이외에도 나와 딱 맞는 상황들이 책의 이곳저곳에 다양한 사례들로 흩뿌려져 있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조차 잊고 지냈던 무의식 속의 나를 줍고 다니는 느낌이 들었어. 물론 재미를 느끼면서 말이야. 신기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별수 없이 그게 나니까 주워들어 여기저기 살펴본 후 끄덕거리며 바구니에 담을 수밖에.


회사를 다녀온 후 집에 와서도 그날에 있었던 일들이 쉴 새 없이 리플레이되는 나의 상황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해. "강박적 반복은 과거에 상처받은 일이나 상황을 동영상의 구간 반복 기능처럼 되풀이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자신이 겪었던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확률이 높은 상황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겁니다."


나는 어떤 상황이 인상 깊었다면 그 상황을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반복하고는 해. 그리고 내가 그 상황을 다시 마주하게 되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 무엇인지, 꼭 해야 했던 말이나 행동이 뭔지 생각하고 여러 번 역할 연습 같은 걸 하지. 그 상황에 나를 다시 내려놓고 상상 속에서 상대방에게 화를 내보기도 하고, 창피를 주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야. 저자는 나와 같은 상황을 이렇게 설명해줘. "실제 행동으로 옮길 정도로 대범하지 못한 사람은 혼자 집에 있을 때 꿈에서, 환상에서 이 상황을 되풀이합니다. 강박적 반복은 가슴에 맺힌 것이 배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야, 새해를 맞이하여 시작한 아침 루틴이 있어. 무의식이 마음 놓고 활동하는 나의 꿈을 기록해보기로 한 거야. 새해의 다짐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지난주 한 주간은 꿈을 꾸면 그걸 잘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적어두었어. 지난주에는 총 3번의 꿈을 꾸었고(내가 기억할 수 있는 꿈) 기분 좋은 꿈이 그중 두 번이었으니 추측컨대 지난 한 주간 내가 행복했던 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아.


다음 주에도 나의 꿈들을 매일 아침 기록해보려 해. 물론 각종 상황에 놓여있을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을 거야.


너는 최근 이정록 시인의 「의자」라는 시를 읽었어. 그리고는 모든 상황에서 '프로이트의 의자'를 떠올리고 있는 요즘의 너를 이해하게 되었지. 시의 전문은 아래와 같아.


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선명한' 인생은 없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인 여러 채도의 회색들이 필요합니다." 완벽한 행복, 완벽한 불행만이 진짜 인생이 아니라고 저자는 이야기하는 듯해. 시의 화자도 물론이고.


지금은 내 코가 석자인 기분이지만, 나도 언젠가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진짜 인생을 알 수 있길. 그러다보면 나도 언젠가 누구의 의자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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