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로이트의 의자' 중 무의식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저자는 정신분석이란 '정신분석이라는 렌즈'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렌즈로 마음속의 말썽꾸러기들을 들여다볼 계획이라며 그들의 이름은 "불안, 우울, 분노, 공포, 좌절, 망설임, 열등감, 시기심, 질투"라고 말한다.
유독 나는 '불안'에 대한 부분에 크게 감명받았고, 나에게 있어서 '불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불안은 '화장실'로의 쉬운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조금 더 간단하게 말하면 나는 '내가 언제 화장실로 뛰쳐들어가야 할 지 모르는' 나의 배설기관이 항상 불안하다.
성인이 된 후 한참이 지난 요즘의 나는 남들과 확연히 다른 나의 특성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대장은 뇌와 직결되어 있다." 이 사실은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유치원부터 차츰 깨닫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거의 확신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보통 인간의 신체와 달리 나의 장기는 특별한 구석이 있는 게 분명하다는 깨달음 같은 것 말이다.
미취학 아동 시절의 나는 내가 항상 자랑스러웠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똥을 쌀 수 있었고 내 똥이 실제로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던 큰언니와 작은 언니는 학교에 주기적으로 체변을 해가야 한다고 했다. 언니들은 변기가 아닌 신문위에 쪼그려 앉아야 했던 것과 그 배설물을 들고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무척 수치스러워했다. 할머니는 마당 한복판에 넓은 신문지를 깔아줬고 나에게 똥을 누게 시켰다.
매일 학교에 가는 언니들과 달리 나는 그다지 바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내가 즐기는 일이라 흔쾌히 최선을 다해 임했다. 나는 나보다 6살, 3살이 많은 언니들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 생긴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화장실 가는 일이 나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던 미취학 시절을 지나, 똥 싸는 내가 점차 부끄러워졌고 화장실이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과민한 대장의 소유자인 나는 매일같이 우유를 마셔야 하는 루틴이 너무 힘들었다. 오전 2교시와 3교시 사이 즈음에 우유 당번들이 매일같이 우유를 가져오는데 당시에는 "우유를 마셔야 키가 큰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때라 우유를 거부하기도 어려웠다. 우유 당번들이 가지고 오는 우유는 대부분 아주 차가웠고 나는 혹독한 훈련을 앞둔 선수처럼 매일같이 긴장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무서운 우유를 꿀꺽꿀꺽 마셔대고도 멀쩡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 슬프지만 나와 같이 차가운 음료에 취약한 배설기관을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우유는 당시의 사극에서 유행하는 사약과 같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제티고 네스퀵이고 초콜릿 맛이 나는 분말 가루를 우유에 신나게 섞어 먹고 있을 때, 나는 우유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내 몫의 네스퀵을 남겨주길 바라고 있었다. 우유가 어서 미지근해지길 바라며.
그 무렵 아이들은 오줌과 똥에 무한한 호기심을 가졌던 6살, 7살을 이제 막 지나왔다. 분명 학교에 다니기 전까지의 아이들은 동물의 배설물 이야기에 꺄르르 웃으며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성인이 된 후 알게된 사실이다) 그 시기를 바로 직전에 지나온 내 친구들은 유독 똥 마려운 친구에게 악독했다.
몇몇 나쁜 친구들은 집이 아닌 학교 화장실에서 똥을 누는 친구를 발견하면 그 친구가 일을 마칠 때까지 집요하게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는데. 나의 경우는 아주 빈번하게 발각되었고 '화장실에 가면 놀림을 받는다. 고로 화장실 가고 싶어질까 봐 아주 두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대부분의 놀림과 장난들에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던 나는 그럴 때마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너네는 똥 안 싸냐!" 하고 큰소리를 치고는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화장실에 대한 나의 불편한 마음과 부끄러움이 처음 시작되었다.
'프로이트의 의자'의 저자는 공포와 불안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포는 공포감을 주는 대상을 피하면 없어지지만, 불안은 막연하게 느껴지는 감정이어서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화장실'이라는 대상은 '공포'의 대상과 '불안'의 대상 중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불안함을 겪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고 조언한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확실하지 않은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을 원합니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불안을 겪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진심으로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차라리 행동을 하십시오."
이에 덧붙여 공포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포 역시 어린 시절에 뿌리를 둡니다. 어린 시절에 고통을 받았던 경험과 비슷한 일을 당하면 다시 그런 고통을 경험할 것 같아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공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공포와 맞서 싸우지 말고 공포를 내 마음 안에 식구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공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건강한 반응입니다."
성인이 된 지금도 회사에서 화장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 썩 내키지 않는다. 나의 장이 아주 화가나서 인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나도 손쓸 수 없지만 말이다.
신혼 초, 오랜 시간 동안 화장실에 대해 가졌던 나의 불편한 마음을 들킨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도 마음 편하게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데 남편과 함께 살면서 집에서까지 편하게 화장실에 다니지를 못하니 지독한 변비에 시달리게 된 것이었다.
한번은 친정에 가서 밥을 먹는데 친정엄마가 이제 막 결혼한 신혼 부부 앞에서 이런 말을 해버렸다. "마망아. 야채 좀 잘 먹어야. 그래야 변비가 없어져." 나를 보며 조용히 킥킥대고 웃던 남편은 본격적으로 나의 쾌변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물 많이 마셨어? 회사에서는 화장실 잘 갔어? 왜 못 갔어? 눈치 보지 말라니까." 하고 아주 사적인 영역에 노크없이 들어왔다.
결혼 후 1년이 넘은 지금에서야 그의 간섭이 익숙해졌고 아주 자주 고맙게 느껴진다. 지금은 화장실에 다녀오면 상대방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묻는다. "성공?"
너무 사적인 부분까지 간섭받는 것 같았던 초반과 달리 점점 화장실에 잘 가면 칭찬을 받게 되는 일상이 행복해졌다.
그렇다면 집이 아닌 다른 상황에서 내가 화장실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나는 화장실에 접근이 어려운 상황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예를 들면 화장실 접근이 어려운 고속버스 대신 화장실 접근성이 좋은 열차를 선호한다. 자동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나야 할 때는 반드시 사전 점검에 적지 않은 시간을 쓴다. 화장실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다녀온 후 물이나 차가운 음료수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특히 우유나 당분을 포함한 커피는 금지 대상이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기가 너무 창피해서 화장실 가는 것을 미루다가 정말 난감했던 경험이 적지 않았기에 최근에는 당당하게 화장실에 다녀올 권리 요청한다. 물론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자유롭게 다닌다.
저자는 불안함이 많은 사람에게 이런 조언을 한다. "진심으로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차라리 행동을 하십시오."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과민한 대장으로 인하여 생긴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자 구성원들만의 안전한 울타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에 다닐 수 있었던 시절이 애틋하게 떠오른다. 내가 졸업했던 여자 중학교, 여자 고등학교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화장실에 관대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생리라는 여성들만의 유대가 처음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했고 여학생들의 고질병인 변비로 서로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두루마리 휴지를 통째로 들고다니기도 했으니 나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좋았던 시절의 기억은 항상 찰나와 같다. 얼굴을 마주하고 꺼내기 쉽지 않은 원초적인 그것에 대하여 마음껏 이야기하다 보니 나만의 화장실에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왜 내가 그 공포를 느끼게 되었는지를 피하지 말고 직면해서 알아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