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자기검열 하지 않는 연습(진짜 나의 이야기)

[치료의 선물(얄롬)] 그 첫번째 이야기

by mamang
출처 : unsplash



오늘 매일 글 한 편을 쓰시는 학인분과 자기 검열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글의 소재에 대해 이런저런 자기검열을 하다가 정작 쓰고 싶은 이야기를 발행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 또한 가까운 사람들 말고 저를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기에 학인분과의 대화 이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돌이켜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면대면으로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얼굴을 숨긴 채 꺼내놓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는데, 오히려 진짜 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 말입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잠시 심리치료를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와 선배가 각기 비슷한 시기에 연락을 주었고 신기하게도 둘 다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겉으로는 밝게만 보였는데 최근 들어 힘들어하는 모습이 종종 비쳐 걱정된다는 말과 심리치료를 받아보면 어떻겠냐는 말이었습니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친구와 선배가 아주 비슷한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는 게 참 신기했고 몇몇 시그널들을 모른 체하지 않고 직접 연락까지 해서 이런 조언을 해줬다는 게 참 든든했습니다.


친구의 전화에 고맙다고 말하다가 눈물이 나버렸고, 치료를 받으러 갈 때까지 집요하게 연락할 거라는 선배의 말에는 웃음이 나버렸습니다. 치료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더 큰 두려움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내 마음의 진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치료자와 내담자 관계 또한 새롭게 맺어지는 또 다른 인간관계가 아닐까 하는 염려에서 오는 또 다른 피로감이 두렵기도 했지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독서를 하며 마음속에 끊이지 않는 혼란스러움의 원인을 알아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한두 권씩 혼자 읽어내려가다가 한번은 허무함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은 후 뭔가 남는 게 없고 단지 완독 리스트에 한 줄 추가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다가 올해 4월부터는 '마음담론'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매달 한 권씩 지정되는 심리학 분야의 책을 읽고 일주일 한편씩 글을 적어내는 과제를 하는 모임입니다. 처음 한 달간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던 제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 뭐랄까. 요즘 집단 상담받는 것 같아. 코로나 덕분에 오프라인 모임이 없어서 사실 조금 마음이 더 편해. 글로 누군가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게 나로서는 조금 더뎌도 되니까 마음도 편해지고. 그래서 천천히 깊이 알아가게 되는 것 같아."


초반의 감동과 열정이 무색하게도 최근 들어서는 복직을 하며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고 일주일 하나씩 하는 과제만 겨우 꾸역꾸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학인들의 글을 읽고 공감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최근에는 집단 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을 많이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의 지정 책인 '치료의 선물'을 집어 들고 읽어내려가니 이 책이 나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마음을 위한 공부에서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비전을 찾은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번 달의 책인 '치료의 선물'을 읽으며 심리치료에 대한 제 마음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이번 첫 글을 시작으로 총 4개의 이야기로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한 번씩 너무나 민낯인 나의 진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해야 할 때면 마음속 이야기의 대부분은 거르고 거르다가 내뱉지 못하게 되기도 하지요. 특히나 저 같은 눈치를 많이 보고 신경성이 높은 사람의 경우에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뒤돌아서 나를 흉보겠지. 나는 한번 눈물이 터져버리면 말을 할 때 목이 아플 정도로 매이는 데 이런 꼴사나운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이 사람에게도 이게 시간당 얼마로 계산되는 노동이겠지. 내가 이 사람을 믿어도 될까. 방금 지루한 듯한 표정이었는데 내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마쳐야겠다.'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높은 신경성을 가진 저 같은 사람이 가질법한 의식의 흐름을 미리 예습해보았습니다. 이리 생각해도 저리 생각해도 저는 이럴게 분명하기에 심리상담을 받아볼 엄두를 차마 내지 못했습니다.




총 87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얄롬의 [치료의 선물]의 1장을 읽게 된 바로 그날 저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진짜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줘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얄롬은 환자, 즉 내담자가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상태를 '성장의 방해물'을 치우지 못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세심하고 다정한 그는 환자 각자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애정을 책의 초반부터 아낌없이 드러냅니다. 그리고 후배 치료자들에게 그와 같은 따뜻한 눈을 가지고 내담자를 바라봐주길 부탁합니다.


그가 후배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훔쳐 듣는 듯한 이 책은 이야기의 제삼자로 독자가 심리치료 전반에 대한 치료자의 역할을 이해하게 도와줍니다. 심리치료자가 내담자에게 어떤 애정을 가졌는지, 기계가 아닌 인간인 그들이 겪을 수 있는 혼란이 어떤 것이 있는지도 가감 없이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인간 대 인간이 마주한 상태로 진행해야 하는 치료이기 때문에 별수 없이 생길 수 있는 치료자의 고민과 내담자의 신경증적인 부분을 87장에 걸쳐 충분히 설명해줍니다.


얄롬은 제1장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하라 에서 [신경증과 인간의 성장] 이라는 책을 이렇게 인용합니다.


그 책에서 가장 유용한 한 가지 개념은 인간이 자기 실현(self-realixation)의 타고난 경향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Horney는 마치 도토리 하나가 한 그루의 참나무로 성장하는 것처럼, 방해물이 제거되면 그 개인은 성숙하고 완전하게 자아실현 하는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믿었다.


1장에서 얄롬이 인용한 '성장의 방해물'이라는 표현에 의해 제가 가지고 있던 심리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심리 치료를 받는 내담자는 타고난 결함을 안고 있는 사람이 아닌 단지 그 앞의 방해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나니 언젠가 나도 성장의 방해물을 제거할 용기를 내봐야겠다는 생각으로까지 가닿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성장의 방해물'은 '내가 나약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두 달 전 아끼는 동생 한 명이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언니. 요가 수업 일주일 하나씩이라도 해봐요. 가르치는 걸로요!" 요가 지도자 과정을 함께 수료한 이 동생은 평소 제가 요가 수업을 하나쯤은 시작했으면 한다고 자주 말해왔습니다. 저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H야. 언니는 지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다." 자조 섞인 저의 말에 동생은 헤헤하며 웃었고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야기하고 돌아서니 저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 것일까. 라는 생각 말입니다.


지난주에는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딸을 둔 선배와 후배 한 명 이렇게 셋이서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이제 초등학생이 되면 E도 다 큰 거네요.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언니가 되는 거 같아서 걱정되시겠어요." 저는 이렇게 말을 꺼냈습니다. 선배는 이렇게 답합니다. "그때는 뭘 잘 모르지 않나?" 옆에 있던 후배가 말을 거듭니다. "그러게요. 저는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다녔던 것 같은데요?"


선배와 후배의 말이 끝나고 뜸을 들이던 제가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냥요. 저는 선생님들이 우리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것 같지도 않고, 내가 맘에 드는 친구라고 다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아니고. 내가 하고 싶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뭔가 다 저에게는 버거웠던 것 같아요. 지금도 생각보다 많은 기억이 아주 또렷하게 남아있는데, 그것도 버겁고요."


이야기의 무게가 갑자기 무거워져서 나도 모르게 말을 줄였고 괜히 요즘 시끄러운 부동산 이야기로 소재를 바꿨습니다. 상대방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너무 무거운 나의 짐까지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아 민망한 상황이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생겼습니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버거웠고, 지금도 그렇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심리치료를 미루지 않고 다시 한번 고려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민낯을 보여주기에 나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은 부담스럽기 때문이겠지요. 요즘 부쩍 자주 심리치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얄롬의 '치료의 선물'의 각 장에 아주 깊이 공감하며 읽어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저를 울컥하게 만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저자의 한 내담자가 자신의 꿈에 관해 설명한 구절인데요, 내용을 옮겨보자면 이렇습니다.


"내가 예전에 다니던 초등학교에 있습니다. 나는 울면서 교실을 뛰쳐나가는 한 작은 소녀에게 이야기합니다.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단다. 그리고 모두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란다.'"


꿈에 대한 이 이야기는 제가 또 다른 다짐을 하게 도와주었습니다. 진짜 내 이야기를 할 용기를 내봐도 되겠구나. 도망치지 않는 것이 나의 최선이구나. 라고 말입니다.


저자는 또 다른 장에서 치료에 있어서 내담자의 자발성이나 의지가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치료란 자발적인 것이며, 관계는 역동적이고 항상 변화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치료는 과정을 경험하고 검증하면서 계속되는 연속과정이다.


꾸준히 마음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있는 요즘의 저에게 딱 맞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마음공부를 하는 집단 안에 속해있다는 것의 안도감도 저를 편하게 만들어 줍니다. 저자의 말과 함께 더욱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운이 좋아서 응집력 있고 열심히 작업하는 집단을 경험한다면, 당신은 분명 그 경험을 절대 잊지 않고 미래의 내담자들에게 그러한 치료적인 집단경험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


그렇다면 내가 독서와 글쓰기 이외에 진정으로 내 이야기에 공감해 줄 수 있는 치료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나의 이야기를 이끌어주고 들어주고 진심으로 공감해주지 않는 치료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 상실감으로 다시는 치료를 시도할 수 없게 될 테니까요. 저자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해줍니다.


치료자는 많은 다른 환자들을 만나지만, 환자는 오직 한 명의 치료자를 만난다.


얄롬의 [치료의 선물]은 분명 후배 치료자들에게 선배 치료자가 조언해주는 듯한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도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평소 과할 정도로 치료자들을 이상화시켰던 저였기 때문에 인간적인 치료자의 고뇌와 고민을 엿본 이후 경계를 풀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검열 없이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한 후의 후련함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다가올 한 주 동안은 본격적으로 [치료의 선물]을 더욱 깊이 읽어내려갈 생각입니다. 변죽만 두드리다가 진짜 내 이야기를 회피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이야기의 중심을 마주 볼 용기를 내보려 합니다. 아마 다음 글에서는 진짜 내 이야기를 검열 없이 풀어내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만일 당신이 실수를 하면, 그것을 인정하라. 실수를 덮으려는 어떤 노력도 결국에는 실패할 것이다.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아주 얇게나마 한꺼풀씩 벗어가고 있는 제가 참 자랑스러운 한주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한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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