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폴라 못 입는 아이

첫 번째 핑크돼지 이야기

by mamang


최근 이런 기사를 보았다. "배우 OO 새 프로필 사진 공개. 목폴라 입고 청초미."


나는 궁금했다. 목폴라를 입고 청초미가 가능한 것인가. 나는 즉각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기사를 클릭했다. 비현실적으로 목이 긴 사람이 검을 폴라를 입고 아름다운 얼굴만을 부각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나의 경솔한 행동은 연예인과 일반인(나)의 부인할 수 없는 태생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자이언트 베이비로 태어났고 자이언트 어린이로 건강하게 자랐다. 아이들이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눈치채게 되고 상대방의 모멸감을 은근히 즐기게 되는 꾸러기의 나이가 될 무렵부터. 나는 돼지라는 별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나 학원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이 "너는 별명이 뭐니?" 하면 도저히 솔직히 내 별명을 말할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다가 아무 말이나 둘러댔다.


그럴 때마다 왠지 상대방이 내 끔찍한 별명을 알고도 묻는 것 같은 자격지심이 들었는데. 이는 성인이 되어서 상대의 마음 넘겨짚기라는 좋지 않은 방어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아무튼 목폴라 이야기를 왜 꺼냈냐 하면. 나야말로 목폴라를 오랜 기간 선망하고 꿈꿔왔고 한편으로는 몹시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대략 이러하다. 나는 자이언트 어린이로서 태생적으로 목이 아주 짧았고 도톰한 두 개의 턱을 귀엽게 소유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목폴라를 입으면 숨 쉬는 것과 고개를 편하게 요리조리 움직이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생활도 몹시 불편했다.


또한 목폴라를 입어버리면 어깨라고 일컫는 상반신과 얼굴 사이에 앙증맞게 자리 잡고 있는 목의 존재를 알릴 수가 없고. 어깨와 얼굴의 경계를 알아차릴 방법이 없어 마치 어깨를 으쓱하고 있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짧고 귀여운 목이라도 그나마 내놓음으로써 나의 얼굴과 상반신간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몹시 어울리지 않게 여기저기 몸에 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오지게 많이 탔다. 때문에 반드시 목폴라를 입어 바람에 스쳐도 감기에 드는 나의 유약한 기관지를 보호할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항상 일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고 감기에 잘 걸리는 어린이지만 목이 짧고 턱이 두 개라 도무지 목폴라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이런 나에게 겨울만 되면 하나라도 더 껴입으라고 닦달하는 엄마와 할머니는 환상의 2인조였는데. 그들은 목폴라 없이 밖에 나가려고 하는 나만 보면 옷을 갈아입어라. 이렇게 나가면 얼어 죽는다. 또 감기 들고 싶냐 등등 잔소리 폭탄을 투하했다.


패션 결정권이 있을 리 만무한 나는 그들의 목폴라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핑계가 필요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호기심천국이라는 프로그램의 엄청난 인기 속에 그 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호기심천국과 더불어 일상의 궁금한 점을 해결해주는 일이 유행했는데. 월요일 아침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서 "너 그거 알아?"로 시작해서 "나 진짜 놀란 거 있지."로 끝나는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 번은 그런 호기심의 차원에서 '목폴라를 못 입는 사람들'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나 보다. 주말이 지나 친구들이 해준 말은 이러했다. "너 그거 알아? 목폴라 잘 못 입고 답답해하는 사람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탯줄이 목에 감겨있어서 그렇데."


그 희소식을 들은 나는 마음속으로 춤을 추며 날아다녔다. 나에게 목폴라를 입지 않아도 될, 누가 들어도 "아하. 그렇구나." 할 만한 핑계이자 단단한 논리가 생긴 것이다.


물론 우리 집에서는 통하지 않았지만.(엄마와 할머니는 내 논리에 "그게 뭔 개똥 같은 소리여." 하고 넘어갈 거니까 말도 못 꺼냈다.) 아무튼 당시에는 겨울인데도 목폴라를 입지 않는 아이들은 드물었고, 나는 답답한 목폴라를 접고 접고 접어서 짧게 만드는 나를 이상하게 볼 친구들에게(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설명해줄 든든한 이유가 생겼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이언트 어린이에서 점차 커가면서 목폴라는 다양한 모양으로 변형되어 유행의 바람을 타고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목이 킨 터틀넥이, 느슨한 목폴라가, 또 목에 딱 붙고 얇은 재질의 목폴라가 나왔고 매번 나를 유혹했다. "나를 입어줘. 베이비."


나는 매년 "올해는 다르겠지. 이번에는 살이 좀 빠졌으니 낫겠지. 이 옷은 조금 다를 거야." 하며 그 유행들을 모두 따라 해 보았지만 결국 나는 '역시 나는 엄마 뱃속에서 탯줄을 목에 감고 있었던 게 틀림없어.' 하는 확신을 더 가지게 될 뿐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목폴라들이 나의 옷장에서 나를 그리워하며 울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민망하게도 며칠 전 동네 보세 가게에서 입으면 분명 야리야리해 보일 것 같은 아이보리 색 목폴라와 그 위에 입으면 헐렁하고 날씬해 보일 것 같은 카디건을 샀다.


옷가게 사장님은 계좌 이체하면 5천 원을 할인해준다고 했고, 다만 할인을 받게 되면 교환 환불이 어렵다는 안내를 해줬다.


나는 이 옷은 나에게 어울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는데. 분명 그렇게 믿었는데. 집에 와서 입어보니 목폴라는 3.5번은 접어야 할 정도로 내 목에 길고 불편했고 카디건은 여리여리가 아니라 오히려 내 덩치를 커 보이게 만들었다.


"오빠. 나 덩치 커 보여?" 남편은 "아. 그게. 마망이가 요가를 열심히 해서 광배와 상체가 발달해서.. 그러니까.." 아니야 오빠. 나 알아들었어. 내가 미안해.


그나저나 어깨살이 좀 빠지면 폴라 입기 그나마 수월하려나 생각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닌 듯하다. 여전히 나에게 목폴라는 아주 어렵다.


- 첫 번째 핑크돼지 이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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