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스테로이드 같은 상사로부터 벗어나기

마음담론, [심야 치유 식당] 1

by mamang


만병의 근원, 경쟁을 부추기는 상사


"선배님 비밀이 있습니다. 선배님께만 말씀드리는 것이니 부디 저의 대나무 숲이 되어주세요. 사실 만성 두드러기의 원인은 100% 부서장에게 있습니다."

몇 주전 회사 선배와 화장실에서 잡담을 하던 내가 이렇게 소곤댔다.


내 이야기를 듣고 선배가 놀란 표정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요? 왜 말 안 했어요? 나는 지금 휴직 들어간 OO 씨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우리 부서 거의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나는 예측 가능한 전개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답했다. "선배님. 그게 바로 조작된 진실 아니겠습니까. 우리야 힘없는 연약한 사람들이니 언제든 어떤 일에든 가해자로 조작될 수 있는 것이지요.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부서장은 OO 씨를 이용하여 부서원 전체의 경쟁심을 끌어올렸고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부림을 받았던 그녀는 지금 욕받이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 또한 그의 계략 아니겠습니까. 저도 결국 이용당한 사람 중 하나고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는 선배에게 나는 마침표와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것은 독립선언과도 같았다. "저는 말입니다. 이제 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모멸감을 주는 그의 개똥 같은 농담에 더 이상 분위기를 맞춰주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무리해서 일하며 몸을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배는 가벼운 잡담에서 웅장한 독립선언으로의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한 듯했다. 그녀는 "그렇죠. 부서장님이 마음은 안 그러는데 가끔 진짜 상처 받게 말할 때가 있기는 해요. 후배들 앞에서 무참하게 심한 말을 한다거나."


나는 "선배님. 그거야 말로 아주 좋지 않은 방법으로 직원들을 부리는 방법인 듯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투쟁! 은 아니더라도 그걸 알아차리고 이용당하지 말아야지요."


산뜻한 결심을 하고 화장실에서 함께 나온 선배와 나였다. 아무래도 선배도 나에게 일을 줄 가능성이 아주 많은 회사 사람인지라 그녀에게 괜한 말을 했나 조금 많은 후회를 했다.


며칠 후 내가 1시간 조퇴를 올린 날이었다. 4시 30분경 퇴근만을 기다리면서 잔뜩 바쁜 척을 하고 있던 나에게 그녀가 다가왔다.


"혹시 이 내용 알고 있어요? 오늘 이것 좀 해줄 수 있을까요?"


이전의 나였으면 "아. 선배님. 이건 저렇고 저건 이렇습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하고 안절부절못하고 바로 그녀에게 예쁜 형광펜 하이라이트가 그어져 있는 종이를 내밀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1시간 조퇴는 저 멀리 날아갔을 것이며 나는 당일 가야 했던 병원에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저 혹시 예약을 좀 미룰 수 없을까요? 죄송합니다." 했을 것이고 나는 '이런 일도 빨리 처리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나. 병원 예약 시간도 못 지키는 무능한 나. 금요일인 오늘 이것저것 엉망이 되어버려 주말도 엉망이겠지. 울고 싶다.'라는 생각의 흐름 덕분에 집에 도착해서 유일한 나의 편 남편에게 짜증을 냈겠지. 그야말로 끔찍한 주말의 서막인 것이다.


나는 잠깐의 공상 후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선배님. 제가 후임과 함께 검토한 게 맞습니다. 다만 제가 30분 후에 조금 일찍 나가봐야 해서요. 죄송하지만 월요일에 후임과 함께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 업무가 아니라 저는 아이디어만 줬고, 후임이 별도로 팀장님 보고 후 선배님께 말씀드린다고 했던 건이라서요."


그녀는 그 순간 뭔가 화장실에서 했던 나와의 대화를 뒤늦게 떠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는 "아. 그래요. 알겠어요. 그런데 이게 좀 급한 건인데. 아무튼, 퇴근 준비해요."


그녀가 여지를 남긴 "그런데 이게 좀 급한 건인데."라는 말은 너무 비겁하게 들렸다. '역시 회사 놈들 중에 믿을 만한 사람은 없어. 다 자기가 가장 중요하겠지. 흥.' 하고 마저 하던 바쁜 척을 하고 컴퓨터를 끄고 1시간 일찍 회사 문을 나섰다.


예쁨 받고 싶어


부서장, 팀장님들이 내 이름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르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혈액순환이 잘 되는 느낌이었고 우리 부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남자가 대부분인 부서에서 이런 예쁨 받는 사람이 되어 있다니. 모든 여직원들의 모범이 되어있는 것 같았고 남직원보다 훨씬 나은 여직원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휙 하고 업무가 전달되면 샤샤샥 하고 순식간에 해내고 싶었다. 그들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고 매번 만족시키고 싶었다.


이직 후 현재 직장에서 보낸 5년의 시간 중 4년을 그렇게 보냈다.


여자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이만큼 해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할 수 있을 때 해야 했다. 무엇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나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견고하게 만들어놓고 싶었다.


이 정도 하면 알아주겠지, 조금만 더 해보자, 저기까지만 가보자.


그렇게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다가 나중에는 나의 건강까지 갈아 넣게 된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라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충고는 "내 상황을 몰라서 하는 소리"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내 삶의 중심은 타인에게 있지 않다


내가 만성 알레르기 질환을 얻게 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무실에서 이제 더 이상 내 이름이 많이 불리지 않는 것이었다. 병가와 휴직으로 몸을 사리게 되었고, 업무도 바뀐 탓이었는데. 타인의 인정이라는 단맛을 잃게 된 나는 적지 않은 박탈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나의 일이 참 재미있어. 보람 있고 뿌듯해."라고 해왔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부서장의 인정, 상사의 칭찬, 민원인의 인정, 동료들의 동경 등을 위해 무리해왔던 것이다.


일에서 얻게 되는 보상 중 타인의 인정을 제외하고 생각하고 나니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업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지 막막했다.


사람은 의미 없이는 살지 못한다던데. 그 의미 안에 정작 진짜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심야 치유 식당 -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


이번 달 마음담론의 선정 책인 '심야 치유 식당'에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책 초반에 등장하는 2명의 주인공의 상황을 적당하게 섞어놓은 게 딱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49일째 잠에 들지 못하는 남자,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폭식증이 있는 여자였다.


나에게 이 둘은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었는데 바로 '인정 욕구, 사랑 욕구' 다.


49일째 잠에 들지 못하는 남자는 성실하게 쌓아온 자신의 능력을 무참히 무시당하는 경험을 한다.


"쥐어짜서 더 나올 게 없으면 바꾸면 된다는 것을 본부장은 여러 회사를 옮기면서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본부장의 별명이 '스테로이드 권'이겠는가. 운동선수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약해 단기적으로 근육을 키우듯이 실적을 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그 뒤에는 부작용으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기 어려워진, 버려진 낙오자들도 있었다."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기 어려워진' 은 '더 이상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워진'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감정이라는 맹수를 길들여서 자신을 지키는 충견으로 만드는 것이 이제부터 민수가 해야 할 일이다. 쓰러지고, 할퀴어지고, 물릴지도 모른다. 그 아픔을 민수가 견딜 수 있다면 그의 인생은 신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감정을 외면하며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것에만 몰두했던 민수는 감정을 바라볼 용기를 내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외면했던 자신의 감정에 눈을 뜨게 되고 기꺼이 감정에 상처 받을 각오를 하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물론 그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며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는 마치 내가 감정을 처음 알아차리게 되면서 겪었던 혼란들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민수 씨가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며 겪을 마음의 어려움과 버거움이 언젠가는 그에게 다양한 매뉴얼로 정리될 것임을 지금의 나는 확신한다. 또한 '스테로이드 권'처럼 직원들은 오로지 성과를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상사가 나의 직장에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긴 시간 동안 내가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객관화시켜보니 회사가 주는 답답함에서 벗어날 열쇠를 쥐게 된 것 같아 괜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두 번째 손님으로 등장하는 폭식증을 겪는 여자 미수 씨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옳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사람이 옳은 것이다. 그리고 이긴 사람만 인정받고 살아남는다. 미수가 지금까지 살아온 좌우명이다."


"무시당하지 않고, 버림받지 않으려면 이겨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니 너무 힘들었다. 너무 열심히 해야 하고, 능력의 한계를 매번 넘어서야 한다. "여기까지면 됐어"라고 말해주기를 바라지만 "더 할 수 있잖아"라고 요구하는 사람만 있다. 성취가 아니라 고갈되는 느낌이 드는 것, 미수의 요즘이다."


나를 많이 닮은 미수, 미수를 많이 닮은 나는 지난주 내내 생각에 많은 에너지를 썼다. 어떻게 하면 예쁨 받지 않아도 괜찮은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고갈되지 않는 회사원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브레이크가 필요한 사람들


생각의 풍선에 갇혀있던 지난주에는 집 방향이 같은 여자 신입사원과 함께 셔틀버스, 지하철을 타고 함께 퇴근을 했다. 나야 후배를 대하는 마음이 더 쉽겠지만 후배는 나와 함께 퇴근하는 게 곤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스럽게 지하철이라도 반대면 그녀에게 조금 낫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녀는 "우리 같은 방향이에요!" 하며 해맑게 웃으며 기꺼이 나와 동행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OO 씨를 보면 이곳의 신입이었던 내가 많이 생각나요. 사회생활하느라 많이 힘들었죠?" 나의 질문에 그녀가 말했다. "사실 선배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저와 비슷한 부분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고 외국에서 유일한 여직원으로 일했을 때의 고충, 여자 기술직이라 음담패설도 참고 들어야 했던 고단함, 무리해서 일해야 하는 게 당연했던 그 분위기를 나에게 말해주었다.


리액션이 풍부한 그녀의 이야기를 그녀 못지않게 리액션이 풍부한 내가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자 이제 내가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할 차례인가." 하며 내 이야기를 줄줄이 꺼냈다.


"OO 씨. 나는요 내가 항상 예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도 항상 무리해서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돌이켜보니까 내 몸이 상하더라고요.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같이 상해요. 그런데 굳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부당한 상황에서 부당하다고 말하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벗어날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음담패설을 들으면 "화를 내야 한다. 항의를 해야 한다."라고 말해주고 옆에서 같이 싸워줄 사람들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나를 닮은 그녀는 역시 풍부한 리액션을 자랑하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이야기의 말미에 나는 말을 보탰다. "우리와 같이 인정 욕구가 많은 사람들은 옆에서 누가 브레이크를 잡아줘야 해요. 그게 병원일 수도 있고, 심리 치료사 일수도 있고. 다행히 OO 씨 옆에 있는 친절하고 성실한 남편이 브레이크가 되어주고 있지만. 혼자서도 예쁨 받고 싶은 욕심에 속지 않아야 하거든요." 그녀는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맞아요. 다 제 이야기 같아요."


내가 그녀의 조퇴를 지켜주고 칼퇴를 함께 사수해 줄, 예쁜 짓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무리하지 않아도 기꺼이 예뻐해 줄 선배가 돼주고 싶다는 꿈을 꾼다. 언젠가 그녀도 나도 서로에게 과한 리액션과 반응, 감흥을 보태지 않고 담백한 마음을 전해줄 날이 오길.


나를 많이 닮은 그녀가 브레이크가 없어도 스스로의 행복을 챙길 수 있길. 4년 전 나의 신입 시절과 꼭 닮은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 준 것은 브레이크가 없던 과거의 나를 다시 떠올리고 누군가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라는 것 아닐까.


꽉 채워 살지 않기 - 삶의 주도권 갖기


마음담론을 시작하면서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학인들에게 했었는데. 어려운 이론은 잘 몰라도, 누군가의 모습에 이전의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 나의 모습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모두 치유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전히 내 코가 석자인 현실이지만.(하하.)


그러니 주말이 끝난 후 회사에 돌아가도 다음의 말을 잊지 않기. 스트레스 경영에 소홀하지 않는 한 주가 되길.


"삶을 꽉 채워서 살지 않도록 하는 것, 70퍼센트 정도만 채우고 약간의 여유를 의도적으로 두려고 하고,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것만큼 스트레스 경영에 중요한 것을 없다.(심야 치유 식당,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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