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 대장인 나는 그 재능을 셀 수 없이 많은 분야에 적용하며 살아왔다. 배가 아프지만 번거롭고 귀찮아서 미루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고. 숙제나 공부를 미루고 미루다가 울먹이며 '이제 매일 예습 복습을 할 거야'하고 실천 없는 결심을 수도 없이 했다. 그중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은 '만족감 미루기'인데. 이는 대략 이런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놓여있는 상황에 만족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무척 동경하고 부러워하다가, 내가 정작 그 상황이 되면 또 다른 상황을 동경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나 말고 저 사람, 저 사람 말고 또 다른 사람의 다른 사람' 하면서 징검다리처럼 만족감을 '그다음 단계 조금 더 다음 단계'로 미루고 미루다가 언제쯤 정말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될지 스스로도 의문스러울 지경이 되어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는 학교에 다니는 친언니들이 부러웠다. 그들처럼 버젓이 사회생활을 하는 취학 아동이 되고 싶었다. 시시한 미술학원과 유치원을 마치고 드디어 국민학생이 되었을 때는 행복한 마음도 잠깐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한 반에 40명도 넘는 아이들이었고, 그들과 하루 종일 생활하며 40명을 상대로 질투하고 경쟁하고 논다는 사실이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만족에 실패한 나는 '높은 학년이 되면 더 재미있어지겠지' 하며 고학년 언니 오빠들을 선망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정작 내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에는 중학생 언니들이 입는 교복이 참 부러웠다.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 된 후에는 두발 단속이 없는 고등학교에 가서 귀밑 3cm의 머리 길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머리를 기를 수 있는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매일 새벽부터 새벽까지 공부해야 하는 일상이 지긋지긋했고, 하루빨리 대학생이 되어서 대학교 축제에 놀러 다니고 싶었다.
그 이후에도 인생의 다음 단계에 대한 부러움과 선망은 반복되었고, '이번만 지나면 더 나아지겠지', '지금만 아니면 돼',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등의 미루기는 계속되었다.
사회생활 5년 차에는 이직을 하면 좀 더 낫겠지 생각했고, 이직을 하고 난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는 행복해질 기대만 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시간이 허무했고 집중할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취업도 하고 이직도 했는데 이제는 결혼을 해야 행복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기대하고 고대하던 결혼도 하게 되었고 남편과 나는 환상의 짝꿍이라는 확신도 드는데. 왜 아직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있는 걸까. 지금 이대로 인생의 목표가 다 이뤄진 것 같지 않고 해내야 하는 다른 일이 또 있는 것 같다. 이제 아이를 낳고 재산을 불리고 완벽한 노후를 준비해야 정말 만족스러운 인생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어제저녁 영화「소울」을 보았다. 영화를 본 직후이니 멋진 감상평을 써 내려가고 싶지만. 나는 더 이상 행복을 미루지 않는 것으로 평을 대신하고 싶다.
실천만큼 감응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없을 테니까.
나는 지금껏 '내가 태어난 이유가 뭘까. 내가 무엇으로 인해 남들 보기에 대단해 보일 수 있을까. 그 무엇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매번 궁금했다. 나는 언제쯤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하기만 했다. 지금 말고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그 언젠가가 되어야 행복할 수 있으니 언제쯤이 그 언젠가가 될 것인지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 방에서 함께 잠들던 날들이 생각난다. 할머니가 저녁 무렵 방에 미리 깔아놓은 두꺼운 솜이불 위에 내복을 입고 누우면 사각사각 시원한 소리가 났다. 차가운 그 위에 누워서 천장을 보면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곳은 어딜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일까.' 하는 생각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러다가는 추워지거나 머리가 멍해져서 다시 나로 돌아와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가고 싶어 진다.
동동 떠다니는 나에서 내복을 입은 나로 돌아오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방법을 찾는데 한참 걸렸다. 눈을 감았다가 떠보기도 하고 내 이름과 우리 집 주소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여러 번 시도해보니 그중 가장 빠른 방법은 우리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로 엮인 밧줄을 붙잡고 내복 입은 나로 되돌아오면 다시는 동동 떠다니지 말아야지 했다. 그렇지만 별 수 없이 나는 자주 길을 잃어버리는 아이였다.
나라는 사람의 목적이 무척 궁금한 많은 시간들이 누적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삼십 년도 넘게 궁금한 시간들을 지나왔는데 아직 문제 풀이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듯한 막막함이 들 때가 있다. 막막함이 두려움이 될 즈음 마침 영화「소울」을 보게 되어 다행이었다.
내가 워낙 미괄식 인간인지라 서론이 꽤나 길었다. 어쨌든 내가 이제 실천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바로 내 손안에 '지금'을 꽉 쥐고 놔주지 않는 것이다. 요리조리 바라보고 만져보고 킁킁거리고 날름 거리기도 하면서, 지금을 오롯이 느끼고 나서야 손을 풀어 또 다른 지금을 맞이해 줄 작정이다.
그것 말고는 나의 막연한 궁금증이 두려움으로 되어 나를 잠식하는 것을 늦출 다른 방도가 없는 것 같고, 왠지 꽉 쥐고 있는 것쯤은 나도 잘해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한 숨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왠지 많이 읽고 많이 보고 싶은 날이라 오전 내내 시집을 들고 다녔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화장실에서 거실로.
그러다가 문태준 시인의 '입석(立石)'이라는 시를 만났다.
입석(立石)
문태준
그이의 뜰에는 돌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나는 그 돌을 한참 마주하곤 했다
돌에는 아무것도 새긴 게 없었다
돌은 투박하고 늙었다
그러니 웬일인지 나는 그 돌에 매번 설레었다
아침햇살이 새소리와 함께 들어설 때나
바람이 꽃가루와 함께 불어올 때에
돌 위에 표정이 가만하게 생겨나고
신비로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그리하여 푸른 모과가 열린 오늘 저녁에는
그이의 뜰에 두고 가는 무슨 마음이라도 있는 듯이
돌 쪽으로 자꾸만 돌아보고 돌아보는 것이었다
'입석'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어떠한 일을 기념하여 큰 돌로 비(碑)를 만들어 세움'을 뜻하는 명사라고 한다.
화자는 이 돌에는 아무것도 새긴 게 없다고 말한다. 이는 이 돌은 기념한 것이 하나 없고 업적도 하나 없는 무용한 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말이다. 그런데 화자는 이 돌에 웬일인지 매번 설렌다고 한다. '아침햇살이 새소리와 함께 들어설 때나 바람이 꽃가루와 함께 불어올 때'에 '돌 위에 표정이 가만하게 생겨나고 신비로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라고 한다.
진짜 인생이란 이런 걸까. 내가 지금을 꽉 쥐고 온전히 느끼기로 한 것처럼 매 순간 무언가를 느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 말이다.
세상이 알아주는 내 바깥 모습 그리고 물질적인 업적들은 돌에 새겨질 수는 있겠지만, 돌 위에 표정이 생기게 하고 신비로운 목소리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내 손에 쥐어진 지금이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나에게만은 꽉 찬 기쁨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전혀 무용하지 않은 그대여 당신의 손을 잠시라도 바라보길. 그리고 꽉 쥐어보길. 지금의 뒷모습만 쫓는 사람이 되지 않길. 길 쯤은 잃어도 되니 금방 또 돌아오는 사람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