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담론 2 - 처음부터 다시 달려보고 싶어
내 꿈의 역사
나는 취향이 거의 없는 자다. 좋아하는 가수도, 즐겨 듣는 노래도, 여러 번 돌려본 영화도 딱히 없다. 즐겨먹는 음식은 그 시기에 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 의해 정해지며, 자주 마시는 음료 또한 대세에 따른다. 차를 마시는 것도 좋고 물론 커피도 좋다. 뭘 먹고 싶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나는 이렇게 답한다. 너는?
이런 무색무취향의 나에게도 꿈의 레퍼토리는 있다. 내가 원할 때 꿈을 찾아 재생시키는 것이 그 이유다. 나는 나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그것을 꿈에 나타낸다. 물론 무의식의 내가 꿈을 만들어낸다고 해야 정확하겠다.
꿈에 대한 기억은 7살부터 시작된다. 그전까지만 해도 밤새 내가 뭘 하고 돌아다녔는지 모르다가 아침에 정신 차려보면 이불에 오줌을 싸놓는 것이 일상이었다. 분명 꿈에서 뭔가를 한 것 같은데 깨어보면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7살부터는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 치욕스러웠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꿈속에서도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화장실에 가는 꿈을 꾸는 날에는 이불에 오줌을 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장실에 가는 꿈을 종종 꾸기는 했지만, 꿈에서도 정신을 바짝 차린 덕분에 자다가도 눈을 번쩍 뜨고 화장실로 가서 오줌을 누게 되었다.
꿈에서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 무렵, 나는 꿈속에서 톱니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큰 톱니를 사이에 둔 작은 톱니바퀴들이 열심히 돌아가는 모습이었는데. 나는 그 톱니바퀴들이 규칙적이고 건강하게 문제없이 돌아가는 모습을 꿈꾸는 내내 지켜봤다.
나는 톱니바퀴가 착실하게 돌아가는 꿈을 꾸는 날이면 너무 행복한 기분으로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정리하길 미루고 있던 머리속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 또한 자주 꾸게 되었는데. 절벽으로 뛰어내리거나 뭔가에 밀려버리는 꿈에서 종종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밤새 온몸으로 절규를 하는 통에 할머니는 밤새 내 손과 발에 맞았다고 했다. 자면서도 온 방을 굴러다니던 나는 항상 할머니와 벽 사이에서 잠을 잤다. 집에서 가장 작고 동그란 나는 꿈 속에서 열심히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톱니바퀴를 구경하다가 눈을 떠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가족들의 머리 냄새나 발 냄새를 맡으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분명 할머니와 벽 사이에서 잠들었는데 어떻게 이동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꿈이란 참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는게 분명하다.
꿈에서도 열심히 사는 여자
그러다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괴물들에게 쫓기는 꿈을 자주 꾸게 되었다. 밤마다 이를 악물고 열심히 도망을 다녔다.
꿈에서 자주 엉망이 되어버린 나를 보는 게 힘이 들어 톱니바퀴가 성실하게 돌아가는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선호하는 꿈은 분명히 있지만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웠다.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원하는 대로 톱니바퀴가 꿈에 다시 등장하기는 했지만 내가 바라던 모습은 아니었다. 꿈속에서 나는 큰 톱니바퀴를 장착한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내가 발로 굴리면 톱니바퀴도 굴러가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어릴 때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던 잘 굴러가는 톱니바퀴를 상상하며 힘차게 페달을 밟아보았다. 이상하게도 톱니바퀴를 이어주고 있던 체인은 자꾸만 빠져나갔고, 톱니바퀴는 제멋대로 굴러갔다. 꿈을 꾸는 내내 체인을 다시 톱니에 걸어주고 다시 힘차게 밟기를 반복했다.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나는 내내 제자리였고 톱니바퀴 꿈은 더 이상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꿈에서 수능을 다시 보는 여자
꿈에서 항상 달리고 바퀴를 굴리고 체인을 끼우고 하던 나는 급기야 꿈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직장 생활 5년 차쯤 되었을 때부터 나는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꿈을 자주 꾸었다. 이상하게도 그 꿈은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꿈, 일탈하는 꿈이 아닌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을 걱정하는 꿈이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100퍼센트의 확률로 코앞까지 다가온 시험을 걱정하고 있었다. 다양한 모습의 걱정이었는데,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책을 열어보지도 못한 나,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를 마치지 못한 나, 그도 아니면 오늘이 시험인데 시험 범위를 알지도 못했던 나였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불행이었지만 모두 100퍼센트의 확률로 나를 끔찍한 기분으로 안내했다. 꿈속에서의 나는 꿈이라는 것을 상기시킬 시간도 없이 공부와 걱정에 열중했다. 끔찍한 기분에 푹 절여있다가 아침이 되었고 한숨도 못 잔 사람처럼 겨우 눈을 떴다.
지난주에는 급기야 꿈에서 수능 시험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수능을 겨우 일주일 앞둔 상태였으며 일주일 남았으니 전과목을 한번 더 봐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꿈속에서 내내 끔찍한 기분을 느끼다가 잠에서 깼다. 한숨도 못 잔 피곤함을 매달고 아침을 시작했다. 세상에 수능 일주일전에 뭐부터 해야할 지 모르는 상태였다니. 꿈에서 느꼈던 끔찍하고 무서운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겨우 겨우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어제 꿈을 꿨는데. 내가 수능을 딱 일주일 남겨놓고 뭘 해야할 지 모르겠는거야. 전과목을 한번 더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우물 쭈물 시간만 보내버렸어. 엄청 무서운 꿈이었어"
남편을 티브이에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보며 말했다. "도대체 누가 수능을 앞두고 전과목을 한번 더 볼 수 있겠어. 마망아 그건 강박이야. 마음 편하게 생각해. 나도 수능볼 때 그렇게까진 안했어. 그렇게 안해도 되."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이번에는 내가 시선을 티브이로 옮겼다. "아하! 고마워 오빠."
하지현 작가의 「심야치유식당」의 한 대화에 머리가 울린다.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아 기록해놓기로 한다.
"옛날로 돌아가면 이제는 정말 잘할 자신 있어요. 바뀔 자신이 생겼습니다. 노력할 거에요."
"또 열심히 하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바뀔 거라는 얘기?"
"네."
"그러면 안 된다니까. 그냥 되는 대로 하는 거예요. 꼴리는 대로 살겠다고 마음먹어야 겨우 조금 바뀌어요. 의식적으로 열심히 바꾸려고 노력하면 더 어려워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사람들은 최면술에 관심을 갖죠. 하지만 시간을 일방향성을 갖고 있어요. 휙 하고 한쪽에서 왔다가 한쪽으로 넘어가요."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휙 하고 넘어갈 것이다. 한쪽에서 왔다가 한쪽으로 넘어가는. 지나가버린 시간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꿈속에서 복기하는 것 대신 깨어있는 지금의 시간을 잘 흘려보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