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가를 아주 띄엄띄엄하는 인간이다. 때문에 내가 SNS 아이디 앞머리에 'yoga'라고 덧붙인 것도 몹시 가증스럽게 여겨질 정도이다. 나는 분명 몸 또한 요가 매트 위에 자주 놓아주고 싶은데, 바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핑계로 '일상이 요가다'라는 더 가증스러운 이유를 스스로에게 만들어 부족한 요가 연습을 합리화하고 있다.
이런 게으른 나에게는 요가와의 연결성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요가를 가르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그들 덕분에 나는 발 한쪽을 요가인에 나머지 발 한쪽을 일반인에 넣고 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몸과 마음이 응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반차 또는 연차를 낸다. 그리고는 자랑스러운 내 요가인 친구들이 수업을 듣는 평일 낮 요가 수업에 깍두기로 참여한다. 이것이 나의 응급 처치 방법 중 하나이다.
그렇게 나는 속세에 찌들어있던 몸을 요가 매트에 올려두었다가 다시 세상에 던졌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면 얇기만 했던 나의 피부가 두꺼워졌다가 얇아졌다가를 반복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미세하게 그리고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도 같다. 무엇보다 이들과의 만남은 또 뜻밖의 알아차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어제는 요가인 친구 한 명이 나를 만나러 왔다. 각자 20대 초반, 30대 초반일 때 처음 만났던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불안했던 각자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친구는 어제 나를 찾아와최근 어떤 책을 읽고 나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그 책을 선물했다.
그 책은「슬픔의 위안」(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 지음)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내미는 친구와 책의 표지를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힝"하는 소리와 함께 미간을 찌푸렸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추천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부디 당신의 슬픔도, 이 책이 알고 있기를."
눈물의 전염성에 취약한 내 친구는 "울지 마요"하고 다급히 눈물 수도꼭지를 단단히 잠갔다. 나는 "응. 안 울게." 했다.
어제의 나는 비건 생활을 하는 친구를 위해 난생처음 비건 밥상을 준비해보았다. 당초 나의 계획은 최근 개명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를 위해 들깨가루를 넣은 미역국을 끓여주는 것이었다. 야채 구이도 해보고 잡곡밥도 지어 그럴싸한 진짜 집밥을 차려주고 싶었다. 이슬아 작가가 '일간 이슬아'의 '신인들'이라는 글에서 다시 태어난 기념으로 생일잔치를 식순에 따라 진행했던 것처럼, 나도 최근 새로 태어난 내 친구를 위해 멋지게 생일잔치를 열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우왕좌왕하는 나에게 "주변에 있는 샐러드 집에서 배달을 해오는 게 어때" 하는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금세 나의 요리 실력이 현실적으로 어떤 수준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결국 불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고, 음식의 간을 잘 맞추지 않아도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준비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시댁과 친정에서 얻어온 수제 쨈으로 3종 쨈 컬렉션을 내놓았고. 동네에 있는 비건 깜빠뉴를 예약해놓았다가 찾아왔고. 버섯을 기름에 가볍게 대치고 오이를 잘라놓고 파프리카를 아낌없이 꺼내 놓았다.
친정집 옥상에서 자란 아기 상추들도 씻어 올렸고, 일주일 전에 주문해놓은 들깨 가래떡을 자연해동시켜놓았으며 그녀를 위한 나의 환대의 효과를 극대화할 호두정과를 준비했다. 그런데 나는 몇 가지 귀여운 실수를 했는데. 나는 비건 지향인이 꿀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깜빡하고 호두정과에 꿀을 첨가해버렸고, 월남쌈에 싸 먹을 수 없는 쪽파를 생으로 식탁 위에 올려두었으며, 파프리카를 먹지 못하는 그녀의 취향을 전혀 알지 못했다.
우왕좌왕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에게 그녀는 "도대체 쪽파는 여기에 왜 있나 했어요" "꿀 들어간 음식은 가끔 그냥 먹기도 해요" 하는 등 귀엽고 솔직한 말을 해줘서 나를 웃겨주기도 진정시켜 주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친구 덕분에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월남쌈의 라이스페이퍼가 생각보다 칼로리가 높다는 것과 고기를 이용하지 않고도 다채로운 맛을 내는 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환대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본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타인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한 일이 나중에는 나를 기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나는 어떤 일을 하면서 그 일의 중심이 타인에게 몽땅 넘어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대부분 그런 상황에서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도 잊히게 되고 그런 시간을 지난 후 지독한 공허함에 시달리게 된다. 수년 전에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마친 후 매번 내가 느끼는 공허함과 허탈함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몰라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게 되었고 1명 이상과의 약속을 앞두고서는 두근거림과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최근에야 나는 이런 나의 패턴에 신경증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의 이런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나의 패턴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나였지만,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일을 앞두고 있던 나로서는 별 수 없이 크고 작은 이런 걱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친구를 환대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 있으면서도 '나'를 잃지 않은, 모두가 행복한 기쁨의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과한 리액션으로 무리해서 시간을 채우려 하지 않을까. 또는 나의 환대가 정말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스트레스가 무색하리만큼 내 친구는 우리 집에 입장함과 동시에 나를 스스륵 녹여버렸고 눈물샘까지 자극했던 것이다.
긴장과 환대, 그리고 엉망친장 비건 음식이 함께했던 친구의 생일 파티 후 나는 친구와 함께 집을 나섰다. 굳이 왜 이렇게 까지 배웅을 해주냐는 친구였지만 나는 지하철을 함께 타고 친구 동네의 지하철에 함께 내렸다.
"너희 동네 지하철 역에서는 맛있는 델리만주 냄새가 난다" 내가 말했다. "커스터드, 크림치즈 등등을 넣는 호두과자예요. 냄새가 아주 고문이에요. 저는 비건이라 못 먹지만 냄새가 아주 심하게 맛있게 나요." 친구의 말에 내가 덧붙였다. "아침마다 내가 타는 지하철이 이역에 멈춰서 사람들을 태우거든. 어떤 사람은 어묵 냄새를, 어떤 사람을 달달한 만쥬 냄새를 묻혀오더라고. 너희 동네 지하철에 맛집이 많나 보구나."
"다음에는 우리 집에 초대할게요." 하고 내 친구는 손을 흔들며 그녀의 집으로 총총 돌아갔다. 나 또한 왔던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들이 있는 것. 그런 나도 사랑받을 수 있고 아낌 받을 수 있다는 조건 없는 믿음. 내가 어떤 냄새를 묻혀와도 기꺼이 함께 맡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자기의 이야기도 나눠 줄 사람들이 있다는 든든함이란 이런 것일까.
믿고 나를 내맡길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나를 더 나답게 한다. 이지현 작가의「심야치유식당」을 읽는 내내 나의 요가 친구들을 떠올렸다. 기꺼이 내가 내뿜는 좋지 않은 냄새가 온몸에 베어드는 것을 감수하는 깊은 공감, 상처 받을 걱정 없이 누군가를 마음껏 믿어주는 마음.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원인모를 자신감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그보다 작은 변화의 시작, 발상의 전환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하루의 깨달음이 그날 하루로 끝나지 않도록 피드백을 하고 변화에 대한 불안감을 다스릴 수 있는 작은 공동체의 형성, 뒷받침으로도 그들의 삶에서 차선책으로 증상을 선택할 정도의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 여긴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지금 이대로도 잘하고 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뭔가 미진한 것이 있다면, 정체되어 있거나 무리를 하고 있다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오는 느낌이 든다면, 그때는 그대로 가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둘러보고 작은 변화를 줄 곳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