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마음담론] 리액션이 좋았던 여자

미움받을 용기 1

by mamang
krakenimages-376KN_ISplE-unsplash.jpg


한의원에 다니기로 했다. 그 후 2주가 지났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을 운전해서 한의원에 가고 침을 맞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평일에 한 번은 꼭 조퇴해야 하고, 토요일 오전을 꼬박 그 여정에 사용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꼭 건강해지고 싶다는 다짐으로 최소 100일은 이렇게 해보기로 했다. 억지로 먹어야 하는 한약과 난생처음 맞아야 하는 침을 맞으면서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무서운 침도 이렇게 견디는데, 마음을 다시 먹기는 비교적 쉽지 않을까."


나에게 마음먹는 일 중 하나는 타인의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기로 다짐한 것이었다. "공대여자는 리액션이 참 좋아"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는데. 지금까지 내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칭찬인 줄로만 알고 지내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최근 한 달의 기간, 무슨 일인지 온몸의 에너지가 쭉 빠져버리고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별수 없이 회사에서 사용해야 하는 에너지는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최근 한 달 동안 필요한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타인의 감정에 크게 반응하고 응대해줄 힘도 아끼게 되었다.


그렇게 몇 주를 지내다 보니, 이런 일이 있었다. 몸이 아파 휴직하기 전 무리해서 발랄한 척 해왔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던 선배 한 분과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나를 본 선배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공대여자 음 요즘 보니까 뭔가 텐션이 떨어진 것 같아요." 나는 인사를 건넬 때와 비슷한 톤으로 물었다. "아. 네 제 텐션이요? 원래 저는 이런 성격이에요. 하하." 이 정도 말했으면 선배가 대충 알아차리고 눈치껏 말을 거둘 거로 생각했는데, 그분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 원래 그런 성격... 아! 기복이 있는 건가?" 나는 또 비슷한 톤으로 말했다. "아. 기복이요... 그렇게 보이실 수도 있겠네요. 허허."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고, 나는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말고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사실 처음 병가를 마치고 복직한 이후에는 '제가 몸이 좋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해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을 하며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해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몸은 다시 급격하게 나빠졌고, 지금은 다시 가려움증이 도져서 정신적으로도 많이 예민해진 상태다. 결국 한의원에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고, 치료 말고도 분명 나도 뭔가 크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반응 줄이기'였다.


신기하게도 이번 달 마음담론의 선정 책이「미움받을 용기」인 것은 너무나 딱 들어맞는 우연 아닌가! 그렇게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분명 수년 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베스트셀러인 이 책을 사 와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나이별로, 상황별로 책이 모두 다르게 다가온다고 했던 말이 정말 맞나 보다. 이 책에서 이루어지는 문답과 논쟁들 모두 복기해보니 내 마음속에서 이루어졌던 내면의 갈등과 상당 부분 맞닿아있었다. 때로는 울컥하고 어떨 때는 화가 나고 가끔은 슬펐다.


이번 주에는 이 책에서 언급된 '목적론'에 집중하고자 했다. 이 책의 철학자는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받지 않으면, 인정받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버린 것 같고, 그들의 지지가 없으면 나는 무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나 스스로 선택해왔던 걸까."


더불어 "내가 타인들의 반응에 안절부절못하며 애태우고 모든 신경을 외부에 집중해왔던 것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일까. 또한 이 두려움도 내가 선택한 것일까."


이렇게 사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다 보니 평소 내가 했던 생활의 작은 습관들이 내 하루의 기분, 일주일 그리고 몇 달의 기분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의원에서 두려운 침을 참고 맞는 것처럼, 나도 하루하루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01 즐겁지 않은 일에 억지로 웃지 않는다


작년부터 푹 빠져 지냈던 글 중 하나는 '이슬아 작가'의 글이었다. 작가님은 한 글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저는 올해부터 재미없는데 억지로 웃지 않으려고 다짐했습니다" 이런 뉘앙스의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 글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하루를 벌어 하루 치만큼의 의미를 지어 살아가는 나 같은 감정 하루살이에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시 몸이 크게 아플 것 같은 두려움을 앞두게 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무서운 침까지 맞아보기로 했는데. 이것 하나 못할까."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그래서 타인의 반응에 귀 기울이지 않기로, 나의 촉수를 내면으로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02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공대 여자 없으면 우리 부서 안 돌아가." "공대 여자. 이거 알아?" "공대 여자. 이것 좀 알려줘." 나에게는 사랑의 세레나데와도 같은 이 말들에 현혹되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모두 어떠한 '목적'을 따라 살고 있네." 하는 이 책의 철학자의 말처럼 나는 결국 모든 이를 이롭게 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매사에 선하게 행동하고 선의를 베풀었던 것이 아니다. 결국 타인에게 좋은 이야기, 좋은 평, 좋은 보상을 받기로 내가 먼저 결정한 것이다.


만약 긍정적인 피드백이 없어도 된다는 무조건적인 선의에서 나의 행동이 시작되었다면, 타인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상관이 없었을 테지만. 현실 속의 나는 타인이 내가 베푼 것만큼의 피드백을 심정적으로 보상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화가 나고 결국 그 화는 더 큰 결과를 내놓아야 해, 더 잘해야 해. 하는 식의 채찍질을 스스로 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전화벨이 울린다. 아무도 받지 않는다. (사실 나는 최소 3번 이상 전화가 울리면 우선 내가 받았다.) 같은 팀이 아니어도 전화벨이 하염없이 울리면 나는 이를 견디지 못한다. 요즘은 우리 팀 전화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고, 우리 팀 전화라면 같은 직렬의 전화인지 아닌지 다시 걸러본다. 처음에는 하루에 말하는 양을 줄여야 체력을 아낄 수 있다는 시작된 시도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전화를 대신 받는 양이 줄어드니 말은 물론이고 대신 처리해야 하는 업무도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화 통화를 많이 해야 일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나의 강박감이 줄어들게 되었고, 말을 줄이고 문서 처리와 검토에 집중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말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줄어드니 마음이 그라운딩되고 차분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자연스레 심장이 쿵쾅거리거나 교감 신경이 항상 활성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실수도 줄었다.


03 나의 인정 욕구를 인정하자


불과 몇 달 전의 나는 외부 출장을 마치고 1시간 정도라도 시간이 남게 되면 다시 사무실에 복귀했다. 도착 시각이 6시여도 잔업을 처리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그런데 지난주 혼자 가야 하는 외부 출장 건이 발생했고,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에 다시 들어올 예정이라고 하니 선배 한 분이 말씀하셨다. "뭘 들어와. 그냥 퇴근해." 나는 선배의 말을 웃고 넘겼는데. 실제 출장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어중간하게 떴다. 지금 사무실에 복귀해도 얼마 안 있으면 퇴근 시간인데.


조용히 내 마음을 살펴봤다. 만약 내가 선배가 조언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복귀를 한다면 그 이유는 뭘까. 지난 시간 동안 뒤늦은 복귀를 해 혼자 업무를 다급하게 마무리하고 다급한 퇴근을 했던 나를 돌이켜보았다. 그때의 내 마음은 어땠을까. 당시 나는 내가 이른 퇴근을 할 수 있음에도 성실하게 복귀를 했다는 사실을 누구라도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사실 팀장님, 후배 또는 선배 중 누구라도 "왜 다시 왔어. 퇴근하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데. 다들 자기 일하기 바쁘고, 특히 상사들은 나에게 또 다른 일을 시키기에 바빠서 내가 원하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날을 더 우울했고 화가 났다. 그럴 때면 "뭔가 더 열심히 하고 잘해서 다른 보상을 얻어내야지." 하며 더 애썼던 것 같다.


과거 내가 했던 행동이 결국 인정 욕구에서 왔다고 생각하니, 내가 만일 오늘 회사에 무리하게 복귀해서 잔업을 처리하고 늦은 퇴근을 하고, 이를 아무도 몰라줘도 괜찮을까. 그 잔업이라는 일이 내 감정을 그렇게 소모할 정도로 급한 일인 것인가.


생각이 이렇게까지 흘러가고 보니 내가 무리하게 복귀할 이유가 전혀 남지 않았다. 출장지 인근에서 커피를 한 잔 사고 1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운전해서 집으로 복귀했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단계를 거친 생각을 거쳐 이런 결정에 이른 나 자신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실제도 다음날 사무실에 나가니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평화롭고 순조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침보다 무서운 건 없다


어제도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조그만 그 침은 아주 얇고 짧아 위험하지 않지만, 인생에서 두려워하며 피해 다녔던 '침'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아주 큰 성취감을 주었다. 침을 이곳저곳에 꽂은 채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 누워있다 보면 시간을 초월한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나보다 훨씬 두꺼운 전통 침을 이곳저곳에 맞으면서도 소리하나 내지 않은 어르신, 나와 비슷한 침을 맞으면서도 아파하는 어르신. 춥다고 아프다고 어린아이처럼 많은 말을 쏟아내는 어르신.


켜켜이 쌓인 그분들의 인생 속에서 어떤 결핍과 어떤 상처가 지금 저분의 증상을 만들어낸 걸까. 저분의 어깨는 수십 년 동안 어떤 쓰임을 받았을까. 저분은 누구를 위해 저렇게 무릎이 닳을 정도로 사용했을까.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노모를 이 먼 곳까지 모시고 온 저 따님은 어떤 미안함을 가지고 있을까.


어떻게 생각해보면 작은 마음 하나 고쳐먹는 것쯤은 두꺼운 침이 몸을 뚫고 나가는 일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 지금은 침 공포증이 있어 얇고 작은 침을 맞는 나도 지금 어서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언젠가 작은 침으로는 치료되지 않을 테지. 그렇다면 나를 소중히 대하지 않은 벌로 무시무시한 두꺼운 침을 맞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보이지 않는 마음이지만 고쳐먹는 것을 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나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변했다는 말로 나를 자극하고 조롱하는 사람들. 나를 끊임없이 찔러보며서 예전처럼 부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도 아니면 나를 예전처럼 쉽게 이리저리 흔들고 싶은 사람들이 두꺼운 침보다는 무섭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세상 두려운 일이 없어진 느낌이 든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재미있지 않은 일에 웃지 않을 용기를 내보려 한다.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먹은 사람처럼. 작은 침으로도 금방 치유되는 사람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음담론] 나도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