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올해가 딱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2011년 사번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해서 퇴사를 했고 이직을 했는데 그 사이 10년이 지나갔네요. 정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 10번은 해왔던 것 같아요.
매번 일이 힘들다고 우는 소리만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10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꼬박 몇 년 동안 떠들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입니다. 돌이켜보면 재미있고 보람찬 일도 정말 많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전공이 토목이라서 행복한 일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건물이 완성된 후 건물 주변에 깔끔하게 정돈되고 안전하게 공사되어 있는 깨끗한 도로를 본다던지. 걸어서 다 돌아보기에도 몇 시간이 걸리는 대규모의 토목 현장에 제 이름이 당당하게 박혀있는 준공석을 보러 갈 때라던지요. 그도 아니면 기술직이 아니라면 내가 한 일들이 이렇게 눈에 보이게 이곳저곳에 남기지 못하겠지. 하는 등 아주 간간이 찾아오는 뿌듯한 일들이 그렇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을 해놓고 제가 찾게 되는 보람과 벅찬 감정들은 그 일을 해내는 과정에 제가 겪어야 했던 기나긴 고통에 비하면 너무 찰나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아쉽고 제 자신에게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미움받을 용기」를 읽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몇 장 더 읽어야 합니다. 책 읽는 속도가 더뎠던 것에 비해 제가 겪었던 변화는 급진적이었어요.
저는 이 책을 주로 수요일이나 목요일, 그러니까 이번 주는 참 길다는 생각을 할 때쯤 가장 열심히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다짐들이 제 마음을 가득 채우고는 했습니다. "그래. 이 구역의 미친 여자는 나야."라고 말이죠.
사실 이 책은 그런 종류의 다짐을 불어넣어주기 위한 책이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책은 독자가 소화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니, 저는 어쨌든 지난 한 달 동안 그렇게 행동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를 가장 괴롭혔던 말이 있습니다. 첫 직장에서 만난 저의 첫 상사분이 저에게 매일 같이 해주셨던 말이었는데요. "절대 모르겠다고 하지 마라. 아무튼 절대 그런 말 하지 마라."
저는 사실 약간 바보 같을 정도로 뭔가에 꽂히면 정말 그렇게 합니다. 시키는 대로 잘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심지어 약간 핀트가 어긋나게 되도 또 그런대로 원래 이렇게 해야 하나 보다 하고 그냥 그 비뚤어진 길로 쭉 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중간중간 이게 맞나? 하며 뒤도 돌아보고 하는데요. 저는 아무튼, 그 이후 내리 10년을 누가 뭘 물어보거나 시키면 허언증 걸린 사람처럼 잘못 이야기하는 일이 있어도 절대 "모르겠습니다." 해버리는 일은 정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이 내가 이 구역에서 가장 성실하고 거절 못하는 사람으로 보여야지. 나는 무조건 다 알고 있어야 해. 하는 10년 전 상사가 저에게 걸어놓은 최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3월 둘째 주쯤인가요, 다른 부서 선배 한 명이 업무 지원 요청차 우리 부서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은 평소 저의 외모 지적도 많이 하시고 본인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마치 필터 없는 정수기처럼 마구 아무 말이나 쏟아내고는 했던 분입니다. 그래도 저는 평소 가장 두려웠던 "옥상에서 담배 태우는 남자들의 험담 대상이 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마주칠 때마다 기분 나쁜 것도 티 내지 못하고 견뎌왔습니다.
그날 그분이 찾아온 용건은 본인이 해도 되는 일을 누군가에게 시키러 왔던 거였고, 이미 제 후임과 이야기가 다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후임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그 사람은 눈을 반짝이며 이러더군요. "아. 잘 됐네. 공대 여자에게 부탁해야겠다." 저는 잠시 어리둥절한 상태로 한 템포, 두 템포 대답을 미루며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뭐 제가 무슨 생각을 보태겠어요. 그냥 저는 무조건 "아. 네! 저도 그거 알 것 같습니다. 제가 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했겠죠.
그런데 곰곰 생각해봤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요. "내가 굳이 받아서 해야 할 일인가? 내가 이 일을 굳이 받아서 한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렇게 생각해보고 나니 간단한 문제더라고요. 그리고 간단하게 말했죠. "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후임과 통화하셔서 설명해두셨다고 하셨죠? 자리에 돌아오면 오셨다고 전달하겠으니 그다음에 말씀 나누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제가 쳐다보니 잠깐 멍하니 서있다가 "아. 네 알겠어요!" 하고 자리를 뜨더라고요. 제가 너무 단칼에 거절해서 민망한 듯 했습니다. 처음이라 제가 완급 조절을 못하고 너무 기계처럼 말을 내뱉었나봐요.
아무튼 저는 자리에 앉아서 제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목 울대가 자주 답답했던 것도 조금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한 번 이렇게 해보니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 후에도 무작정 저에게 찾아와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이야기하면서 일을 떠넘기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웃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에고. 힘드시겠어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어쩌죠? 죄송합니다."
그 후 일이 정말 너무 수월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출근 후 그날 해야 할 일들을 적어놓고도 다른 사람들의 일을 처리하느라 정작 제 일들이 밀리느라 종종 제가 무능력한 게 아닌지 자괴감이 들었는데요. 이제는 제가 정말 할 수 있는 일들, 나에게 필요한 일들에 집중하려고 하니 회사에서 기분도 더 나아진 것 같아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나 자신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막말을 할까, 왜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까, 왜 나를 함부로 대할까. 타인들의 일을 거절하지 못하고 날름 받아먹으면서 매번 미움받지 않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해왔던 저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거죠. 그러면서 타인이 나에게 하는 행동들에 대해 고민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옥상에 자주 올라갑니다. 남자들이 담배를 태우건 말건 저는 제 나름대로 기지개도 켜고 통화도 하고 바람도 쐬고 있습니다.
잘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고, 제 능력이 부족한 건 도움도 요청하고요. 실수를 혼자 꽁꽁 싸매고 있지 않고 터놓고 팀장님과 상의하려고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가 옥상에서 "쟤 좀 이상해졌어" 해도 어쩌겠어요.
제가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그 사람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그 또한 그의 선택이니까요.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에는 미련 갖지 않고 너무 상처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게 또 한 주가 시작되면 어떤 방식으로 엉망이 되어버릴지 몰라요. 의외의 복병이 나타나서 저의 다짐과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겠죠. 저는 또 눈물이 쏙 빠지고 잔뜩 주눅이 들어 다시 광어처럼 바닥에 엎드리게 될지도 몰라요.
그런데 있잖아요. 이미 한 번 "이 구역의 이상한 여자"가 되어본 이상, 또 한 번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옥상에 올라가서 바람 쐬는 게 그렇게 두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거절한다고, 모르겠다고 말한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라는 것도요.
그런 의미에서 내일도 우선 내 마음에 집중해보기로 합니다. 여러분의 내일도 다른 놈들에게서부터 잘 지켜지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안전하고 행복한 한 주 보내길. 우리의 금요일을 또 금방 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