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마음담론] '필링굿' 실천 편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by mamang



지난주 번스 우울 진단표에서 52점을 받은 후 대략 10일 정도가 지났다. 높은 점수를 받아서인지 괜스레 더 우울한 것 같고 침울한 것 같고 기분이 바닥을 치고 올라오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진단에 앞서 지난 한주 동안의 나의 생활은 어땠을까. 돌이켜보았다.


하나, 필링굿을 제대로 읽어보고 느끼기 위해서 필사에 더 집중했다.

처음에는 워낙 분량이 많은 책이라 한 달 동안 완독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지만, '일단', '우선' 해보기로 하고 조금 느리더라도 차분하게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다시 읽어보고, 나에게 적용되는 상황들이 떠오르면 책 옆에, 필사하면서 떠오르는 상황은 노트에 적어보았다. 나중에 우리 학인들에게 내가 느꼈던 상황들에 대해서 함께 나눠보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하며 무릎을 칠 날이 오겠지.



둘, 1주일간의 휴식을 결정했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남자들이 많은 직종이다 보니 "제가 힘들어요, 이건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을 꺼내기를 아주 어려워했다. 하지만, 신랑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나의 생활들이 신랑에게 많이 전달되다 보니 "이럴 때는 짐을 나눠서 들자고 하는 거야. 마망이가 이렇게 요청하는 건 여자라서 하는 징징거림이 아니야. 이건 부당한 게 맞아."라고 조언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오빠가 남자라서 잘 몰라. 남자들이 많은 곳에서 일하는 여자는 조금만 힘들다고 해도 여자는 저래서 안 돼. 하는 소리를 듣기 일쑤라고. 내 앞에서 말은 안 해도 언젠가는 쟤가 고꾸라지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을걸? 내가 어찌어찌할 수 있는 일이면 그냥 해야 돼. 지금 잠깐 일이 많아서 그래."라고 신랑의 말에 반박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한 진실'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오빠가 말하는 상황이 이런 건가? 내가 부당한 상황에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더니 작년에는 업무 분장을 다시 해주라고 요청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진지한 면담을 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나와버렸지만....) 작년 가을, 결혼을 하면서 나의 생활 패턴과 스트레스 지수를 훨씬 더 가까이에서 느끼게 된 신랑의 나에게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너무 서두르지 말고, 모두를 만족시키지 말고'라고 주문처럼 나에게 세뇌를 시켜줬다.

무엇보다 1주일 간 필링굿 필사를 하다 보니 신랑에게 듣던 여러 가지 조언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었다. 나에게 드러내 놓고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신랑은 나의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을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신랑에게 들었던 조언을 바탕으로 필링굿이 도화점이 되어 당당하게 휴식을 '요청'할 수 있었다.


셋, 바닥으로 내려가기 전 뭔가를 잡고 다시 올라올 방법을 알게 되었다.

마치 요가를 처음 배웠을 때처럼 나는 당연히 원래 그렇고, 나만 그렇다고 믿었던 것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머리가 뭔가 휘저어진 느낌이었다. 이 생각들을 필사로 정리하고, 일기로 써보고, 글로 써보는 연습을 하고 충분히 사전 연습이 된 후 실상에 하나씩 씨앗을 뿌리듯 뿌려보면 언젠가는 나만의 예쁜 꽃밭이 되지 않을까. 원래 잡초가 있는 땅에는 마구 발자국이 나지만, 예쁜 꽃이 피어 있는 땅은 선뜻 밟고 지나가기 어려운 것처럼. 나도 점점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기게 되었다.


결론은, 나는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 오늘 나의 번스 우울 진단 점수는 29점! 역시 높은 점수일수록 효과가 높은 게 맞는구나! 오늘 또 하나의 감사함!



요가를 하면 정말 마음에 평화가 오나요?
저의 경우, 우울한 기분으로 침잠하는 시기가 오면 강바닥 끝까지 내려가서 발이 땅에 닿아야 톡- 차고 올라오는 사람이었는데요. 요가를 만나면서부턴 내려가더라도 중간에 보이는 바위를 잡고 올라올 줄 알게 되었어요.
- 일러스트레이터, 김민지 인스타그램('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 저자)


나에게 '필링굿'이 중간에 보이는 바위가 되어주었다.


'인지치료'에 대한 이해를 돕고 '우울'을 부르는 '인지왜곡'의 10가지 사례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1부를 이어 오늘은 2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저자는 2부에서 '기분을 다스리는 실전 기법'을 일러준다.

실전 기법은 '자존감을 세우기', '아무것도 안 하기 :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말로 싸우기 : 비판에 말대꾸하기', '짜증지수'에 대해 실제 누구나 겪을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work sheet와 실천 방법을 제공한다.

('말대꾸하기', '짜증지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다뤄보려 한다.)



01. 자존감 세우기



"우울증에 빠지면 언제나, 예외 없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고 믿는다. 우울증이 심할수록 이런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p. 81)

'쓸모없는 존재'라고 믿는 것은 9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생각이다.

"나는 복사 같은 간단한 업무도 못해. 나는 남자 직원들보다 체력도 부족하고 선배들보다 잘하는 것도 없어. 분명 모든 사람들이 '왜 여자를 뽑아가지고! 여러모로 귀찮네.'라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까 나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

불행의 서막이 올라갔다. 토목을 전공했고, 그 전공을 살려 취업을 했던 나는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9년 이상을 '나 같아도 남자 직원을 뽑겠어. 내가 뽑혔으니 다들 나를 미워하겠지. 다른 부서에서도 나를 받기 시작할 거야. 내가 남자 못지않다는 걸 보여줘야 해.' 하며 '무리'하기 시작했다. 술도 많이 마시려고 노력했고, 야근도 많이 하려고 노력했고,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저런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무조건 'YES! 넵 알겠습니다!' 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우울증 환자들은 4D로 특정 지을 수 있는 자기 이미지를 갖고 있다. 즉 스스로를 '패배자이며, 결함 투성이고, 버림받았고, 불우하다'라고 느낀다."

"남에게 인정받고 성과를 올리려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생각했다. 자기 내면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라고 곱씹어보아도, 나를 사랑해준다는 말이 쉽게 와 닿지 않기도 한다.

작가는 자존감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 3가지를 제시한다.


1. 내면의 비판에 말대꾸하라!

- 세 칸으로 나눈 표에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자기비판을 작성하고, 인지 왜곡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마지막으로 자기 방어를 위한 이성적 대응 칸을 작성한다.

사실 지난 한 주간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방법이다. 나의 경우, 노트를 따로 마련해서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인지왜곡 10가지 사례 중 내가 생각하는 지금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인지왜곡 중 어디에 해당할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별 게 아닐 수 있겠다. 는 생각이 큰 도움을 줬다.


2. 정신의 바이오피드백

- 부정적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나의 손목에 단추가 있다고 생각하고 한 번씩 누른다. 하루에 눌렀던 총점수를 일지에 기록한다. 잊지 말아야지. 했지만, 자꾸 손목 계수기 활용을 잊게 된다. 다음 주는 적용해보려 한다.


3. 움츠리지 말고 맞서라!

- 저자는 자신을 '나쁜 엄마'라고 낙인찍은 사례를 통하여 끊임없이 말대꾸하고, 질문하며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바라보게 도와준다.

"이런 낙인찍기는 정서적 혼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진짜 문제를 밝혀내지 못하게 하고,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없게 하며, 적절한 해결책을 생각할 수도 없게 한다."


4. 요약

-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윙윙거리지 못하게 종이 속에 가둬놓아라!

- 10가지 인지 왜곡 유형을 되풀이해서 읽고, 꼼꼼히 익혀라.

- 나를 경멸하게 만드는 생각을 객관적인 생각으로 반박해라.



02. 아무것도 안 하기 : 지연행동


가장 많은 공감을 하면서 읽은 부분이다. 9년의 사회생활 동안 항상 의문이었던 것은 '나는 밖에서는 아주 부지런한 것 같은데, 몇몇 가지 일들에 대해서는 너무너무 미루게 된다.'였다.

'일 지연시키기' - '사람들이 날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겠지' - '또 이렇게 돼버렸어' - '난 역시 불필요한 존재야'

위와 같은 사고방식의 반복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지연행동이 일에 대한 본인의 완벽주의, 자신감 부족 등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완벽하게 해야 하니 착수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고, 자신감이 부족하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뒤로 미루게 된다는 것이다. 지연행동에 대해 이해하고, 인식하게 되니 지난 한 주간 '우선', '일단' 하게 되었다.

글쓰기에 대한 시작이 항상 두려웠는데 '우선'3줄이라도 써보려 하니 그 뒤로는 아주 쉬웠고, 일을 '우선' 해보니 별게 아니었다.



"마차를 말 앞에 맬 수는 없다!"

"할 일을 자꾸 뒤로 미루는 사람은 의욕과 행동을 흔히 혼동한다.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어리석게 기다리기만 한다.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니 자동으로 미루고 만다."



'필링 굿' 필사와 각 방법에 대한 실천을 다음 주에는 더 성실하게 임해볼 생각이다. 나를 보채지도 않고 닦달하지도 않고 느리면 느린 대로 쉬었다 가려면 또 쉬었다 가는 대로.


어제는 입사 1년 선배 두 분과 점심을 함께 했다. 우리 셋은 서로의 병아리 시절부터 삐약삐약 한 줄로 서서 울어대며 독특한 상사들의 특이하고 독창적인 괴롭힘의 유형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겪어냈기에 더 돈돈한 한 팀이었다.


마망 : "다음 주 한 주간 회사에 안 나오면 또 괜찮을 텐데. 또다시 나오면 몸이 안 좋아질까 걱정이에요."
선배 1 : "본인만 생각하세요. 저번에 제가 길게 휴직하는 것도 생각해보라고 했었잖아요? 그거 진심이에요."
마망 : "탕비실에서 그 말씀하셨을 때 저 눈물 글썽했던 거 보셨죠? 왜 이렇게 사람 감동 주는 거예요."
선배 2 : "마망 성격이 저랑 비슷해서, 요즘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았어요."
마망 :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는 걸 멈추고, 누가 뭐라고 해도 흘려듣고 싶은데, 회사에 있으면 제 모든 신경이 바깥에만 있어서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다 내가 해내버려야 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는 것 같아요."
선배 2 : "참 공감해요. 회사에서 뭔가 자신의 몫을 해야 할 것 같고, 그 이상을 해서 인정받고 싶고. 그러면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선배 1 : "그리고, 쉰다고 괜히 눈치 보지 마세요. 정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은 정말 우리가 걱정하는 것보다 별로 우리에 대해 신경 안 써요"


나는 군필자가 아니라 '전우애'가 어느 정도의 끈끈한 감정인지는 모르지만, 내 결혼식에서 '가족이 결혼하는 것 같아서 찡했다'라고 표현해 주는 이 선배들과 함께라서 정말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며 처음으로 선배들에게 털어놓으며 짧은 휴식 후 회사에 돌아갔을 때 조금 더 '필링 굿'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저의 경우, 우울한 기분으로 침잠하는 시기가 오면 강바닥 끝까지 내려가서 발이 땅에 닿아야 톡- 차고 올라오는 사람이었는데요. 요가를 만나면서부턴 내려가더라도 중간에 보이는 바위를 잡고 올라올 줄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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