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행복하니? 행복을 추구하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

by mamang


"행복하냐?" 대학시절 마주치면 꼭 이렇게 묻곤 하던 선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예, 아니오 둘 중 하나로 당장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그 당시의 나는 대부분 '내가 놓인 상황' , '나의 기분' 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근거로 행복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믿었다.


어쨌든 당시 좋은 친구들이 내 옆에 있었고 노력하면 그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었기에 당시 나의 상황은 행복에 가까웠다고 믿었다. "응! 행복하지! 암만!" 나는 선배에게 그렇게 답했다.


그 뒤로도 나는 스스로에게 "행복해?"라고 자주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의 상황을 점검했다. 내가 괜찮은 상황인지. 타인이 보기에 행복에 가까운 환경에 놓여있는지.


그리고 그 외부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자격증을 따게 되면, 높은 어학점수를 갖게 되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누가 봐도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이는 지금. 나는 행복해야 한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원제가 'The pursuit of happiness.'라는 사실을 어제 처음 알았다. 영화를 보려고 함께 자리 잡은 남편이 "응? 제목에 'pursuit'이 있네" 하고 말했다. "어? 정말 그러네! 원래 제목이 저거였구나!" 했다.


'pursuit'은 '추구', '(원하는 것을) 좇음, 찾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행복은 내가 가져야 할 '명사'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만족스러운 경제적, 사회적 상황에 놓여있어야 트로피처럼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추구, 좇음'이라는 동사와 '행복'이 함께 놓여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영화는 누가 봐도 불행해 보이는 크리스 가드너의 이야기를 다룬다. 때문에 영화 초반 나는 그가 행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임으로써 '행복'을 이뤄내는 해피엔딩을 상상했다.

나는 그가 말미에 '결국' '행복'해지기만 하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주인공 크리스는 아주 오랜 기간 외판원으로 일했으나 물건을 하나도 팔지 못한 상황이었다. 유일한 재산인 차는 견인되었으나 돈이 없어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세금은 미납되어 몇 달째 연체되어 있었으며 집세는 꾸준히 밀려있었다. 아내는 경제적 어려움에 이미 지쳐있었고 상황이 언젠가 나아질 거란 남편 크리스의 말에 희망을 걸 수도 없을 만큼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어려움으로 사면이 막혀있던 상황 속에서 크리스는 아들에게 말한다. "행복하니?"


크리스의 질문에 나는 '너라면 행복하겠니?'라고 묻고 싶었다. 엄마와 아빠는 매일 싸우며 불안하게 만드는데 행복할리가 있나.


불안정한 환경에 놓여 갖은 고생을 하고 있는 크리스의 아들은 놀랍게도 "응!"이라고 대답한다.


나였다면 엉엉 울며 나는 다 모르겠고 집에 갈래! 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을 텐데. 순간 내가 알고 있는 행복과 저 아이가 알고 있는 행복이 다른 건가? 헷갈리기까지 했다.


유독 가라앉는 마음 상태가 길게 유지되는 요즘. 내가 놓여있는 상황 탓에 행복은 나와 멀리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행복을 위한 완벽한 상황은 외부의 적에 의해 깨어졌고 내가 도망치는 것 외에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더 나은 상황을 위해 움직이겠노라 다짐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지난 금요일 회사에 앉아 종일 발을 동동거리며 나를 다그치는 상사와 그 상사의 지시를 받아 내 업무를 단속하는 선배를 대응하느라 진땀을 뺐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곳이라 내가 웬만하면 회사에서 잘리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잘리지 않는다는 게 더 끔찍했다.


무엇을 맛있게 먹으며 금요일을 저녁을 보낼까! 기대하던 남편은 내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눈물을 쏟는 바람에 사색이 되었다. "기분 상하게 해서 미안해"하는 나의 말에 "너한테 화난 게 아니라 내가 너무 속이 상해서 그래." 하고 대답했다. 신나는 금요일 기다리던 치킨을 앞에 두고 남편은 가라앉은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환경적 요인, 더 나아가 나를 괴롭게 하는 상대에게 나의 행복을 스스로 맡겨놓고 언제 돌려받을까 조바심 내는 나의 꼴이 순간 형편없어 보였다. 나의 인생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감정이 휘둘리면서 나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 받을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은 끊임없이 미뤄왔던 내가 싫었다. 영화 속에서 페인트칠을 하던 크리스가 벽에 써둔 말. "You suck."


나 또한 나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너는 형편없어."


행복은 잘 꾸려진 세트장을 유유히 걷는 일이 아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계속 '행복'이라는 목적어를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을 좇는 것 자체가 나를 존재하게 만든다. 또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가장 소중한 방식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로 한다. 내 인생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질 악연들에게 내 사람에게 나눠줄 에너지와 사랑을 담보 잡히지 않아야 한다.


나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행복하니?" 나 자신에게 묻는다. 대답을 준비하기 위해 오늘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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