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나를 위해 싸워주는 여자들

악당, 당신은 왜 입체적이어서[마음담론, 행복의 정복]

by ma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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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은 왔다 갔다를 반복했고 팀장은 지난 2주간 여전히 나에게 신경질적이고 무례했다. 그러다 지난 주말이 되었고, 바깥의 모든 사람에게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내가 무리하는 사이 나의 소중한 사람이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였다. 지난 주말, 나는 마음을 굳혔고 출근하고 며칠 눈치를 보면서도 팀장의 안쓰러운 어떤 부분들에 마음 약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예를 들면 저 사람도 누군가의 아빠겠지, 열심히 하려는데 본인 자신도 잘 안돼서 화가 나겠지. 하는 마음이 떠오르면 “소중한 남의 딸, 남의 가족에게 이렇게 함부로 하다니!” 하는 가족의 조언과 “설사 네가 업무 능력이 부족해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 거야?”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드디어 지난주, 부서장에게 부서 이동을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부서장을 찾아뵙기 전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려서 업무수첩에 말해야 하는 키워드를 적고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쉽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아 십여 분간 심호흡을 했고 벌떡 일어나 부서장 방을 두드렸다. 더는 무리해서 일할 수가 없을 듯하여 타부서로의 전출을 원한다고. 사유는 건강상의 문제라고, 개인적으로 건강 회복을 더는 미루지 못하니 반드시 부서 이동을 하기 원한다고. 부서장은 팀 이동이나 업무 분장을 제안했지만 나는 수긍할 수 없었고 부서 이동을 원한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사실 4년 넘게 다녔던 첫 직장에서 그만두며 “쟤는 왜 부서를 이동했지? 그 상사랑 사이가 안 좋았던 거야? 쟤가 일을 못해서 그런 거 아니고?” 등등의 뒷말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고민 끝에 퇴사한 것이었는데. 나에게 퇴사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던 ‘부서 이동’이라는 말을 하고 보니 정말 오랜만에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된 듯했다.



버트런드 러셀「행복의 정복」에서 피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과로가 아니라, 특정한 종류의 걱정이나 불안이다.”


“감성적 피로가 가진 문제는 그것이 휴식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피곤할수록 그 피곤에서 벗어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런 사람은 일을 중단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만약 일을 중단하게 되면 어떤 종류의 불행을 겪고 있든 자신이 겪고 있는 불행에서 마음을 돌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낸 다음 날, 본가에 내려가기 위해 조퇴 후 역으로 향했다. 그동안 가만히 있으면 계속 팀장이 내뱉던 말들이 떠오르고 당시 내가 해야 했던 답들이 뒤늦게 떠오르는 바람에 매일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서울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책도, 유튜브도, SNS도 보지 않고 창밖을 보며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알아차렸다. 스타벅스에서 아무것도 보지도 하지도 않고 정말 커피만 마시며 창밖을 보고 있는 내가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평소 힘든 이야기를 엄마에게 잘하지 않는데. 지난 주말 엄마에게 부서 이동의 배경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본가에 가서 마음이 말랑해진 탓에 볕 아래 눈이 손수 무책으로 녹듯 말들이 마구 터져 나왔다. 이야기를 인자하게 들어주던 엄마가 길거리에서 허공에 대고 쌍욕을 했다. 엄마의 사진 촬영도 있고 인터뷰도 하는 날이라 머리에 잔뜩 볼륨을 주고 행동마저 우아하게 하던 엄마가 집에 가는 길 내가 쏟아낸 이야기에 나를 위해 화를 내주었다. 팀장이 앞에 있는 듯 마구 욕을 해대는 것을 듣고 있으니 내 마음이 후련했다.



“내가 진짜 가만 안둬잉.” 엄마가 말하자 내가 답한다. “엄마 큰언니도 그말하더라. 쫒아간다고. 큭큭 근데 그거 기억나? 내가 속셈학원에서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집에 울면서 갔더니 큰언니가 교복도 안 갈아입고 그 길로 우리 학원에 쫒아가서 소리를 질렀잖아.” 엄마가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너희 큰언니는 내가 동네에서 다른 아줌마랑 싸움 났을 때도 막 옆에 같이 와서 지가 같이 싸워주더라.”



일요일인 오늘, 큰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팀장이 잘해줘도 속지마. 사람은 안 변한다.” 언니와의 통화를 마친 후 보니 엄마가 보내놓은 메시지가 와있다. “팀장 그놈이 잘해주면서 같은 부서에 있자 해도 절대 하지 마. 그 성질 어디 안 간다. 회사에서 나도 성질 있다! 하고 다녀” 엄마에게 답장을 쓴다. “응 알겠어! 엄마 나 성질부리고 다닐게.”



체면 챙기지 않고 나 대신 싸워줄 엄마, 언니가 있으니 나는 든든하다. 그리고 모두 다 잘될 거라 믿고 또 그러지 않아도 정말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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