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담론

엄마가 회사 일을 물어보면 화부터 나는 이유

일하는 딸

by mamang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과 달리,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26살의 나는 본가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곳에서 근무했다. 할머니, 아빠, 엄마는 회사라는 곳에 나가서 월급이라는 것을 받아오는 나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야근이나 회식 없이 집에 바로 들어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저녁을 차려주시고 내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오늘은 무슨 일을 했는지 듣고 싶어 했다.


평소 무뚝뚝하던 아빠는 나에게 일은 할 만하냐, 선배들은 어떠냐 자주 물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세 어른 중 궁금함을 가장 못 참는 사람인 우리 엄마는 나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왔고, 메시지를 보냈다. 밥은 먹었는지, 회식에서 술을 많이 먹는 것은 아닌지, 누가 괴롭히는 건 아닌지 매일 궁금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의가 식어가는 할머니와 아빠와는 다르게 엄마는 여전히 뜨겁게 나의 회사 생활을 궁금해했다. 이상하게 나는 그럴 때마다 점점 화가 났다. 엄마가 매번 비슷한 질문을 자주 하는 탓에 내가 화가 나나? 쉬는 날에라도 회사와 분리되고 싶은데 엄마 탓에 다시 회사 일이 떠오른 탓인가? 잠시 곰곰 생각하다가 나는 자주 인내심을 잃었고 엄마에게 짜증과 화를 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지난 주말, 처음으로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를 차분히 듣게 되었다. 브런치에 쓴 엄마에 대한 글을 읽고 한 매체에서 엄마에게 인터뷰 제안을 해온 것이다. 젊은 시절 엄마의 이야기부터 우리를 키우며 식당을 꾸리던 이야기를 처음으로 연이어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엄마는 내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했던 말들을 기억하며 "얘가 이런 실거운(미더운) 말을 참 잘했어요" 했고.


앞으로 바라는 것에 대한 질문에도 자식들을 위한 바람들을 늘어놓았으며, 지금까지 버텨오게 된 원동력도 자식들이라고 말했다. 뭐라 한 문장으로 함축하기 어려운 긴 그녀의 역사는 속상하게도 너무 자식들만을 향해있는 것 같아서 미안함에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터뷰 말미에 내 마음에 남았던 것이 있었다. 엄마에게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마음이었고 이제는 아무 모습이나 그녀 앞에 내놓아도 좋을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꽁꽁 언 바닥이 우리를 팔짱 끼게 만들었고 나는 엄마에게 꼭 붙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과 부서 이동을 요청한 일, 그리고 사실 첫 직장에서 그만두게 된 것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서였다는 이야기.

그녀에게 마음을 이제 막 들려주기 시작한 나는 조금 알 것 같았다. 회사에서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해사한 얼굴로 묻던 엄마에게 불쑥 화나는 마음을 보였던 것은 엄마가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회사 생활을 하며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가 회사 일을 물어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형편없는 실수를 한 줄 알아? 오늘은 또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데. 밖에서는 아무도 나를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제발 바깥 이야기 좀 그만 물어보라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나조차 고르지 못해 결국 화를 내버렸다.


“엄마가 말하는 제일 예쁘고 멋진 딸은 없어. 나는 나의 한계를 알아버렸어.” 사회생활을 하며 자존감이 무너지고 스스로를 무능하다고 생각할수록 나는 더 입을 굳게 닫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나의 진짜 이야기, 내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은 어땠어?" 하고 물어오면 “괜찮았어. 별일 없어.”로 대답했다.

엄마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나는 메시지를 받았다. “두 분 함께 찍으신 사진 보내드려요.” 전달받은 사진을 보니 웃고 있는 엄마와 내가 있었다. 나에게 가까이 몸을 붙인 엄마가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따님과 대화하실 때처럼 편하게 웃어보세요." 엄마 독사진을 찍을 때는 잔뜩 긴장하더니 언제 이렇게 해맑게 웃었데?


엄마에게 사진을 보낸다. '우리 엄마 이쁘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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