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이 프로그램은 요즘 거의 유일하게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나의 유튜브는 이미 그 알고리즘을 파악해 새로 나온 회차를 주기적으로 나에게 노출해준다.
최근 본 SNS의 짧은 카드 뉴스에서는 2030 세대들이 육아 고민 프로그램인 이 방송을 좋아하는 이유를 다뤘다. 뉴스에서는 2030 세대들이 이 프로를 통해 과거 어릴 때의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고 대신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래서 자주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던 거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이기적인 어른들의 모습에 함께 화를 냈다가 눈물 흘렸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과거 나의 어떤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례는 할머니, 아빠와 함께 사는 아이의 이야기였다. 아이는 통제적이고 강압적인 할머니, 감정적이고 화를 자주 내는 아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아이의 아빠마저도 마음에 맺힌 것이 많아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아빠는 할머니에게 어릴 때부터 심한 통제를 받고 자랐다고 고백했으며, 그는 아이에게까지 갈등이 대물림되는 것을 괴로워하는 듯 보였다.
오은영 박사는 손자를 대하는 할머니의 관찰 영상을 보고 할머니가 아이를 과하게 통제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가 결정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예를 들면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엄격히 구분해 어느 정도 자율성을 부여해야 하는데. 지금 할머니는 아이에게 자신만의 방식이 바르다고 생각해 그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덧붙여 화를 잘 내는 아빠는 자신의 모친인 할머니와도 감정적으로 자주 부딪혔는데 이는 아이들에게 큰 불안감을 주었다. 뒤이어 아빠와 할머니의 행동 지도가 이어지고 크고 작게 이뤄지는 가족들의 변화가 보였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릴 때 많이 아팠다면, 이상 행동을 자주 보였다면 부모님이 나의 마음을 들여다 봐줬을까. 지금 티브이에 나오는 저 아이들 말고 얼마나 더 많은 아이가 꾹 참고 참으며 마음을 달래고 있을까. 그들은 몇 년이나 지나서야 자신들의 마음이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너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성격이 안 좋아졌어야.” 엄마가 얼마 전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예전에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었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자기 말도 듣지 않고 이래저래 다루기 어려워졌다는 요지였다.
엄마의 그 말을 듣고 나는 불같이 화를 내지 못했다. 화도 내지 못할 만큼 어이가 없어 그냥 수그러든 채 듣고만 있었다. ‘그래. 예전에는 내가 참 순했는데.’ 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렸던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 많은 부분을 의지해야 하는 부모를 대항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부모를 선택할 수가 없는데 내가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은 모습을 보이게 되면 버림받을까 두려워 마음껏 망가질수도 없었던 것이다.
내면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나의 시도가 영원할 수도 부모를 이해해보려는 나의 시도가 계속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올해의 시작점에 놓인 지금 어린 나에게 또 그만큼 어렸던 부모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