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내 탓만 하는가
한때 우리 자신이었던 어린아이는 일생 동안 우리 내면에서 살고 있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지난해 말, 팀장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던 나는 부서장에게 부서 이동을 요청했다. 그 결과 지난 1월 1일 자로 부서 발령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난 3주, 새 부서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수 있었다.
팀장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건지, 본인 탓으로 내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변에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매일같이 독설을 내뱉었던 그 입을 잠깐 닫고 지냈다. 게다가 미루고 미루며 나를 괴롭혔던 결재 건도 책임질 건 지고 가라는 의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빛의 속도로 결재해주었다. 입사 이래 6년 가까이 한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인수인계할 내용을 출력해보니 스무 장이 넘어갔는데. 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저놈 얼굴은 그만 볼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 최대한 꼼꼼하고 자세하게 인수인계를 하려고 노력했다.
몇 년간 지속되는 계속 사업이 많은지라 무 자르듯 1월 1일 자로 인수인계를 완벽하게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내 자리에 오게 되는 후배의 짐을 최대한 덜어주고 싶어 3주째 그의 자리를 왔다 갔다, 후배는 내 자리를 왔다 갔다 그렇게 하루에도 4번에서 5번씩은 후배를 만나 업무 상의를 한다. 후배와 나는 자리를 맞교환했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며 업무 경계 없이 소통하며 서로의 어려움도 이해하게 되었고, 오랜만에 업무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6년간 다양한 업무를 하며 이제 새로이 배울 일은 없겠다고 하는 마음에 무료함과 많은 책임감도 느꼈는데. 내가 다시 배울 일이 있고, 익힐 분야가 생겨 신입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지난 3주의 중간쯤. 전임 팀장이 나의 속을 다시 뒤집어놓은 일이 있었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했느니 하지 않았느니 트집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팀장은 인수인계서 양식에 맞게 작성했는지를 따져 물었고, 업무 인계 협조차 출장을 가기 직전 나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너는 왜 시간을 빼지 않느냐며 오전 11시에 다그쳐 물었다. 당시 부서장의 상위직급자와 직원들이 돌아가며 점심을 함께하는 순번에 내가 들어갔고, 점심 직전에 취소하기 어렵노라 말했는데 팀장은 짜증을 내며 내일까지 인수인계서에 본인의 결재를 받으라며 성화였다.
이미 작성해놓은 인계서가 있었고, 본래 부서장의 사인을 받아야 하며, 부서를 함께 옮긴 선배 중 누구도 팀장에게 사인을 받은 직원은 없었지만. 다음날 오전 나는 서류를 챙겨 팀장에게 찾아갔고 두툼한 인수인계서를 넘겨본 팀장은 “음. 성의 있게 인수인계했군.” 하고 머쓱해했다.
그 이후 팀장과 진행했던 사업에 대한 현안 사항을 후배와 논의할 때마다 팀장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새 업무를 익히고, 후임자와 업무에 대해 상의하며 브레인스토밍을 하던 시간이 지난 괴롭힘을 돌이키는 시간으로 얼룩지게 된 것이다.
행복을 위한 필요한 요건은 모두 갖춘 것 같은데도 당신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무언가 부족하다는 공허한 느낌이 남아 있다. (내면 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마거릿 폴)
눈을 뜨기가 두려울 정도로 괴로웠던 지난 5개월의 일이 다시 되풀이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 부서를 떠났고, 현안 사항에 대한 결정 권한은 타인에게 있는데도 모든 문제가 내 탓인 것 같고 나의 뒤에서 악독한 팀장이 내 욕을 할 것만 같은 망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부서를 이동하긴 했지만 같은 층을 사용하고 있는 개방형 사무실이라 팀장과 완전히 분리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고. 발걸음 소리, 말소리 등에 예민한 탓에 팀장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개인적인 특성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점심시간에 저 멀리 복도에서 팀장의 발소리가 크게 들려 숨이 막혀왔고, 지금의 내 자리 가까이에 위치한 회의실에서 그 팀장이 회의하는 말소리가 들려 머리가 아파졌다.
들리고 보이는 것 외에도 이 부서에서 내가 잘하지 못하면 ‘거봐. 걔 저럴 줄 알았어.’ 하는 말을 듣는 건 아닌지, 내가 했던 일에서 문제가 생기면 ‘걔는 일을 어떻게 한 거야.’ 하는 뒷말을 하는 건 아닌지, 지금 부서의 새 팀장님은 나를 두고 ‘팀장 문제가 아니라 쟤 문제구먼.’ 하고 나의 부서이동에 대한 원인을 나에게 돌리는 건 아닌지.
그녀가 능력 있고 가치 있으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샌디 자신뿐이었다.(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마거릿 폴)
나는 이제 매 순간 다시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게 되었으며 결국 온 마음을 뒤져 나에게 익숙한 우울함을 찾아 꼭 끌어안고 동굴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가는 꼴이 되어버렸다.
어제 남편과 차를 타고 가며 대화를 하다 불같이 화를 냈다. 코를 씩씩 불며 화를 삭이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그래도 네가 나한테는 이런 말을 해서 다행이야. 어릴 때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지? 못한 거지? 그럴 때는 화나면 어떻게 했어? 그냥 참았어?”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급하게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몰라. 말 안 하고 싶어. 눈물 날 것 같아.” 부서만 옮기면 모든 게 완벽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들에 다시 사로잡힌 것 같아 괴롭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우울과 괴로움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내면적인 유대감 형성을 통해 우리는 어린 시절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마거릿 폴)
창밖과 차 안의 온도 차로 뿌연 김이 생겼다. 아직 바깥으로 나갈 용기는 없다. 그저 자리에 앉아 차 안에 서린 김을 손으로 쓱 닦아낸다. 성인 자아가 추운 바깥의 내면 아이를 힐끗 바라본다. 다시 한번 해보자며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