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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Mar 24. 2022

씨빌플라워(토목의 꽃)

벽지처럼 조용히 붙어있지 않기



“저는 언젠가 꼭 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리고 그 책의 이름을 ‘씨빌플라워’라고 할거에요.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을 전공하고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아닌 예쁘게 웃으며 앉아있기만 해도 되는 ‘꽃’ 취급만 받아와서 너무 화나요. ‘씨빌플라워’ 책 제목으로 어때요?”


마이너 필링스를 처음 읽었던 지난 연말, ‘나만 예민해서 이 난리야’라고 스스로 외면했던 ‘사소한’ 나의 감정이 전혀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그때. 벽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느라 내뱉지 못했던 쌍욕을,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그 욕을 서울 연남동 한복판에서 내뱉었을 때. 다시는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10년 전,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의 일이다. 50대 후반 부서장이 이런 말을 했다. “기술직 여자 선배들한테 고마워해. 쟤들이 일을 잘했으니까 여자를 더 뽑은 거지. 안 그랬으면 ‘여자’ 뽑아도 되겠다는 이야기는 안 나왔을 거야.” 시험도 면접도 내가 봐서 들어온 회사였는데 나는 ‘채용되기에 마땅한 능력있는’ 사람이 아니라 ‘여자인데도 어쩌다가 채용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여자 선배들과 순식간에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동시에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진 후배가 되어 있었다. 처음보는 중년의 남자가 우리를 돌돌 말아 하나로 뭉쳤고, 사이좋게! 열심히! 뛰어보라며 우리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등 떠밀려 시작하게 된 2인 3각 달리기가 맞는 표현이겠다. 우리는 ‘공대 아름이’라고 적힌 핑크 단체복을 입고 서로의 발을 단단히 묶었다. 초면에 어색한 어깨동무를 해야했고, 엉거주춤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곳에서 너희끼리 한 번 으쌰 으쌰 해보라’는 남자들의 시선을 견딘다.


달리기를 하면서도 나의 시선은 항상 저 반대편을 향했다. 가만있어도 여자라서 튀는 분홍빛 이쪽 말고 거뭇거뭇 한 저쪽 편. 조용히 관람석에 머물며 이름조차 흐릿하게 조용히 지낼 수 있는 그곳 말이다. 나는 남자들로 가득한 관람석 사이에 낚시 의자라도 두고 조용히 자리 잡고 싶었다. 나는 목표 달성을 위해 눈에 보이지 않은 가상의 여성을 하나 만들었다. 나의 모든 면을 그것에 맞췄다.


그녀는 손도 빠르고 꼼꼼했다. 체력은 또 엄청나게 좋아서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연속해도 탈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술은 또 얼마나 잘 마시는지 남초 직장에서 여자들의 고정석인 부서장 옆자리에 앉아서 끊임없이 술을 받고 그걸 다 마셔도 취하지를 않았다. 노래방에 가서 젊고 예쁜 트로트 가수들의 요즘 뽕짝을 메들리로 불렀고 지가 더 신이 나서 선배들의 손을 잡고 휘리릭 돌려가며 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부서장의 “내가 재미난 이야기해줄까? 어떤 여자가 샤워 가운을 걸쳤는데 그 안에 옷을 입었을까? 입지 않았을까?” 하는 맥락 없는 성희롱에 호호 웃으며 분위기 잡치지 않을만한 비위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병행했던 것은 직장 내 사모임이었다. 전국 토목직 모임, 대학 토목학과 동문 모임, 지역 토목직 모임이 그것이었는데. 그들은 모임에 미혼 남성이 있으면 나와 엮어주기 바빴으며, 나이가 많은 남자 선배 옆에 앉히기 바빴다. 나는 그들에게 머리 긴 동료일까 동료도 아니었을까 궁금해졌지만 생각하기를 멈췄다. 이제 막 명예 남성으로 임명받은 나에게 ‘문제의식을 느낀다는 것’ 자체는 겨우 끼어앉은 자리를 포기하고 다시 운동장 한가운데로 돌아가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지역의 한 사무소에서 여직원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경사진 사면을 올라가던 여직원이 미끄러질 것 같아 아래에서 엉덩이를 받쳐주었던 거라고 해명했으며, 피해 여직원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사람들은 사건의 사실관계가 아니라 피해자 여성이 평소 어떻게 입고 다녔는지, 얼굴은 예쁜지 몸매는 좋은지에 대해 평가했다.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처분 요청과 재발 방지를 위한 동료들의 노력은 전무했으나, 나는 회사를 떠들썩하게 하던 그 이야기를 최대한 모르는 척했다. 그들은 ‘이래서 여직원은 없는 게 편해.’라고 이야기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비겁했다. ‘여자인’ 나의 존재를 들킬까 봐 식당 방안의 벽지처럼 침묵했다. 어떠한 책임의식도 없었기에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같았다.

나는 그 이후, ‘여자’가 아닌 ‘동료’로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9년을 더 살았다. 남자 선배들은 중요한 이야기를 옥상에서 남자 후배들과 담배를 태우며 다 해버리고는 나에게는 아무것도 나눠주지 않았다. 경력이 차면서 이제는 내 능력을 믿어주려나 기대하다가도 ‘여자가 뭘 제대로 할 줄 알겠어.’ 하며 협력업체 여직원을 비하하는 팀장의 말에 나까지 주눅이 들었다.


기술적인 검토를 해서 내 의견을 제시해도 경력이 더 짧은 남자 후배의 말을 더 믿는 것 같았고. 이제 막 결혼한 나에게 ‘퇴근 안 하고 뭐해’ 하는 팀장이 나를 걱정해 주는 줄 알고 반가웠다가 ‘집에 가서 밥해야지’ 하는 말에 죽상이 되어 퇴근했다.

자가면역질환으로 일을 쉬어가게 되었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나만의 런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나는 여자인 것에 대한 죄송스러움으로 온몸을 떡칠하고 있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경쟁심으로 매사에 무리했고 그러다 병을 얻은 것이다. 나는 나를 공격하게 됨으로써 길고 긴 무리의 역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다른 세상에 태어나고 싶다. 의견 충돌이 생겨 큰소리가 오고 가는 현장에서 싸움이 붙으면 여자라는 이유로 뒷걸음질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일방적으로 처맞다가 ‘성폭력’으로 이어질까봐 꽥 소리로 지르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해야하는 말도 못하고 자리를 뜨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싶다. 야간에 혼자 근무를 하다가 퇴근할 때 성범죄에 노출되면 ‘쟤 성폭행 당했데’하는 말이 회사에 떠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싶다.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집중하는 세상에 살고 싶다.


주체적인 개인이 아닌 ‘여자’라는 덩어리로 쉽게 뭉쳐버리는 지금을 다시 마주한다. ‘우리끼리’ 뭉쳐진 김에 평온한 관람석을 향해 힘껏 굴러가는 상상을 해본다. 주류의 세상이 자신의 것들이라 생각하고 우리를 마음껏 구경하던 그들에게 기꺼이 속도를 낸다. 꽝하고 볼링핀이 힘없이 쓰러지듯 그들을 넘어뜨리고 나서야 우리는 깍지를 끼느라 하얗게 질린 손을 풀어준다. 이제 마음놓고 하고 싶은 것 다해볼 수 있는 세상을 다시 꿈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벽에 붙어 내내 우느라 울퉁불퉁 흉하게 울어버린 벽지를 떼어낸다. 이제 벽에 붙어 침묵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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