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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May 09. 2022

암시랑토 안 해

사랑하는 나의 늙은 여자, 할머니 1


태어나 보니 할머니가 내 곁에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숨 쉬듯 바라보며 자랐다. 스무 살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잤던 나는, 악몽을 꿀 때마다 손을 뻗어 할머니의 손가락을 꽉 쥐었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손에 힘을 쥐어 나를 안심시켰다. 할머니는 언제나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가진 모든 기억에 존재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여섯 살, 골목길에서 뛰어놀다 땀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면 마당에서 할머니가 빨래를 널고 있었다. 아홉 살, 놀이터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집으로 갈 때가 되면 저 높은 11층 베란다에서 쨍쨍한 목소리로 밥시간을 알렸다. 14살, 먹는 모든 것들이 키로 가는 성장의 시간 나를 원 없이 배불렸고. 18살,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는 나를 위해 팔팔 삶아 따가울 정도로 바짝 말린 수건과 다림질한 것처럼 반듯한 속옷을 가져다주었다. 나를 교실로 들여보내고 학교 안 동산에서 쑥을 캤다. 스물일곱 살, 회식 다음날 술병으로 방에 쓰러져 자고 있던 나의 엉덩이를 때려 일으킨 후 동네 내과에 나를 데려갔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손녀딸 대신 의사 선생님에게 술병 증상을 말해주었다.     


할머니는 나의 모든 순간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할머니의 죽음은 너무 먼 이야기였고, 믿고 싶지 않은 미래였다.     


할머니 또한 당신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할머니 나이 66에 태어난 나의 남동생을 두고 “이놈이 중학교 갈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할 것인디.” 하면서 눈물을 훔치다가도 “죽어야 이 고생이 끝나제.”라며 죽음을 원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할머니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가 죽음을 두고 허풍을 떠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뜨거운 냄비와 음식에 맨손을 가져다 댄다든지, 담배를 하루에 몇 개비씩 쉬지 않고 피워댄다든지, 늦은 저녁 잠들지 못하고 모로 누워 엉엉 울어버린다든지 할 때면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녀가 원하지 않아도 제발 살아내 주길, 괴로워도 내가 할머니를 잃지 않게 계속 존재해주길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항상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늙은 여자. 바깥세상의 이야기 그 어느 하나 궁금해하지 않는 그 여자에게 관심있는 것이라곤 나와 나의 형제들 뿐이라는 사실이 주는 안온함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잔뜩 쪼그라든 풍선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제 능력치보다 훨씬 큰 공기를 안고 있다가 순간 바람이 빠져버린 풍선처럼. 할머니의 굵고 일정했던 주름이 잘고 무분별하게 퍼져있었다. 우리 4남매가 할머니라는 풍선을 마음껏 부풀렸다가 그 안의 젊음을 모조리 들이마시고 순간 커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우리가 차지했던 자리만큼 커졌다가 쪼그라들어 너무 많이 늙어버렸다. 나의 할머니가 이제야 흐릿하고 슬퍼 보였다.     


할머니는 3년 전부터 나와 언니들을 배웅해줄 때마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느그를 언제 또 보끄나잉. 잘 살아라잉.” 했다. 할머니의 허풍에 속지 않겠다 각오하며, 나는 “아 왜 그래 진짜. 할머니. 나 갔다 온다. 금방 또 올 거야.” 급하게 말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엘리베이터 바닥을 내려다보며 문 닫힘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두 달 전쯤이었다. 할머니가 엄마를 방에 불러다 젊을 적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한다든지. 이부자리 바깥 맨바닥에서 바닥에 고꾸라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든지. 골다공증으로 등뼈에 금이 가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든지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급하게 본가에 도착한 나의 손을 잡고 “뭣 하러 왔냐. 나는 암시랑토 안 해야”라고 말했다. 내 손을 양손으로 꼭 잡고 만지고 주무르면서 “나는 인자 느그들 다 잘 컸응께. 아무것도 부끄러운 것도 없고. 인자 죽어도 여한이 없어야. 암시랑토 안해.” 주문을 외우듯 “암시랑토 안 해. 암시랑토 안 해.” 하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드디어 인정하게 된 것 같았다. 우리가 이별할 수도 있겠구나. 내가 할머니를, 할머니가 나를 잃을 수도 있겠구나. 나는 서울에서 입고간 옷 그대로 할머니 앞에 앉아 조용히 울었다. 할머니의 눈물이 흘러 얼굴 주름 사이사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할머니는 내 손을 내내 쓰다듬다가 내 발을 빤히 쳐다보며 “양말이 못쓰겄어야.” 했다. 나의 검은 양말의 발끝이 얇아지고 닳아져 발가락이 비춰 보였다. 할머니는 서랍에서 목이 짧고 검은 양말을 꺼내서 내밀었다. 곱고 반듯하게 접혀 플라스틱 양말 걸이에 걸린 채 고급 비닐 포장이 된 양말이었다. “한나는 느그 고모 오믄 줄라고 놔뒀은께. 이것은 가꼬가 신어라잉.” 할머니가 내민 검은 양말에는 보라색 꽃이 수놓아져 있었다. 양말 바닥에는 미끄러움 방지를 위한 별 모양 고무 프린트가 군데군데 덧대어 있었다.     


“장서방은 별일 없제?” 할머니가 이부자리에 누워 혼잣말했다. 할머니는 손녀딸을 사랑하는 손주사위의 마음이 그사이 바뀐 것은 아닌지 나보다 더 불안해하는 듯 보였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할머니에게 손주사위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장서방 건강한가. 고생이 많겄네.” 하며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혜원이가 우리 집 귀염둥이였네.”라고 말했다. 맥락 없는 손주 자랑이었다. 통화 내용을 같이 듣고 있던 나는 괜히 머쓱했다. 할머니는 이 당연한 사실을 너(손주사위)는 잊지 않아야 한다는 듯 손주사위에게 몇 번 강조한다. “암만, 월매나 사랑받고 귀염을 독차지했다고.” 할머니는 “나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고 그래서 사랑받을 자격이 충만함을 알게 하고(188)”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할머니가 방에서 같이 자자고 했다. 방으로 와보라고 하더니 장롱에서 꺼낼 이불을 알려준다. 바닥에 깔 이불, 덮을 이불, 베개를 꺼내어 놓았다. 등뼈에 금이 간 할머니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다며 수면제 반쪽을 쪼개어 먹었다. 나는 이불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할머니는 이부자리에 눕기 전 무릎을 꿇고 중얼거렸다. 실눈을 뜨고 보니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였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암시랑토 안 해”라고 용감한 척 말하던 할머니는 울먹이며 기도하고 있었다. “내일도 눈을 뜨게 해주시옵소서.” 할머니의 나이는 벌써 아흔넷인데, 나와 보낸 시간은 겨우 서른 일곱해 뿐이다. 우리의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도 모르는데, 어느새 또 하루만큼 짧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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