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단발머리 주방 신사

by mamang


순자와 상영은 테이블 몇 개 만을 두고 가게를 시작했다. 순자의 고향 화순의 ‘화’와 상영의 고향 곡성의 ‘곡’을 합성해 ‘화곡식당’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고기를 구워 먹기도, 사갈 수도 있는 식육 식당이었다. 조그맣게 시작한 가게에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걸음만 가면 되는 가까운 맞은편 건물 1층에 세를 들어 가게를 확장했다.


상영의 주장대로라면 화곡 식당은 1980년대 당시 광주에서 "농장 직영"을 걸고 장사하는 유일한 가게였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혼자 고기를 썰어 팔 수가 없었다. 때문에 주방장까지 구해 함께 쉴 새 없이 고기를 자르고 팔고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상영은 돈이 마구 들어와 지폐를 주워 담아 얼마인지 헤아리는 것도 힘들었던 그때를 무용담처럼 이야기한다. 혜원은 가게에 손님이 많아 주방장을 쓰던 화곡식당의 르네상스보다 단발머리를 한 주방의 신사를 더 오래 기억하고 싶다.


화곡식당의 초록색 간판 아래에는 빨간 불이 나오는 창문이 있었다. 손님들이 식당 안쪽까지 들어오지 않고도 고기를 테이크 아웃할 수 있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 뒤에는 혜원의 인생 첫 친구 주방장 김 씨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는 손님들이 창문 바깥에서 말을 걸어오면 숱이 많은 단발머리를 흔들며 밝게 인사했다. 그는 미간에 크고 검고 튀어나오기까지 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코는 크고 길었고 턱은 짧아서 스머프를 괴롭히는 가가맬을 닮았지만 말씨는 부드럽고 친절했다. 혜원은 여섯 살이 되는 그해, 두 언니와 함께 곡성에서 살고 있었는데. 식당일이 바쁜 순자와 상영이 세 딸을 복덕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혜원은 어느 날 딸들을 만나러 온 상영의 뒷다리를 놓지 않고 나도 데려가라며 엉엉 우는 바람에 엉겁결에 광주로 따라 올라왔다. 혜원, 순자, 상영은 식당에 딸린 작은 방에서 함께 지냈다.


점심시간이 지나, 식당 이모들이 마늘을 까고 숟가락에 종이 모자를 씌우고 버섯을 자르기 등 잔업을 하기 전, 모두가 쉬어야 하는 시간이 되면 이모들과 엄마들은 식당 방바닥에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벌러덩 누웠다. 그녀들은 좌식 테이블 아래에 놓인 방석을 주워와 반으로 접어 머리에 대고 누웠다. “혜원이도 이리 와서 자자.” 그녀들이 혜원을 부르면, 온 방 가득한 고기 냄새와 엄마, 이모들에게 묻어있던 반찬 냄새가 싫어서 바깥으로 나왔다.


혜원은 식당 카운터 밑에 숨겨있는 서비스용 껌을 몰래 찾아 씹다가, 가게 구석 테이블 앞에 있는 티브이를 틀어 보다가, 후식 누룽지를 위해 만들어놓은 누룽지를 찾아와 씹어먹다가 금방 지루해졌다. 그럴 때면 주방장 아저씨를 찾아갔다. 아저씨가 쉬고 일하는 곳은 계산 테이블 건너편 삼각 모양의 작은 공간이었는데. 아저씨는 그곳에서 일하고 쉬고 혼자 놀았다. 칼질을 많이 해야 하고 쓱싹쓱싹 긴 쇠봉으로 칼을 자주 갈아야 하는 아저씨의 공간은 손님이 뜸한 시간에만 허락을 맡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아저씨는 그곳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를 고기 테이크아웃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이 꺼진 식당에 나와있는 혜원이 빼꼼 고개를 내밀면 아저씨는 칼을 가는 긴 쇠봉을 혜원에게 내밀었다. 아저씨는 지난번에 알려주다만 개똥벌레라는 노래를 마저 알려주었고. 혜원은 악보 없이 아저씨가 불러주는 노랫말에만 의지해 한 소절씩 따라 불렀다. “나는 개똥벌레 친구가 없네.” 실제로 친구가 없었던 혜원은 나이 많고 늙은 친구와 그를 따라 부르는 노래가 좋았다.


아저씨는 단발머리가 귀찮았는지 자주 귀 뒤로 머리를 꼽으며 노래를 알려주었다. 혜원은 아저씨의 머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단발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를 단발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저씨는 혜원에게 노래를 알려주면서도 월급 받는 그의 본래 일에 소홀해하는 법이 없었는데. 함께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도 창밖의 손님들이 똑똑 창문을 두드리면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 진지한 말투로 주문을 받았다. 방금 전까지 ‘개똥벌레’를 부르던 혜원의 친구는 도마 위에 벗어놓은 목장갑을 다시 꼈고, 빨간 조명이 나오는 냉장고 안에 손을 넣어 고기 덩어리를 꺼내어 턱턱 잘랐다. 은색 쟁반의 무게로 영점 조절된 전자저울 위에 고기를 한점 두 점씩 넣었다 뺐다 하며 인심 좋거나 인색한 주인 행세를 했다. 무게를 다 재면 검은 비닐봉지를 한 겹 두 겹으로 싸서 현금과 교환했다. 혜원은 친구의 실수 없는 업무를 자주 진지하게 바라보았고. 자신의 손을 썰지 않고 고기 덩어리만 완벽하게 썰어내는 아저씨가 든든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혜원의 첫 친구 김 씨 아저씨는 이후 몇 년 더 일하다가 가게 사정이 나빠져 직장을 잃었다. 아저씨의 자리는 아빠 상영이 대신 지키다가, 나중에 상영이 뇌출혈로 쓰러지고는 엄마 순자가 그 자리와 카운터를 자주 왕복하게 되었다. 혜원은 그 자리의 원래 주인은 따로 있다는 걸 잊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고, 김 씨 아저씨가 숱 많은 단발을 날리며 춤추듯 냉장고와 도마 사이를 날아다녔던 시절을 자주 그리워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뭔가를 탁탁 썰어낼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해했다.


몇 년이 더 지난 후 혜원은 스물두 살이 되었고, 큰언니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온 김 씨 아저씨를 발견했다. 그들이 함께 노래를 부른 후 16년이 지났을 때였다. 아저씨는 여전히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다. 놀랄 만큼 늙지도, 머리카락이 더 자라지도, 더 짧아지지도 않았다. 혜원은 아저씨에게 아는 채 하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아저씨를 지켜봤다. 친구가 여전히 개똥벌레를 기억할지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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