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식당에 들어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의자에 바로 앉는 테이블들이 가운데에 있고, 좌식형 방들이 기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순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방 중 가장 작은 방을 ‘내실’이라 불렀다. 좌식 테이블 2개를 넣으면 꽉 차는 작은 방이었다. 순자는 도시에 올라와 머물 곳이라곤 식당 하나뿐이라 아쉬운 대로 그 방에서 먹고 자며 지냈다. 세 딸을 곡성에 계신 시어머니 복덕에게 맡기고 올라왔던 터라 곧 형편이 나아지면 온 가족이 함께 누울 방을 꼭 마련하리라 다짐하고는 했다.
손님들이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던 ‘내실’이 순자에게는 유일한 ‘방’이자 ‘집’이었다. 저녁 장사를 마치고 바닥의 고기 기름과 술 냄새가 체 가시기도 전, 그 방의 좌식 테이블 두 개를 겹쳐 한쪽으로 치워 누울 자리를 마련했다. 테이블 옆에 자리 잡고 누운 젊은 부부는 고기 기름에 미끌거리는 바닥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지고는 했다.
화곡식당은 옛날 전남도청이 있던 자리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도청과 인쇄소에서 오는 손님들로 분주했다. 순자는 주방을 나다니며 몸통보다 큰 쟁반과 은박지를 씌운 고기 불판을 날랐다.
남편 상영은 묵묵하게 일하는 남편이었지만, 친한 사람들이 오면 헤프게 고기와 음식을 내주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실속 없는 상영 탓에 순자는 바쁘게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도 고기 도마와 카운터의 셈을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카운터에는 상자 뚜껑 모양의 하얀 나무판이 있었는데, 나무판에는 못이 거꾸로 박혀있어 그 위에 종이를 꽃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고슴도치 가시 같은 못에는 카운터마다 주문한 음식과 음료수, 술이 적혀있는 네모난 종이가 못에 찔려 고정되어 있었다. 순자는 바쁘게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고기 접시와 음식들을 헤아렸고 못에 꽂힌 종이 위에 바를 정자로 숫자를 표시해두었다.
순자는 점심 장사와 정리를 마친 3시쯤이 되면 내실로 들어와 몸을 뉘었다. 다시 일어나 옷장 안에 있는 베개를 꺼내려 일어나기가 귀찮다. 순자는 손을 뻗어 손님용 방석을 급하게 당겨와 반으로 접어 머리 뒤에 가져간다. 요 앞 인쇄소에서 얻어온 이면지에 내일 백반에 올릴 반찬을 적어 내려가다가 꾸벅 졸기 시작한다. 고기 냄새가 방에서 나는 건지 내 몸에서 나는 건지 내가 고기가 되어버린 건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던 순자는 까무룩 잠이 든다.
순자는 지난 주말 큰마음먹고 시댁 곡성에 내려갔다. 하룻밤도 못 자고 잠깐 앉아있다 다시 올라오려는데 막내딸이 죽어라 울고불고 달라붙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광주에 데리고 올라왔다. 제 아빠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나도 데리고 가라고 울어재끼고 남편도 펑펑 울어 별수 없었다.
올해 여섯 살 먹은 막내딸 혜원은 종일 가게에서 지내는 것이 신기한지 여기저기 참견을 하고 다닌다. 도마 앞에서 칼을 갈던 주방장 김 씨에게 개똥벌레를 배웠다며 종일 불러대는 통에 식당이 하루 내 시끌벅적하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고사리 같은 양손을 위아래로 겹쳐 흔들거리며 부르는 모습이 귀여워 고기 힘줄을 면도칼로 벗기면서도, 마늘 껍질을 까면서도, 행주를 접으면서 내내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딸내미 재롱을 매일같이 보면서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 시간에는 손님들이 더 정신없이 들이닥친다. 고기 냄새 술 냄새 담배 냄새 한복판에 딸내미가 왔다 갔다 하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오늘은 웬만하면 내실에 손님을 안 받고 싶었는데 굳이 그 방에 들어가 고기를 굽겠다는 단골 탓에 방안이 담배 냄새 고기 냄새로 가득하다. 혜원은 티브이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에 저녁 내내 앉아있다. 언니들 간섭 없이 티브이를 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어른들이 보는 일일 연속극을 틀어놔도 뉴스를 틀어놔도 내내 싱글벙글하다.
저녁 장사까지 마치고 나니 담배 냄새 고기 냄새에 절어있는 딸내미를 씻겨야 하는데 식당에 딸린 화장실에는 세면대 하나뿐이었다. 별수 없이 주방에 가서 물을 끓여 배추 씻는 큰 대야에 물을 받아 딸내미를 씻길 준비를 한다. 목욕탕 하나 없는 곳에 자식을 데려오고 보니 딸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실의 테이블을 남편이 옆방으로 옮겨놓았나 보다. 셋이서 누울 자리가 번듯하니 넓어졌다. 혜원은 처음 누워보는 방이 신기하고 엄마 아빠를 독차지한 게 잔뜩 신난 모양이다. 고기 냄새 밴 방에 누운 게 뭐 그렇게 신이 나는지 이불을 덮고 누워서도 한참을 조잘거린다.
순자는 어젯밤 귀속에 바퀴벌레가 들어가는 바람에 난리를 피웠던 게 생각난다. 어제 순자가 한쪽 발로 콩콩 뛰어다니며 “귀에 뭐가 들어갔어요!” 하며 도움을 요청했는데. 남편 상영은 귀찮은 듯 등을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순자는 벌레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아 끔찍했는데 한참을 뛰고 머리를 때린 후 머릿속이 조용해졌다. 순자는 냅킨을 돌돌 작게 말아 혜원의 귓구멍을 단단히 막아준다. 남은 냅킨 조각으로 순자의 귀를 틀어막는다. 남편은 미우니까 귀를 막아주지 않는다. 벌레 따위 저 사람 귓구멍에 들어가라지. 나는 도와주지 않을 거야. 순자는 생각하며 누웠다.
순자는 내실을 벗어나 넓은 집, 고기 냄새 안 나는 방에 혜원을 재우는 상상을 한다. 내 유일한 집이자 내 유일한 방, 내실에 내 딸은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드드렁 남편이 코를 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