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할머니와 모시옷

여름과 땀띠

by mamang



혜원의 할머니 복덕은 미싱 돌리는 자였다. 복덕은 매일 의자에 앉아 발판 위에 발을 올려놓고 발볼과 발뒤꿈치에 번갈아가며 힘을 실었다. 그녀는 발을 굴리면 돌아가는 미싱 앞에 앉아 철마다 이불보를 만들고, 손주들의 옷을 새로 만들거나 마구 자라는 이들을 위해 쉴 새 없이 옷을 수선했다.


혜원은 복덕의 세 손녀 중 유독 여름을 어렵게 보내는 아이였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엉덩이에 가득 땀띠를 달고 다니느라 여름 내내 고생이었다. 하루 종일 땀에 절어 오돌토돌 땀띠가 올라오면 혜원은 벅벅 온몸을 긁어댔다. 복덕은 그런 혜원의 몸을 깨끗이 씻겨주고 선풍기와 부채로 땀을 마저 식혀주었다. 복덕이 시간과 공을 들이면 어느새 혜원의 반곱슬 머리가 고슬고슬 말랐다.


혜원이 예쁘게 잘린 수박과 자기 팔뚝보다 긴 옥수수를 한입 앙 물면 하루 종일 가려웠던 것도 다 잊어지는 그런 여름날이었다. 저녁에도 가려움이 가시지 않는 날이면 혜원은 꼼짝없이 세숫대야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있어야 했는데. 소금물이 땀띠를 가라앉혀 준다는 복덕의 믿음 때문이었다. 복덕이 미지근한 물에 굵은소금을 넣고 한참을 녹여 방으로 가져오면 혜원은 익숙한 듯 세숫대야에 앉았다. 아무리 졸려도 엉덩이의 땀띠가 가렵지 않을 때까지 소금물에 앉아 자울 거리며(기우뚱거리며) 졸아야 했다.


복덕은 이런 혜원에게 여름마다 모시옷을 지어 입혔다. 복덕은 모시천감을 떼어와 혜원의 몸에 맞게 작은 천조각을, 아들 상영을 위한 큰 모시천 조각을 잘라냈다. 혜원의 작은 모시옷을 요리조리 봐가며 만들고 나면 상영의 큼직한 반팔 금세 완성한다. 복덕은 혜원과 상영에게 입혀본다. 손 볼 곳이 없으면 풀을 먹여 주름 하나 없는 풍선 같은 모시옷을 완성한다. 특히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혜원은 똑단발에 배가 볼록 나와서 그런지 품이 넓은 모시옷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혜원도 겨드랑이에 바람이 잘 통해서 가려울 일 없는 이 옷이 마음에 든다. 물론 복덕이 모시옷에 풀을 심하게 먹이는 바람에 구겨질 일이 없는 철갑옷을 입은 것처럼 엉거주춤 어색하지만 말이다. 복덕은 그해 혜원과 상영이 입을 새 옷을 지어 입힌 후 본인은 여러 해를 걸쳐 입어오던 모시옷을 꺼낸다. 물론 복덕의 솜씨 덕에 헌 모시옷은 새 옷처럼 다시 태어난다. 혜원은 모시 커플 옷을 입은 채 복덕과 시장에 가는 일을 좋아했다. 할머니와 같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유일한 계절이었고 시장 어른들은 모시옷을 반가워했기 때문이다. 가끔 나이가 많은 학교 선생님들이 “어머. 모시옷을 입었네. 누가 만들어주셨니?” 하고 신기한 듯 물어보면. “우리 할머니가요. 집에서 만들어줬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참 좋았다.


혜원은 모시옷을 입고 상영과 순자의 가게에 놀러 가 있을 때면, 마찬가지로 풍선같이 부풀어있는 모시옷을 입은 상영과 함께 있는 것 또한 좋았는데. 가게에 들어서는 손님들이 혜원과 상영을 신기한 사람들 보듯 보는 것도, 귀한 옷을 입었다고 말해주는 것도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혜원은 까끌한 모시옷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아침에 잔뜩 부풀어있던 옷은 종일 땀에 절어 구깃구깃해졌지만, 혜원은 어쨌든 이 옷이 마음에 든다.


혜원은 복덕이 발을 굴려 돌리고 있는 미싱을 곰곰이 살핀다. 복덕이 자리를 비우면 미싱 의자에 앉아 발을 굴려보려고 길게 뻗어도 발이 닿지 않아 금세 포기하고 내려온다. 방바닥에 철퍼덕 앉아 복덕이 방금까지 굴리던 발판을 손으로 눌러본다. 시소처럼 양쪽이 위아래로 내려오는 발판이 바쁘게 오르고 내린다. 쫓기고 떨어지는 무서운 꿈을 매일 꾸며 빠르게 자라던 날들이었다. 더불어 매일같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야 했던 복덕의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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