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모가 좋아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들

by mamang



혜원은 식당 일하는 여자들 틈에서 영원히 그녀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모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시간을 돈으로 야무지게 바꿔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혜원은 복덕스럽고 순자스럽기도 한 식당 이모들이 좋았다.


혜원이 처음 만난 여자 어른 할머니 복덕은 땅을 파면 먹을 것이 나오게 하는 사람이었고, 엄마 순자는 일자리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시간을 돈으로 맞바꿔 가정을 꾸리는 여자였 때문이다.


화곡식당의 여자들은 자신의 첫째 자녀 이름 뒤에 ‘이모’라는 호칭을 붙여 스스로를 소개했다. ‘나는 지혜 이모야. 나는 미희 이모야.’ 하는 식이었는데. 혜원은 그것이 처음에는 그녀들의 이름이라고 믿었다.


그녀들은 식당에 처음 출근한 날에도 몇 년간 이곳을 다닌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다.


처음 들어가는 주방에서도 냄비 위치와 불의 위치를 금방 알아냈고, 가스 불을 어떻게 붙여야 할지 알았다.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 앞에서 용감했으며, 가끔 괴팍하고 무례한 손님들을 마주해도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자식들의 이름으로 불리며 서로의 진짜 이름 한 번 묻지 않는 여자들이었으며, 아침 8시 전에 출근해 저녁 10시 넘어서까지 일했고, 머리에 크고 무거운 쟁반을 이고도 자유롭게 배달을 다녔다.


혜원이 식당 가장 안쪽 방 내실에서 눈을 비비며 일어나면 상영은 가게 셔터를 올리고, 순자는 가게 문과 창문들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있었다. 이모들이 하나 둘 뽀얗고 주름 없는 얼굴에 비해 심한 뽀글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입고 온 외투와 신고 온 신발을 벗고 앞치마를 두르고 슬리퍼를 신었다. 혜원은 내실 바로 앞에 있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 티브이를 보며 아침을 시작했는데. 혜원을 뺀 모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에 뭔가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쉴 새 없이 주변을 둘러봤다.


이모들은 식당 안의 모든 의자를 뒤집어 테이블 위에 올리기 시작했고, 혜원이 앉아있던 테이블만 남겨두었다. 그러고는 저 멀리에서부터 바닥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혜원은 의자들이 물구나무를 서 있는 모습이, 이모들이 빗질을 할 때마다 들리는 병뚜껑이 바닥을 긁어대는 소리, 물티슈 비닐이 빗자루를 따라 사각거리는 소리, 손님이 실수로 떨어뜨린 젓가락이 발에 밟히며 내는 소리가 좋았다.


더 이상 쓸어낼 것이 없어 락스를 희석한 물로 바닥을 닦아내야 할 때가 되면. 혜원은 순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순자는 돈통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혜원에게 내밀었고. 혜원은 다녀오겠다며 대충 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요술공주 샐리 비디오를 빌리러 가던 아침은 식당 주변 모든 상인들에게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화곡식당을 둘러싼 인쇄소, 스티커, 봉투 가게, 세탁소 주인아줌마 아저씨들은 모두 분주하게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혜원은 그때마다 고개가 떨어져라 수십 번의 인사를 해야 했다. “안녕하세요”에서 차분히 시작해서 나중에는 “안녕. 안녕. 안녕. 하세요. 하세요. 하세요.” 하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그쯤 되면 비디오 가게를 지나 화곡식당이 저쯤 보이기 시작했다.


순자는 가게 바깥에 있는 대형 솥에 어제부터 끓이던 설렁탕 국물을 살피고 있다. 홀 안에서는 청소를 마친 이모들이 물구나무서있던 의자들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있었다. 혜원은 다시 지정석에 앉아 테이프를 넣고 요술공주 샐리와 평온한 아침을 보낸다.


점심 장사가 시작되면 혜원도 더불어 긴장이 되는데. 머리에 뜨거운 냄비, 뚝배기, 밥그릇, 반찬통을 잔뜩이고 상인들에게 배달을 나가던 이모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혜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머리 위에 양파링 모양으로 만든 노끈 머리 보호대를 올리고 그 위에 널따란 쟁반을 올려 춤추듯 음식을 날랐다. 혜원은 나중에 그녀들의 뒤를 따라 봉투집, 종이집, 초대장을 만드는 집, 스티커를 만드는 집 등으로 따라다녔다. 항상 열려있던 상인들의 가게로 들어선 그녀들이 앞치마에서 장부를 꺼내 서명을 받을 때까지 혜원은 문밖과 안 어디쯤에 엉거주춤 서 있었다. 이모들이 장부를 챙겨 주머니에 넣고 양파링 모양 노끈을 옆구리에 찌르고 뒤를 돌아보면, 그녀를 기다리던 혜원을 향해 찡긋 윙크를 날리며 반가워했다. 이모와 혜원은 무사히 식당으로 걸어 돌아왔다.


이모들은 식당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낸 후 매번 달게 낮잠을 잤다. 식당 방 안에 들어가 가스불을 모조리 켜 뭉근한 불에 누룽지를 조금씩 익게 만들어두고는 테이블 아래에 있던 방석을 베고 잠을 청했다. 방 바깥에는 이모들이 벗어놓은 파란색, 검은색 또는 빨간색 고무 슬리퍼가 널브러져 있었다. 신발에 주인이 따로 없고, 언제고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사람이 그 신발을 여러 번 바꿔 신었다는 걸 혜원은 알고 있었다.


혜원은 이모들이 낮잠에서 일어나 식당에서 쓰이는 재료 이것저것을 다듬고 자르고 만지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그녀들은 때로 자식들의 이야기를 침을 튀겨가며 하거나. 남편의 욕을 하거나. 주변 인쇄소 상인들의 이런저런 소문들을 주고받았다. 혜원은 옆에 앉아 숟가락의 물기를 마른행주로 닦는 이모들을 따라 하고, 닦인 숟가락에 종이 모자를 씌우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고기와 함께 구워질 송이버섯 자르는 것과 양파 자르기, 마늘 얇게 썰기도 해보고 싶었는데 아무도 혜원에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대신 혜원은 이모들이 쉴 새 없이 던져주는 이야기들을 받아먹는 일이 좋았다.


쟁반에 눌려 정수리가 납작해지고, 낮잠을 자느라 뒤통수가 납작해져도 이모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들은 거울 한 번 보지 않고 하루에도 수십 개의 상을 차리고 치웠다. 그녀들은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마치고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머리를 매만진다. 입고 왔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출근하는 사람처럼 다시 태어난다. 혜원이 “이모. 안녕히 가세요.” 하면 이모들은 젊은 사장 부부와 혜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식당을 나선다. 몇 년째 함께 일하는 이모들도, 월급이 아닌 일당을 받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에 온 이모도 마치 다시 볼일 없는 사람처럼 아쉬움 없이 돌아선다. 봉긋 솟아오른 이모들의 파마머리를 바라본다. 능력 있는 자의 멋진 뒷모습이라고 혜원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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