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은 가장 힘이 센 사람을 안다. 혜원의 아빠 상영은 식당에 생고기가 들어오는 날이면 구멍이 날 듯 해진 옷을 입고 식당을 나섰다가 돌아올 때는 키를 훌쩍 넘는 큰 고기를 등에 지고 왔다. 생고기가 옷에 묻어 핏물이 스미는 것도 염려하지 않았다. 몸에 남을 냄새와 얼룩을 상관하지 않는 상영은 단호하게 움직였다.
그때쯤, 그러니까 혜원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무렵 사극이 유행이었다. 친구들과 친구들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혜원과 혜원의 가족들이 빼놓지 않고 보는 사극 드라마에는 빠짐없이 천시받는 백정과 그의 가족들이 나왔다. ‘소나 개, 돼지 따위를 잡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하는 백정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얼굴은 거뭇거뭇하고 말씨가 거칠었다. 사람들은 백정의 가족들에게 말을 섞어주지 않았고 때로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
혜원은 드라마를 볼 때마다 갈고리에 고기를 걸어 옮기던 상영의 두꺼운 손과 꼭 다문 입술을 떠올렸다. 샥샥샥 쇠봉으로, 슥슥슥 돌로 칼의 날을 세우던 모습과 뭉텅뭉텅 덩이 고기를 잘라내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상영은 농장 직영하는 식육식당이 또 어디에 있냐, 우리 집 고기 먹다 다른 집 고기는 못 먹는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혜원은 ‘분명 여물 먹는 소에게 내 새끼라고 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상영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가 소도 막 죽이고 그래?" 상영은 내 질문에 고개를 흔들고는 고기를 마저 썰며 말했다. "글안 해.(안 그래.) 나는 잡아놓은 고기를 받아오제. 잡는 데는 따로 있어야."
혜원은 가정통신문을 상영에게 내밀었다. 상영은 비어있는 부모님 직업란을 힐끔 보고 하던 일을 멈추지는 않는다. 혜원은 옆에 서서 “식당? 고깃집? 가게?”라고 묻고 상영은 갈비 사이사이 날카로운 칼을 찔러 넣어 틈을 벌린다. 우지끈 갈빗대가 분리되어 나온다. 상영은 미간에 힘을 잔뜩 쥐고 붉은 핏물이 든 목장갑을 낀 손등으로 이마를 긁으며 무심히 말한다. “상업. 상업이라고 써.” 혜원은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일단 받아 적었다. 고깃집보다 훨씬 교양 있어 보이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생고기를 들여온 날이면 상영은 빠짐없이 윙윙 전기 톱날이 무섭에 돌아가는 기계 앞에 반나절 이상을 보내야 했다. 갈빗대나 사골을 사용할 수 있는 알맞은 크기로 잘라내야 했기 때문인데. 혜원은 이런 날이면 내내 마음을 졸였다. 주방장 김 씨 아저씨에게도 전기톱 기계를 맡기지 않는 상영은 날카롭고 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사람 같아 보였다. 혜원은 상영의 손이 전기톱으로 잘려나가는 일을 자주 상상했다. 혜원은 멀쩡하고 깨끗한 길을 걷다가도 쉽게 넘어지는 아이였기 때문에 매번 위험한 전기톱에서 양손 멀쩡히 살아오는 상영의 조심성에 경탄을 보냈다.
상영은 간식에 관대한 자였다. 순자는 잘 사주지 않는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턱턱 잘 사줬다. 상영은 고기가 들어오는 날처럼 바쁜 날이 아니면 꼭 혜원과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가게에 앉아 두리번거리고 있는 혜원을 순자 몰래 툭툭 치며 윙크를 했고, 혜원은 그 신호를 알아차리고 껑충 의자 아래로 뛰어내려왔다. 혜원이 상영의 손을 잡고 식당 문을 열고 열 걸음 정도 걸어가면 만물 슈퍼가 있었다.
혜원은 브라보콘을, 상영은 비비빅 같은 하드를 골랐고 가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계산하거나 자주 외상을 달고 그것들을 가져왔다. 식당에 돌아온 이들은 식당 카운터 앞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기 시작한다. 상영은 혜원이 브라보콘 껍질 까는 것을 기다리다가 예외 없이 혜원을 부른다. “아빠 한입 주라.” 혜원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안돼. 아빠는 너무 입이 커.” 상영은 혜원에게 애원한다. “아니야. 이번에는 진짜 한입. 진짜 쪼끔만 먹을게. 너무 맛있어 보여서 그래.” 혜원은 상영이 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그가 들고 있는 비비빅이 왠지 창백해 보이기도 했다. 혜원은 양손으로 힘주어 브라보콘을 잡고 상영에게 겨우 내민다. 상영은 겸손하게 다가오다가 돌연 입을 쫙 벌려 브라보콘 머리통을 한입에 앙 물어가 버렸다. 혜원이 양손으로 쥐고 있던 브라보콘은 머리통을 잃고 외로운 과자 밑동과 아이스크림 조금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상영은 눈물을 눈에 매달고 노려보는 혜원을 보며 껄껄 웃는데 입안에 하얀 아이스크림이 한가득이다. 혜원은 마저 울면서 남은 과자와 아이스크림 조금, 초코가 발리다 만 밑동을 먹었다. 브라보콘의 머리통에 박혀있던 초콜릿과 땅콩이 자꾸 생각나 상영을 흘려보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한다.
이런 억울한 일을 계속 겪다 보니 언젠가부터 아이스크림 주인인 혜원이 아주 조금만 진짜 조금만 먹으라고 애원하는 처지가 되어있었다. 상영은 매번 자비 없이 브라보콘 머리를 앙앙 씹으며 크게 웃었다. 상영은 크게 웃고 혜원은 크게 울던 그날들, 상영은 비현실적으로 젊었고 혜원은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