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덕은 7살 손녀 혜원의 손을 잡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평소 빵을 사주는 일은 거의 없고 간식은 떡을 쪄주거나 부침개를 부쳐주거나 튀김을 해주거나 했던 복덕이었는데. 오늘은 왠지 기분을 내고 싶었다. 치마 속 고쟁이에 있는 호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방울 빵을 샀다.
7살 혜원은 복덕이 건넨 빵을 두 손으로 받아 들고 어리둥절했는데, 복덕이 포장을 뜯고 다시 쥐어주니 냠냠 먹기 시작했다. 빵을 집어먹다가 손가락을 쪽쪽 빨다가 혜원은 곰곰 생각했다. 복덕은 교회 갈 때만 꺼내 입던 예쁜 긴 주름치마를 입었고 한 손에는 아주 큰 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무슨 날인가 궁금했고. 백원도 아끼던 복덕이었기에 별 고민 없이 빵을 사준 오늘의 복덕이 조금 낯설어 보인 탓이기도 했다.
혜원은 할머니가 건네준 빵 봉지를 내려다보며 생각하다가 금세 활짝 웃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선택받았어. 큰언니 작은언니 없이 우리끼리 집을 나온 거잖아!” 혜원은 도시 삶을 버틸 수 없었던 복덕이 가장 귀여운 손녀만 데리고 가출한 거라 확신했다. 버스 의자에 몸을 풀썩 기대고는 설탕을 얼굴에 맘껏 묻히며 먹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혜원의 엄마 아빠는 돈은 없는데 딸을 셋이나 낳아버린 젊은 부부였다. 그들은 세 자매를 시골에 있는 복덕에게 맡기고 도시로 나가 일을 했다. 도시에서 하던 작은 식당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에야 온 가족 도시에서 모여 다 같이 살 수 있게 되었다.
낯선 도시로 올라와 매일 집안일을 해야 했던 복덕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이놈의 집구석. 어지르는(더럽히는) 놈 따로 있고 치우는 놈 따로 있지. 내가 얼른 죽어야 제.” 혜원은 복덕의 한탄을 빠짐없이 듣는 아이였고, 혜원은 복덕이 떠나버릴까 봐 불안했다.
한 번은 복덕 옆에서 자던 혜원이 잠에서 깼는데. 복덕이 모로 누워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어른이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던 혜원은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아파?” 복덕은 대답 대신 허공에 손을 휘휘 저었다.
혜원은 아픈 할머니를 위해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한 번은 언니 둘이 학교에서 받은 채변 봉투를 집으로 들고 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복덕 또한 잠시 고민하다가 신문지 여러 장을 들고 와 마당에 깔았다. 그리곤 혜원에게 이곳에 응가를 좀 싸 달라고 했다. 혜원은 손쉽게 일을 해치웠고 예쁜 모양의 똥을 남겼다. 혜원은 복덕을 위해서라면 마당에서 궁둥이를 보이고 똥을 싸는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복덕과 혜원을 태운 버스가 어딘가에 멈춰 섰다. 끈적한 손가락으로 방울빵 봉지를 꽉 쥐고 있던 혜원은 깜짝 놀라 눈을 떠 복덕을 찾았다. 복덕은 혜원 옆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끈적한 혜원의 손을 꽉 붙든 복덕은 버스를 내린 뒤 한참을 걸었다. 혜원은 이제 엄마 아빠, 언니 둘을 다시는 보지 못하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며 복덕을 올려다봤다. 복덕은 고민 없는 발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복덕은 어느 집 앞에 도착해 문을 활짝 열었고, 혜원은 분홍 꽃처럼 피어나는 복덕의 얼굴을 목격했다. 낯선 집에 성큼 한 걸음 내디딘 복덕은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노인을 “오라버니” 하고 불렀다. 자신의 이름을 잊고 지내던 복덕과 동생을 까무룩 잊고 있던 두 노인이 만났다. 납작했던 두 노인이 풍성하게 웃었다.
혜원은 이미 늙어버린 복덕에게도 오빠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복덕이 할머니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미 늙어버린 채 태어난 여자인 줄 알았던 혜원은 그녀가 감추고 있던 큰 비밀을 알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할머니에게 사실 오빠가 있어.” 언니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혜원은 복덕의 비밀을 지켜주고 싶었다.
복덕이 오라버니의 손을 잡으며 놓아준 혜원의 양손이 아직 끈적거린다. 먹다 남긴 방울빵 봉지를 열어 마저 먹는다. 까슬까슬 방울 빵의 설탕이 엄지와 집게손가락에 달라붙는다.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쏙 빨아먹는다. 복덕이 웃는 모습이 설탕보다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