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눈부신 나의 부모

by mamang



혜원은 이제 막 삼십대 중반이 된 순자와 상영이 불안할 정도로 너무 젊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며 훨훨 날아가버릴 것 같이 가볍고 아름다웠다.


순자는 그 시절 여자들 중 키가 큰 편이었다. 160이 넘는 키에 다리가 무척 예쁜 순자는 검고 긴 원피스가 참 잘 어울렸다. 그녀는 걸을 때마다 다리 한쪽이 살짝 보이는 인어공주같은 옷을 자주 입었는데, 혜원은 이 옷을 입은 순자의 손을 꼭 잡고 식당을 향해 걸어가는 아침을 좋아했다.


책을 찍어내거나 봉투를 만들어내거나 청첩장과 초대장을 만들던 상인들이 모두 순자를 바라보는 것 같아 으쓱했다. 순자는 걸음을 늘이는 혜원을 재촉하며 이웃들에게 밝게 인사를 건냈고, 또각또각 바쁘게 걸었다. 식당 앞에 도착한 순자는 한쪽 어깨에 맨 조그만 가방을 뒤져 열쇠를 찾았다. 순자가 열쇠를 돌려 자물쇠를 철컥 열고 촤르륵 힘껏 셔터를 올렸다. 가게에 들어선 후 순자는 식당의 온 문과 창문을 열기 시작했고, 혜원은 텔레비전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 드라마를 틀었다. 사람들이 들어차기 전 식당의 짧고 조용한 시간이었다.


이모들이 모두 출근을 하고, 고기를 가지러 간 상영이 가게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점심 백반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춤추듯 주방과 식당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는 어른들을 관찰하고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점심 장사가 끝났다. 순자와 이모들은 저녁 장사 준비 전까지 잠시 낮잠을 청했고, 상영은 당구장에 가거나 다방으로 향했다.


식당의 모든 여자들이 낮잠에서 하나 둘 깨어나 나물을 다듬거나 마늘 껍질을 까는 시간이 되면. 순자의 동네 친구 인수 이모와 키다리 이모가 식당을 찾아왔다. 인수 이모는 가게 앞에서 철물점을 하는 아저씨의 부인이었다. 아들 이름이 인수여서 인수 이모라고 불리는 인수 이모는 매일 식당이 가장 한가한 시간에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시간인 오후 4시, 식당 여자들은 모두 마주앉아 손을 바쁘게 움직이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는데. 인수 이모가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면 보험 설계사를 하는 키다리 이모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혜원은 키가 커서 키다리 이모라고 불리는 키다리 이모를 가장 좋아했는데. 키다리 이모가 보험을 팔면서 이곳 저곳에서 물어온 이야기를 풀어주며 식당 여자들 배꼽이 뽑힐만큼 웃겨주었기 때문이고. 모두가 입을 크게 벌려 시끄럽게 웃는 모습을 매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혜원은 순자가 일하는 곳에 찾아와 일손을 덜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인수 이모와 키다리 이모 같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가게 옆 인쇄소 딸내미와 학교 단짝 스티커집 딸내미를 떠올렸다.


순자와 달리 상영은 친구들을 만나러 주로 식당을 나서야 했다. 상영의 친구들은 다방이나 당구장 등에서 주로 서로를 만났다. 식당의 모든 여자들, 그러니까 식당 이모들과 순자, 인수 이모, 키다리 이모가 힘을 합쳐 모든 것들의 껍질을 벗겨버리고 잘라낸 후 혜원은 상영을 찾으러 다녔다.


식당 건물 1층에는 화곡 식당이, 2층에는 귀거래 다방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혜원은 매번 별 고민없이 상영을 찾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식당와 귀거래 다방 사이의 계단을 차곡 차곡 올라가 문을 열면 땡그랑 손님의 방문을 알리는 종소리 같은 것이 났고. 다방 이모들은 밝은 표정으로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혜원은 식당 이모들을 보던 눈과는 다른 적개심을 잔뜩 품은 눈으로 다방 이모들을 바라보았다. 그곳의 이모들은 눈을 흘기며 다방안을 빠르게 살피는 혜원을 귀여워하며 뭔가 도와주길 원했는데. 혜원은 상영을 금세 찾아버렸고,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죽이던 상영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상영은 혜원을 안아올렸다. 혜원은 상영의 어깨위에 턱을 고이고 양팔로 상영의 목을 끌어안았다. 상영의 친구들은 혜원에게 손을 흔들며 윙크를 했는데, 상영을 다방으로 불러내 함께 수다를 떠는 삼촌들이 못 미더웠던 혜원은 그들을 마음껏 째려보았다. 혜원 앞에서 나물을 다듬으며 무해한 이야기를 나누는 순자의 친구들과는 달리. 상영의 친구들은 뭔가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혜원은 상영을 더 꽉 끌어안는다. 혜원이 모르는 친구와 모르는 이야기 따위 나누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눈부신 부모가 멀리 날아갈까 꽉 끌어안고 놓아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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