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화곡식당의 시작
물비누와 닭과 식당에 관한 이야기
혜원의 할머니 정복덕 여사는 1929년생으로 올해 아흔넷, 엄마 순자와 아빠 상영은 1954년생으로 올해 68세다. 복덕은 순자의 시어머니이자 상영의 엄마다. 그들은 순자와 상영이 결혼하고 4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집에서 살고 있다.
순자는 시집오기 전 광주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일을 했다. 곡성에 살던 상영이 여동생의 혼담 성사를 위해 화순의 한 마을에 자주 갔는데. 마침 순자의 집이 그 동네라 자연스럽게 상영에게까지 선자리가 들어오게 되었다.
상영은 순자를 딱 한 번 만나고 “이 여자와 결혼을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맥주를 내숭 없이 한 컵 다 마셔버리는 여자이기 때문이었고. 순자 또한 “이 남자와 결혼을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깐 밤처럼 잘 생겼기 때문이었다.
혜원은 복덕에게 며느리 순자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물었다. 복덕은 말을 한참 고르더니 피부결이 고와서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을 뿐. 예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순자를 꼭 닮은 혜원은 복덕에게 괜히 서운함을 느꼈다.
순자에게 신혼 생활은 무척 고달프고 괴로웠다. 결혼과 동시에 광주에서 다니던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곡성으로 내려갔는데. 남편 상영은 돈을 벌러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어색한 시어머니 복덕과 단둘이 살아야 했다. 몹시 난감하던 차에 복덕의 밥과 반찬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맛있었고. 하루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더 퍼오다가 복덕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복덕은 “돈도 못 버는 것들이 밥은 많이 먹는다.”라고 했고, 순자는 시어머니가 너무 무서워 그다음부터는 밥을 풀 때 두 번 가져올 일이 없게 본인의 밥만 꼭꼭 눌러 담았다.
상영은 순자와 결혼할 당시 돈이 정말 하나도 없는 무직자였다. 복덕의 말로는 농고를 졸업한 상영은 돈을 벌고 싶어 마음만 급했고, 조경수를 구해 다른 지역으로 팔려고 하다가 돈을 여러 번 까먹었다. 그 상태에서 결혼을 하겠다고 나서니 어이가 없었다.
상영은 결혼을 하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급해졌다.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수입품을 떼다 파는 일을 했는데 방문 판매를 하려다 보니 전국으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상영이 팔러 돌아다녔던 것은 지금의 바디워시였는데, 그 옛날엔 온통 비누를 쓰는 사람들뿐이었으니 상영이 전국의 목욕탕을 돌아다니는 일은 성과가 좋을 수가 없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상영은 포기를 몰랐고 전국의 목욕탕을 돌아다녔다.
상영이 목욕탕에 물비누를 팔러 다니는 사이 순자와 복덕의 사이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어느 날엔가는 복덕의 핀잔과 잔소리, 홀대를 견디다 못한 순자는 닭을 잡아오라던 복덕의 심부름을 하다 말고 화가 치밀었다. 애꿎은 닭을 그대로 들고 와서 복덕이 보는 앞에서 마당에 그대로 패대기쳐버렸다. 복덕은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빽 질렀고 순자는 씩씩거리며 마당에 서 있었다.
몇 달 후 상영은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는 형님이 말해준 식당 자리에 반드시 고깃집을 해봐야겠다며 복덕에게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복덕은 몇 십리를 걸어 평소 알던 소장수에게 돈을 빌려왔다. 상영은 그 돈으로 광주에 가게를 열었고 그 고깃집은 이후 32년간 단 한 번도 문을 닫지 않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혜원의 가족을 먹여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