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첫 번째 최종 합격

토공녀 - 토목직 공대 여자

by mamang


2011년 스물여섯 살의 봄,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나의 시간이 돈으로 교환된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을 때였다. 2010년에 이미 한 번 같은 회사의 면접에서 탈락했던 경험 때문인지 너무 절실해진 탓에 최종 면접에서 정말 잘할 수 있다고 말하며 엉엉 울어버렸고, 나는 합격 기대를 이미 접었던 차였다. 6개월 뒤면 만료될 토익 점수를 다시 갱신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취업에 성공해서 하나 둘 독서실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만 하다 내 인생이 끝날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깔고 앉았다.


합격을 확인한 건 독서실에 있는 컴퓨터실이었는데. 나는 하나 건너 하나씩은 꼭 고장이 나있는 고물 컴퓨터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어차피 합격자 발표가 나고 앞뒤 하루 이틀은 공부도 자기소개서를 새로 쓰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종일 죽치고 공준모(공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나 사람인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하향 지원이 가능한 회사들을 탐색하며 보낼 마음이었다.


마음이 그랬다 보니 합격했다는 결과 자체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한 겨울이라 덧신을 신고 있는데도 시린 발을 꼬물거리며 한참을 컴퓨터실에 뭉개고 앉아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컴퓨터들 사이에 앉아 수험 번호를 몇 차례 반복적으로 확인해본 뒤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드디어 합격이었다.


신입사원 교육은 바로 3주 뒤였다. 나는 엄마에게 카드를 빌려 동아리 후배들, 친구들, 독서실 동료들에게 밥과 커피와 술을 샀다. 나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빛을 봤다. 당신들에게도 곧 그 터널 끝과 빛이 올 거라고 말했다. 당장의 성취감에 취해 뜻도 모를 좋은 말들을 온통 내뱉고 다닐 때였다.


합숙 교육에 온 동기들은 150명쯤 되었고, 내가 속한 토목직은 그중 100명 가까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이제 막 대규모 토목 공사를 전국적으로 시작하고 있었고.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을 급하게 신입사원으로 채웠다. 나는 정부에서 크게 홍보하던 토목 사업의 긍정 효과 중 하나인 일자리 확보의 최대 수혜자였다.


다 큰 어른들이 합숙 교육을 하다 보니 치킨 한 마리, 간식으로 놓인 과자 하나에 열광 해갈 때쯤, 교육 과정이 끝나갔다.


교육을 마치고 신입 사원들은 첫 발령지를 통보받았는데. 나의 발령지는 집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전남의 한 지방이었다. 엄마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은 나에게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은 곳이었지만, 사실 본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로서는 울고 싶을 정도로 절망스러웠다. 그런데 서울, 경기도가 고향인 동기들이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전국의 읍면으로 발령 나게 되어 너도 나도 엉엉 울거나 죽상이 되어 한바탕 난리가 난 후 회사 인사과에서 나온 부장님 한분이 "저기 봐. 쟤는 씩씩해서 안 우네." 하며 나를 가리키는 통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눈을 쓱쓱 닦고 발령장을 다시 펼쳤다. 나의 첫 근무지. 어쨌든 꿈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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