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할머니가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엄마에게 아무 연락 없이 본가로 내려갔다. 평일이었는데도 한 걸음에 달려온 나를 본 엄마는 태연했다.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며 피곤하지는 않은지 살갑게 묻던 엄마는 정작 내가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나니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아차 싶었다. 엄마 또한 최근 몇 주 동안 자주 응급실을 다녔는데. 나는 단 한 번도 당장 본가에 내려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태어난 순서와 죽는 순서가 같지 않을 텐데. 나는 항상 할머니의 시간을 엄마의 시간보다 더 짧고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지난 주말 다시 본가에 다녀왔다. 저녁 12시가 다 되어 도착한 나에게 아빠는 당연하다는 듯 내일 아침 일찍 8시쯤 할머니 병원에 다녀오자고 했다. 다음날 오후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던 나는 집에서 보낼 시간이 너무 짧다며 난감해했는데, 아빠는 아주 잠깐이면 된다며 나를 설득했다. 나는 옆에서 이 대화를 듣는 엄마가 잘 들리게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더위를 피해 거실에서 잠을 청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엄마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다음날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 전에 없이 길고 별 것 아닌 대화에 푹 빠졌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오랜 시간 엄마가 나에게 바라 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릎이 아플 정도로 조급하게 자라던 나의 중학생 시절, 엄마는 여름이 되면 더위를 피하려고 안방을 나와 거실에서 잠을 잤다. 어느 날, 할머니 방에 들어가 할머니 옆에 딱 붙어있는 나를 엄마가 조용히 불렀다. "여기 와서 자. 거실은 하나도 안 더워." 마르고 늙은 할머니의 품이 익숙한 나는 살집이 두텁고 가슴이 큰 엄마 옆이 어색하기만 했다. 분명 더위를 이기려고 너른 거실로 나왔을 엄마는 옆에 누운 나를 꼭 끌어안고 한참 놓아주질 않았다.
할머니에게는 나지 않던 콜드크림과 로션 냄새가 났고, 샤워로도 씻기지 않은 진득한 고기 기름 냄새 같은 것이 콧구멍을 채웠다. 나를 넉넉하고 헐겁게 안아주던 할머니의 팔과는 다른 완력과 슬픔이 느껴졌다.
숨을 크게 쉬어도 되는지 목에 잔뜩 들어있는 힘을 풀고 엄마의 팔에 머리를 맘껏 기대도 되는지 잘 모르겠는 시간을 짧지 않게 보냈고. 엄마는 어느새 쿨쿨 잠이 들었다. 나의 목은 머리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몹시 불편했고, 당연히도 잠은 멀리 달아난 후였다. 나는 할머니와 벽 사이에 놓인 익숙하고 편안한 잠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가 나와 형제들의 양육을 온전히 시어머니에게 맡긴 것은 가족 부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을 텐데. 나는 꽤 오랫동안 그것이 엄마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선택이라 생각해왔다.
엄마는 자식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돈과 교환할 수밖에 없었고, 그 대가로 자식들과의 애착을 시어머니에게 양보해야 했다. 엄마는 무엇을 잃고 어떤 오해를 받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돈을 벌며 건강도 젊음도 빼앗기느라 40년이 넘는 시간을 정신없이 통과했다.
어느 것 하나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혹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엄마를 위해, 길고 긴 오해를 해온 나를 위해 뭔가를 써보고 싶어졌다. 지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 살아온 세 어른의 이야기가 함께 떠올랐다.
나를 시간으로, 돈으로, 노동으로, 사랑으로 키운 세 어른. 엄마, 아빠, 할머니 중 누가 제일 좋냐는 질문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으로 이 글들을 썼다. 세 사람 모두 숨 쉬고 있는 지금. 더 늦기 전에 당장 그들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나의 다급한 마음이 어린 혜원을 불러 앉혔다.
글 속의 혜원은, 그러니까 여섯 살에서 아홉 살 무렵의 혜원은 지금의 나보다 용감하고 투명하게 뭐든 느끼고 말았던 아이였다. 왜곡되었을지 모를 나의 기억을 정신없이 넘겨보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손이 작고 발에 굳은살 하나 없으며 마당에 마구 엉덩이를 까고 신문 위에 똥을 싸던 무구한 아이였던 그 시절이 남의 것인 것만 같았다.
우리 모두 내 것인 게 실감 나지 않을 시절들을 통과해왔다. 혜원도 당신도. 우리는 시절 앞에 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