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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Jul 14. 2023

리뷰 / 양다솔 <아무튼, 친구>

숨기지 못하는 빛을 가진 그녀 덕분에 나는 무력하게 울어버릴 수밖






입학했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얼굴을 바꿀 때쯤. 이미 사놓은 공책 앞에 프린트되어 있던 국민학교를 두 줄로 긋고 초등학교로 바꿔 썼을때쯤. 나는 문득 시험 보는 시간에 느껴지는 고독함이 너무 무섭다고 생각했다. 


짝꿍 책상과 멀찌감치 떨어진 채 수십 분을 각자의 종이만 바라봐야 하는 고독. “야. 이거 뭐냐. 너 이거 풀었냐?” 떠들썩하게 묻고 이마를 치며 오답을 적어낸 것을 안타까워하며 지금 당장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산 떡꼬치를 먹으며 고단함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들은 진지했고, 나도 곧 따라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친구들은 이전과는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이후 중학생, 고등학생을 거쳐 대학생, 취준생이 되어 수십, 수백 번의 시험을 거쳐야 했던 나는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내가 인정할 때까지 겪어야 하는 끝없는 고문같았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매번 반복해서 깨닫고 처음처럼 쓸쓸했다.      


어른에 가까워지면서 각자의 시간표를 알아서 꾸리는 대학 생활을 하고 또 더 나이들어가면서 매일 숨 쉬듯 생각을 공유하던 친구들과의 시간은 각자의 일상 안으로 숨어들었다.      


시간이 될 때, 여유 있을 때 몰아치듯 만나고 푸념하고 또 일상으로 돌아갔다. 친구들이 안녕! 하고 집 방향으로 돌아설 때 내쪽으로 한 번씩은 돌아봐줬으려나. 나는 어땠었나.      


그나마 지금보다 많이 어릴 때 그나마 짱짱했던 나는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또 그쪽에서 걸려온 전화를 망설임 없이 받고 또 일상을 주거니 받거니 슬픔과 기쁨이 왕래하게 내버려 두었는데.      


월급으로 먹고살기 시작한 지 2년쯤 지났을 때부터는 그마저도 뜸해졌다. 내가 하루치 일당과 함께 같이 받아온 버거운 후회스러운 일들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아서 저녁시간 내에 소화시킬 시간도 부족했던 것 같다. 그 무렵 침범하듯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일도, 걸려온 전화를 단숨에 받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나중에는 우리 모두 각자 따로 떨어진 일 인분 책상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것 같았다. 시험을 마친 후의 달콤한 휴식시간 없이 앞으로도 쭉 책상 붙이는 일 없이 각자의 삶을 풀어야 하는 것처럼.     


양다솔 작가의 <아무튼, 친구>를 읽으며 마음속으로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은 ‘대단하다. 대단한 사람이야. 대단해.’였다. 목숨 걸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랬고, 친구에게 가려진다는 것이 주는 영광을 아는 사람이라 그랬다. 그녀는 “이런 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녀가 자기다워지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제한된 에너지를 오직 나에게만 쓰려고 몸을 사리는 나와 달리 계산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달려드는 그녀는 용맹한 장수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친구에게 받은 만큼 꼭 해줘야 할까 봐 그 갚을 일이 막막해서 나 혼자 시간을 견뎌보려고 했었던 많은 시간 속 내가 쪼그라들고 없어 보인다. 나도 무지 힘든데, 친구에게 전화하고 싶고 보고 싶은데 내가 그런 친절을 받을 만큼 친구에게 해줬나. 무엇보다 이번에 받을 환대를 나는 돌려줄 수 있나. 생각하다가 한 번쯤 참고 두 번쯤 더 참고. 혼자 견뎌내던 시간들이 친구들이 나로 인해 방해받을까 봐 그들을 배려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선택한 일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쪼그라들었다.      


양다솔 작가는 시소를 탈지언정 계산하지 않는 몸이 마음 가는 곳에 일단 움직이고 보는 세상에 둘도 없는 용감한 사람이다. 언제쯤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작가는 자문하지만 나는 그녀가 계속 전사처럼 친구들에게 달려들 것을 믿는다. 전쟁에 참여한 기세 등등한 장수처럼 울고 있는 친구들을 향해 달릴 것이다. 그리고 가장 잘하는 일을 해낼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친구들을 구하고, 결국에는 매번 포기했던 스스로를 구하는 일도 해버릴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미리 목격한 것 같다.           


  <아무튼, 친구> 10문장      


✏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이든, 마음이 출발한 곳에 몸이 따라갈 수 있다면 기쁜 일일 것이다.(17쪽)    

 

✏ 내 인생은 ‘친구 그리고 그 밖의 잡다한 것들’이라고 말해도 문제가 없었다.(22쪽)     


✏ 이런 나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29쪽)     


✏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사실처럼 다가왔다.(40쪽)     


✏ 애정을 주는 것만큼이나 받는 것도 엄연히 능력에 속함을 그제야 알았다.(42쪽)     


✏ 무슨 말인가 하려고 옆을 보면 나 혼자 남아 있었다.(49쪽)     


✏ 참 쓸쓸한 세상에, 나는 살고 있었다.(55쪽)          


✏ 친구들이 보초를 서듯이 돌아가며 내 옆을 지켰다.(79쪽)     


✏ 이상하게도 엄마에게 소리치면 소리칠수록 나는 나와 남게 되었다.(132쪽)     


✏ 엄마가 말했다. “저 멀리까지 보고 와. 나도 따라 걸을 테니까.”(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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