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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Mar 17. 2022

이제는 울어도 될 때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 그는 자신의 귀가 망가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곳에서 노동하고 있었다.(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252쪽)


- 군대에서 아프다고 말하기 힘든 이유는, 남자들은 알 텐데 군대에서 말을 하기가 상당히 눈치 보이는 문화가 있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생존장병 B)(64쪽)
- "트라우마는 삶의 통제권을 빼앗긴 기억이다"(71쪽)
- 결과가 좋지 않을 때를 대비해 어떤 일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문화가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꼈다.
(78쪽)

- 공공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일에 종사하다 다치게 되었을 때 조직이 나의 고통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천안함 생존장병을 관심사병 취급하며 패잔병이라고 부르던 군대의 모습은 일하다 다친 소방공무원을 두고서 ‘조금 더 조심하지, 왜 일하다 다치고 그러느냐’라고 개인을 탓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228쪽)


오늘의 이야기

퇴근 지하철에 올랐다. 신림역을 지나 사람들이 많이 내려 겨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사람들 틈에 끼어있다가 의자 앞에 자리를 잡고 서니 이대로도 계속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에는 꽉 사람들이 들어차있었다. 내 앞에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어르신 세분이 나란히 앉아 자울거리고 있었다.

모두 중년과 노년의 경계에 놓인 분들 같았고. 눈을 감은 모습이 어째 조금 닮아있었다. 아저씨 또는 할아버지 두 분, 아주머니 또는 할머니 한 분이었는데도 그들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장 왼편에 앉아 고개를 흔들며 주무시던 아저씨가 눈을 번쩍 떴다. 오른 편에 앉아있는 아저씨의 허벅지에 손바닥을 동그랗게 펴 올렸다. 아저씨는 '나 다음에 내린다. 나 내린다?'라고 말했고 허벅지를 내어 준 아저씨는 눈꺼풀을 무거워하다 결국 눈을 뜨지 못하고 '어어.' 답했다.

내릴 예정이던 아저씨는 친구와 눈을 마주치고 싶었는지 눈이 무거운 아저씨를 바라보며 허벅지를 계속 흔들었고. 눈이 무거운 아저씨는 눈이 붙어버렸는지 '응응응' 하고 의미없는 대답만 했다.

그러고는 그 옆에서 푹 자던 아주머니가 뜬금없이 눈을 부릅떴다. 아이라인과 눈썹 문신이 진녹색에 가까워 우리 이모나 엄마를 닮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발밑에 내려둔 보따리를 야무지게 움켜쥐었다. 파란 눈을 꿈뻑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친구를 깨우다가 실패한 아저씨와 동시에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아저씨는 오른쪽 문, 아주머니는 왼쪽 문으로 나갔다. 그들이 내뱉는 하품이 긴 꼬리를 내리며 질질 끌려간다.

오늘도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몸이 삶의 미천인 그분들의 피로를 알 수 없다.

저자 김승섭의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결국 몸으로 일하다 다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능력 있는 몸, 그렇지 않은 몸으로 규정되는 군인, 소방관의 이야기이며. 가족을 잃어 내 마음과 몸까지 다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다치고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결국 내 가족, 내 친구 그리고 내가 있다.

정치 담론으로 양분화할 수 없는. 얽혀있어서 결국 나와 너의 이야기가 되고 마는. 그러니까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 이야기하는 것이다. 배운 사람, 굳이 어려운 길로 가지 않아도 특권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는 저자가 기꺼이 걸어왔던 치열한 길의 경로이기도 한 이 책은. 편가르기에 지친 모두가 미루지 않고 읽어야 할 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책만 읽기에 무임승차자가 된 듯한 기분을 지금도 버릴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뭐라도 하고 있는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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