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 시술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사당역에서 경기도 버스의 긴 대기줄을 기다리는 동안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첫 시술인데도 내가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그만큼 큰 실망을 할까 봐 남편은 나의 기대치를 낮추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하며 나의 기분을 살폈다. ‘이번에 안돼도 크게 실망하지 말자. 너무 속상해하지 않기로 약속하자. 이제 시작이잖아.’ 남편이 옆에서 끊임없이 해주는 이야기가 한쪽귀로 들어와 반대편 귀로 빠져나갔다.
멍하니 버스를 기다리다가 툭 내 입에서 나온 말. “오늘 오빠 정자 활동성이 약했데. 그래서 약품 처리한 다음에는 괜찮아졌데. 선생님이 시술 전에 그러셨어.”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남편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아 그래? 왜 그랬지. 내가 어제오늘 피곤했나.....’ 남편의 말수가 줄어들었다. 인공수정을 준비하면서 나 혼자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짜인 스케줄을 지키지 못할까 봐 혼자 고군분투해 왔던 것 같아 괜히 억울했던 숨겨져 있던 나의 마음이 불쑥 튀어나와 남편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이번에 임신하지 못해도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는 면죄부를 가지고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 것도 같다. 나에게 위로를 해줄 때와 달리 남편의 표정이 잔뜩 기가 죽어있다. 마음이 쓰이지만 버스에 올라타 눈을 꼭 감았다. 난자와 정자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그날부터 나는 강박적으로 ‘인공수정 후기’ 동영상과 글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시작된 ‘증상 놀이’에 푹 빠진 것이다. 인터넷 난임 카페에서 ‘인공수정 후 증상’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검색해서 나의 증상과 비교해 보았다. 몸이 약간 뜨끈해지는 것도 같고 배가 콕콕 찌르는게 착상이 되면서 생기는 증상같기도 해서 기대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인공수정 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찾아보니 ‘열탕 목욕하지 마세요. 자궁이 뜨거우면 착상이 오히려 안된데요.’ ‘착상에 좋은 차 oo차 마시고 임신했어요.’ 글을 읽고 착상에 좋다는 작약차를 사서 마시기 시작했고 ‘무조건 며칠은 눕눕(누워서 일상생활을 하는 것)했어요.’ 앞서 인공수정을 시술받고 임신한 선배들의 글을 보며 나는 점점 걷는 것도 조심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매일 가던 요가원도, 종종 가던 헬스장도 발길을 끊게 되었다.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서 복부에 힘을 주면 조기배란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선생님의 조언으로 그렇지 않아도 운동을 계속 못하고 있어서 점점 살이 붙고 있는데 인공수정 한 사이클을 돌면 몇 킬로가 쪄 있을지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살찌는 게 문제겠냐. 임신만 되면 나머지는 그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난임카페와 블로그에서 웬만한 후기글을 다 찾아본 후 이틀 정도가 지나있었다. 나는 이틀 동안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아침에는 착상을 도와주는 약을 먹고 저녁에는 9시 정각에 침대로 들어가 질정을 넣었다. 20분만 지나도 일어나 움직여도 된다는 설명을 병원에서 듣고 왔는데도 약의 성분 한 방울도 새어 나오지 않고 모두 몸에 잘 흡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침대에 그대로 1시간 이상을 누워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삼일째 되던 날 밤에도 역시 손을 깨끗이 씻고 자궁경부에 질정을 넣고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데 눈물이 났다. 그날 오전에 찾아본 ‘인공수정 후기’ 유튜브 영상의 내용이 생각나서였다. 영상의 주인공은 30대 여성.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있는 그녀는 공부와 난임시술을 병행하고 있었다. 병원마다 질정을 넣어야 하는 시간과 횟수가 다른데 그녀의 경우 매일 아침 9시경 질정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 인공수정 시도의 경험을 덤덤하게 이야기하며 학원 화장실 변기에 앉아 질정을 넣고 엉거주춤 앉아 흡수가 되길 기다리며 앉아있는데 자꾸 약이 녹으며 속옷으로 다 빠져나오는 바람에 속이 상해 자주 울었다고 했다. 누워서 약을 넣을 수 없는 환경의 그녀는 공부를 포기할 수도 임신 시도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 동영상을 끄고 그녀의 최신 영상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여러 시도 끝에 임신과 출산을 거쳐 엄마가 되어있었다. ‘휴’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던 것은 그녀의 최신 영상 속 육아에 지친 엄마의 모습마저 부러워서이기도 하고. 나는 결국 어떤 결과를 듣게 될지 나의 앞날이 길고 어둡고 막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매일 하던 걷기, 운동, 친구들을 만나 실컷 떠드는 저녁 시간을 언제까지 임신 시도에 양보해야 할지 모르겠는 답답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감각은 ‘지금 내가 임신을 위해 하고 있는 노력이 임신 실패 아니면 성공 둘 중 하나로 끝날 텐데. 실패로 끝나게 되면 똑같은 단계를 매달 한 번씩 반복하며 마주할 그 허무함을 나는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을 닦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것뿐.
밥 먹고 약 먹고 누워있다가 다시 밥을 먹고 약을 넣고 그렇게 2주가 지났다. 병원에서 피검사를 해보기 전에 한번 임신테스트기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임테기 지옥’에 빠진다는 후기글들을 읽고 꾹 참고 2주를 보냈다. 임신테스트기를 매일 사기에는 가격도 만만치 않고 분명 1줄이라서 비임신인데도 매직아이하듯 가상의 2줄을 만들어보게 된다는 후기 탓에 분명 나도 수십 개의 임테기를 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11시 30분에는 병원에 도착해 채혈을 해야 예약한 진료시간인 2시 30분에 피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밥은 먹고 와도 상관없다고 했는데 입맛이 없어 약만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채혈실에서 피를 뽑고 병원 아래에 있는 소바집에 가서 덮밥과 소바 세트를 시켰다. ‘임신 소식을 알게 된 날의 점심 메뉴’가 될 것인지 아닌지 괜히 마음이 긴장되고 손이 떨렸다. 입사 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 졸였던 느낌과 비슷해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리고 돌아올 실망의 크기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카페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다 진료시간에 맞춰 병원으로 올라갔다. 평소라면 예약을 했어도 대기가 한참 길어져 진료를 보는 데까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예약시간에 딱 맞춰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대기 어플에 아직 내 순서가 돌아왔다고 뜨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 ‘너무 좋은 소식이라서? 빨리 전하고 싶어서?’ ‘너무 안 좋은 소식이라서?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는데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미안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자리에 거의 앉자마자 선생님께서 어두운 표정으로 말문을 여셨다. “이번에는 임신호르몬 수치가 높지 않아서 지금 먹고 있는 약과 질정은 이제 그만 사용해도 되겠어요. 약을 중지하면 곧바로 생리가 시작될 테니 정해준 날짜에 다시 와서 진료를 받고 다음 인공수정 주기를 시작해 봅시다.” 임신이 되었다면 아마도 더 유지했을 약 복용과 질정 사용을 중지하라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아프게 마음에 남았다. 조금만 더 사용해 보면 임신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닌지 여쭤보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나는 웃으며 알겠다고 그럼 다음 진료 때 뵙자고 말을 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좋지 않은 결과를 들으면 눈물이 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서둘러 수납을 하고 병원밖으로 나왔다.
병원 진료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나의 메시지를 보고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하철 2호선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전화를 받았다. 결과가 어땠냐는 물음에 이번에는 안됐데.라고 내가 답을 했고 다음에 또 하면 되지.라고 남편이 말했다. 이제 겨우 한 번인데도 이렇게 힘든데 다음에는 또 어떻게 하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이 말은 남편에게 하지 못했고. 목구멍을 뚫고 나오는 건 내 울음소리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