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 1차의 결과가 비임신으로 끝났다.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임신유지 호르몬을 넣어주기 위한 질정 사용과 약 복용을 바로 중지했다. 다음날 생리가 시작되었다. 훨씬 높은 용량의 약물을 사용해야 하고 수면마취를 통해 난자 채취도 해야 하는 시험관시술보다 몸에 부담이 덜 간다고 알려진 인공수정이었고, 게다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도 마음에 못자국이 하나 남은 것처럼 아팠다.
시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에게 매번 시술 때마다 성적표를 보여드리듯 결과를 이야기해야 하나 싶어 막막한 마음이 더 커졌다. 친정엄마는 급한 내 마음도 몰라주고 빨리 임신하라고 하도 성화라 홧김에 난임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말했고. 시어머니께는 앞두고 있는 추석 연휴에 시댁에 내려가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해드려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말씀드렸다. 시술 실패를 반복하게 되면 그분들도 큰 실망을 하실 텐데. 나의 속상함을 달래기도 전에 양가어른들의 상심을 위로해드려야 할 것 같아 걱정이 더 커졌다.
아무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 동굴 같은 곳에 들어가 짜잔 임신된 몸으로 나타나고 싶은 마음이다. 유산으로 끝난 첫 임신때 했던 생리 다음으로 두 번째로 우울한 생리를 흘려보내고 있다.
난임시술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바로 다음 시술에 대한 계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번에 잡아놓은 예약일은 생리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직 피가 철철 나오고 있고 평소보다 생리통이 심한데. 다음 달에 배란될 난자들의 대략적인 개수를 확인해 약의 용량을 정해야 하니 병원에 방문해야 했다. 물론 자가주사약도 처방받아야 한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지난달에 난소가 과배란 주사를 통해 자극되었던 영향인지 난자를 품고 있는 난포의 개수가 지난달보다는 조금 더 보였다. 주사약에 대한 반응이 더뎠기 때문에 이번달부터는 과배란 주사의 용량을 조금 늘려서 처방해 주셨다. 난임시술을 시작하며 인공수정을 3번은 시도해 보자는 선생님과 나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공수정 다음 주기 시작으로 시술 방향이 잡힌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맞아야 하는 주사의 이름이 적힌 A4용지에 주사 맞을 날짜들을 하나하나 체크해 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는 OO 씨가 임신이 안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해보자고.” 뜻밖의 말씀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아서 선생님을 보고 있던 눈을 재빨리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상하리만치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끄덕이며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아서 그런지 마음이 단단해졌다.
이제 다시 과배란 자가주사가 시작되었다. 지난 1차 시술을 하면서 몸을 큰 돌이 누르고 있는 것처럼 피곤하고, 아랫배에 묵직한 느낌과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졌고, 시시때때로 감정의 큰 기복에 휘둘렸는데. 이번 인공수정 2차 시술과정에서는 몸의 증상 하나하나에 집착하고 기분 나빠져서 일상을 빼앗기지 않기로 다짐했다. 무엇보다 인터넷 카페에서 본 '인공수정 성공 비법' 등 인공수정을 임신이라는 '성공'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온갖 비법들은 그만 보기로 했다. 지중해 식단 실천하기, 집에서 누워 절대 안정 취하기, OO 하기, OO 하지 않기 등 온갖 방법들을 적어놓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번 시술 주기에도 임신이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에게 남을 실망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쉬고 있던 요가원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요가 선생님은 그동안 왜 안보였냐고 팔자 눈썹을 만드시면서 나를 걱정해 주셨다. 울컥 눈물이 밀고 나오려고 했다. 임신을 위한 시술을 받고 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눈물을 눈에 겨우 매단 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무리하지 말라고 따뜻한 손으로 내 등을 쓸어내려 주셨다.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매트 위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평소처럼 몸을 비트는 자세, 복부에 힘을 주는 자세, 몸을 거꾸로 세우는 자세(머리서리와 같은 역자세)를 만나게 되면 난포들이 미리 터져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머리가 복잡했다. 시술을 시작하고 처음 하는 요가라 그런지 변해버린 내 몸이 낯설어서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뭐든 열심히 하고 있는 힘껏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서 그 일에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내 몸을 통제하고 움직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시술이 누적될수록 몸의 변화와 제약은 더 커질 텐데. 그때마다 매번 마주할 낯선 감각을 나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겹겹이 쌓이는 고민을 껴안고 매일 아침 자가주사를 맞았다. 처음에는 무서웠던 주사가 이제는 남편과 이야기하며 놓을 수도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배에 멍이 늘어가면서 가끔 서글픈 마음도 들지만 '이번에는 되겠지' 하는 희망으로 난포를 열심히 키웠다. 그렇게 2차 인공수정 시술일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