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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Aug 21. 2024

난임여성의 셀프 고립



두 번째 인공수정 시술 주기. 자가주사를 맞으면 몸이 나른하고 바닥으로 푹 꺼지는 것 같다. 오늘 하루도 뿌듯하게 보내봐야지! 하고 출근하는 남편이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눈을 뜨고 일어나 물도 마셔보지만. 남편이 출근한 후 주사를 맞으면 몸이 돌 아래에 깔린 것처럼 납작해진다. 잠깐 앉아있어야지 한다는 게 오전 내내 식은땀을 흘리며 자다가 깨기를 반복한다.      


최근 결혼을 알리는 소식과 얼굴 좀 보자는 친구들의 연락이 하나 둘 도착하고 있다. 애매한 사이가 아닌 절친한 동생,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었다. 연락해 오는 친구들은 내 입장에서도 먼저 연락해서 만나고도 남을 보고 싶은 친구들이다. 내가 먼저 들떠서 친구들의 연락에 이런저런 호들갑을 떨며 ‘결혼식에 꼭 갈게! 당연히 가야지!’ 또는 ‘그래서 언제 만날까? 어디에서 볼까? 너무 반갑겠다.’ 하고도 남았을 텐데 마음이 반대로 쑥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평소의 나와 다르다고 상대방이 느끼고도 남았을 테고 서운함이 남았을 텐데 별도리가 없었다.     


자가주사와 약 복용을 병행하면서 집 밖을 거의 나가지 않다 보니 몸은 몰라보게 퉁퉁 부었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다. 무엇보다 인공수정 시술 후에 외부에 나가는 일정이 임신 실패라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가벼운 외출 정도는 상관없을 거야 하는 생각이 매일같이 겹쳐져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결국 시술 중에 초대받은 결혼식을 모두 갈 수 없었다. 시술 직후였거나 컨디션이 급격하게 나빠졌던 탓이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물론 내쪽에서 차일피일 미루거나 답을 회피하면서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난임휴직으로 회사에 다니지 않고 있는 나는 사람을 점점 피하게 되는 나를 관찰하며 회사를 쉬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회사 사람들에 이어 내 친구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지 않을까, 이 관계들이 나중에 회복이 되기는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멀리 저 멀리의 일까지 고민할 체력도 내 마음에서 일으켜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을 만나고 연결되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고 또 그런 일을 좋아하던 내가 사람을 피하게 되다니. 집밖으로 다시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이 나에게 다시 가능한 일이 될지 회복이 가능한 것인지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답은 나로부터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어떤 답도 상상할 수 없었다.     


2차 인공수정 주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요가원에 매일 가기로 마음먹었다. 물 먹은 솜처럼 갑자기 무거워지는 몸과 쏟아지는 졸음 때문에 나와의 약속을 모두 지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에서 3번 정도는 출석 도장을 찍었다. 한 명 두 명씩 얼굴을 겨우 익혀가고 있는 요가원이라 그런지 나의 익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드문드문 안부를 물어주는 다정한 도반들 덕분에 겨우 하루 한 번씩은 웃게 되는 날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들이 그때의 나를 살린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들이 뿜어내는 다정함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구나. 알아보지 못했던 다정함의 영향력을 뒤늦게 크게 감각하는 날들이 꼭 있다.      


1차 인공수정 시술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정자 주입술을 하고서도 요가원에 나갔다.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라도 봐야 내가 살 것 같았다. 가까운 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으면서도 낯선 이들과의 연결이라도 지푸라기 잡듯 놓치고 싶지 않던 이상한 마음이었다. 요가원에 가서 움직이다 보면 속이 메스껍게 느껴졌다. 지난 시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입덧이 이렇게 빨리 오기도 하나?’ ‘착상이 되는 중에 입덧이 생기기도 하나?’ ‘괜히 운동 열심히 했다가 되려고 하는 임신도 유지가 어려워지는 거 아닌가?’ 메스꺼운 증상은 머릿속에 여러 생각을 몰고 왔고 요가에도 선생님의 이야기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난임 카페에 다시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돌고 돌아 또다시 ‘인공수정 시술 후 증상’을 찾아보며 이번에는 임신 성공일지 아닐지 초초함에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렇게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까지의 2주 내내 다시 이 피 말리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1주일쯤 지났을 때는 임신테스트기에 손을 대기 시작해서 분명 1줄이라고 말하고 있는 임신테스트기를 매직아이를 시전해 연한 2줄로 보인다고 우기기 시작했다.(물론 스스로에게) 난임 카페에 올라오는 ‘임신테스트기 좀 봐주세요.’ ‘임신테스트기 임신 성공인가요?’ 하고 올라오는 글들을 찾아보며 쿠팡으로 임신테스트기를 추가 주문했다. 하루에도 2~3번씩 테스트해 본다는 사실을 남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분명 그걸 왜 못 참고 그새 해봤는지 난리를 칠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모른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기는 몸의 크고 작은 증상들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얼마나 결과를 알고 싶은지. 그는 정말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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