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인공수정 결과 확인날. 오늘은 무지무지 병원에 가기가 싫다. 이미 알고 있는 성적이 적힌 성적표를 받으러 가는 기분. 임신 실패라는 이야기를 들을게 뻔하다는 것은 지난 일주일 내내 수십 개의 임신테스트기를 하면서 이미 알 수 있었다.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는 2주의 절반인 7일을 매일 임신테스트기를 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이미 처방받아온 임신 유지를 도와주는 약과 질정을 먹고 사용하는 일이었다. 테스트기는 나의 소변을 임신하지 못한 자의 소변으로 매일 판별해 주는데. 내가 이 약을 계속 먹고 질정을 계속 넣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의미 없는 일을 하기 위해 1시간 넘게 침대에 누워있다가 일어서면 약을 둘러싸고 있던 용액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을 감각하며. 찝찝한 기분으로 엉거주춤 집안을 걸어 다녔다. 좋은 결과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양손을 모아 간절한 마음을 자궁으로 보냈던 지난 시술과 다르게. 이번 시술 이후의 시간은 어차피 실패로 결론이 날 일을 마지못해 끝까지 해낸다는 냉소적인 마음으로 임했다. 역시나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난임시술에 쏟고 있는 나의 시간이 허무하다는 감각이 다시 크게 다가왔다.
난임 여성들이 많이 보는 유튜브 몇 개를 찾아봤다. 임신 결과를 기다리면서 하지 않아야 될 주의사항을 일러주는 난임 전문 의사 선생님들은 임신테스트기를 통해 ‘비임신’이라는 결과를 알게 되었더라도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과 질정의 사용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중지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난임 카페에서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여성들이 많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처방받은 약과 질정은 혹시 몰라서 다 썼어요.”라는 댓글이 가득 달렸다. 미리 실망하는 마음이 되어버린 나는 힘이 빠진 눈빛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다음 시술 주기가 빨리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병원에 도착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12시에 채혈을 하고 2시간 30분쯤 기다려 진료를 봤다. 좋지 않은 결과인데 대기도 길게 되면 너무 힘들 것 같아 내 이름을 빨리 불러주기만을 기다렸다. 대기실을 둘러봤다. ‘지난번에 나와 같은 날 시술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분들도 여기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결과를 받아 들고 집으로 갈까?’ ‘좋은 결과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부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한 명의 가방에 붙은 분홍색 임산부 배지가 눈에 띄었다. 나도 모르게 미간에 인상을 찌푸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난임병원에 다니던 여성이 임신을 하게 돼도 안정적이라고 판단되는 시기까지는 난임병원을 그대로 다니다가 일반 산부인과로 옮기게 되는데(이걸 ‘난임병원 졸업’이라고 한다) 아마 그 환자는 난임 시술을 통해 임신을 한 임신부일 것이다. 그가 어떤 기나긴 어려운 과정을 거쳐왔는지 내가 알 수는 없으나. 지금은 어쨌든 임신부가 되어 임산부 배지를 달고 난임병원에 온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굳이 저걸 여기까지 달고 들어왔어야 했나 싶은 마음에 원망스럽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이 불렸다. 역시나 오늘도 의자에 앉자마자 임신 실패라는 결과를 듣게 되었다. 유지하고 있던 약의 사용을 중지하라고 하셨고, 아마 바로 시작될 생리 3일 차에 내원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날 임신이 되었다는 결과를 듣게 되었다면 나는 많은 추가약과 질정을 양손 가득 받아갔을 텐데. 양손 가볍게 병원에 나온 나는 눈에 힘이 풀려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남편에게 바로 소식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이번엔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결과를 듣게 된 걸까. 지난 2주를 복기했다. 기쁜 소식을 안고 병원문을 나서는 날이 오기는 할까.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이곳에 와야 할까.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도착한 지하철에 올라탔다. 퇴근 시간 전인데도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다. 여유 있게 서있을 만한 자리를 찾다가 선명한 분홍색으로 칠해진 임산부 배려석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섰다. 동그란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달고 사랑스럽고 동그란 배를 쓰다듬으며 저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이 말 밖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