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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mang Sep 11. 2024

난임여성에게 명절은 없다

시험관 시술, 그 외로운 여정의 시작



지난 명절에 이어 이번 명절에도 친정, 시댁 모두 가보지 못할 것 같다. 축 처진 기분을 양가 어른들에게 드러낼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몸과 마음의 체력이 긴 귀향의 여정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에게는 아마 가장 큰 관심사일 나의 난임 시술에 대해 혹시나 이것저것 물어보시거나, 여자 몸(상세히는 자궁)에 좋은 음식들을 내놓으시거나, 내 기분이 어떨지 눈치를 보시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만 해도 부담되고 불편한 상황을 상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아무래도 이번 명절도 안 내려가는 게 좋겠어.”      


아이스박스에 자가주사를 싸들고 친정과 시댁의 냉장고에 주사를 넣어두고 맞아야 할 텐데. 컨디션이 오락가락해도 마음대로 쉬지도 못할 텐데. 하는 마음이 앞서 어른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당장 지금은 내 몸만 생각하고 싶었다.      


3차 인공수정마저 실패로 끝난 이후 마음의 공간이 전에 없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여유, 행복, 기쁨, 만족, 배려를 가지고 태어난 줄 알았는데 마음이 힘들 때 가장 먼저 나에게서 증발해 버리는 것들이었다. 나 또한 점점 달라지는 모습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남편에게 명절에 아무 곳도 가지 않겠다고 통보하고 나니 마음이 허전했다. 임신하기 전까지는 친정도 마음 편하게 가지 못하는 건가 싶어 우울해졌다. 이 여정이 언제쯤 끝날지 막막하기도 했다. 이럴 때면 임밍아웃(가족, 지인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는 것)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임신 소식을 듣고 눈물 흘리는 이들을 따라 함께 울다가 나도 언젠가 저런 좋은 소식을 들고 갈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해보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3번만 시도해 보기로 했던 인공수정이 모두 실패로 끝났다. 생리는 곧바로 시작되었고, 시험관 시술 주기가 숨 가쁘게 시작되었다.      


인공수정 시술때와는 다른 주사약을 써보자고 선생님께서 제안하셨다. 난자 자극이 더디게 되기도 했고 인공수정과는 달리 좋은 결과를 시험관에서 만나보고 싶어서 고민할 것 없이 그러겠다고 답했다.      


드디어 주사 시작날. 바뀐 주사를 냉장고에서 꺼내 배를 경건하게 소독솜으로 문질렀다. 후후 알코올이 날아가길 바라며 입으로 배를 불어줬다. 촉촉했던 피부는 금세 말랐고 찔렀던 자리를 또 바늘로 찌르지 않길 바라며 주삿바늘을 배에 천천히 꽃아 넣었다. 인공수정을 하며 맞았던 주사보다 바늘이 조금 두꺼웠다. 바늘 각도를 잘못 조정했는지 주사가 배에 들어가며 우두둑하는 소리를 내며 배속으로 들어갔다. 아팠지만 다시 뽑고 찌르는 게 더 아플 것 같아 눈을 질끔감고 참았다. 주사약의 입자가 크면 들어갈 때 아프니 시간이 오래 걸려도 천천히 주사약을 주입했다. 자가주사를 놓는 기분은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는다.      


주사를 다 맞고 바늘을 뽑으니 새빨간 피가 그 자리에 맺혔다. ‘이번에도 멍이 들겠구나’ 울고 싶은 마음으로 새 알코올솜을 뜯어 그 자리를 찬찬히 닦아줬다.      


주사약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 어지러워 주사 잔해물을 치우지도 못하고 소파에 누웠다. 그렇게 눈을 감고 20분 정도 지났나?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울렁거림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이전에 쓰던 약은 이 정도로 괴로운 부작용은 없었는데 이번엔 확실히 더 효과가 있는 주사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시술의 효과가 기대되었다가 얼마 후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하게 된 이후 ‘이 약을 계속 써도 될까’ 하는 의문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새로 받아온 주사약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OO 주사 부작용’으로 검색해 보았다. 구토까지 했다는 사람의 후기는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전화를 해서 너무 힘들다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오늘 하루 참아보고 내일 주사까지 맞아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두통과 구토를 하루종일 겪으면서 온몸을 적시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렇게 버텼다. 아파서 병원에 찾아갈 수도 없었거니와 병원에 가서 주사약을 저용량으로 바꾸면 다시 인공수정 때와 같은 결과를 마주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이 정도는 버텨야 내 난자들이 잘 채취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고집도 있었다.      


퇴근하고 남편이 왔다. 하루 종일 끙끙 앓았던 일을 말해보지만 실제 목격하지 않은 남편은 조금 덤덤하게 내 증상을 흘려듣는 것 같았다. 내가 겪은 증상들을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그에게 와닿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미치자 곧바로 슬픔이 찾아왔다. 난임시술을 하면서 가장 외롭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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