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공감]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마음담론

by mam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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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좋지 않아 회사에 3개월 질병휴직을 내겠다고 하니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


마망이 엄마 옆에 와서 엄마랑 같이 한방 병원 다니면서
좋은 거 먹고 잘 쉬어보자 엄마가 낫게 해 줄게.
엄마 옆에서 쉬다 보면 몸이 금방 좋아질 거야


엄마는 매년 체력이 훅 떨어지고 기운이 없어 너무 힘든 시기가 한 번씩 온다고 했다. 그때마다 가서 약을 지어먹었던 한의원이 너무 좋으니 같이 치료도 받고 함께 쉬면서 체력을 보충하고 가라며 거듭 강조한다.


사실 나와 엄마의 생각은 동상이몽 그 자체다. '엄마, 나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 엄마랑 있으면 나는 더 아프고 답답할 것 같아.' 내 마음은 정확히 이랬다. 물론 엄마의 신경증을 건드릴까 봐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네 ~ 생각해 보고요." 하고 답변과 결정을 미뤄놓을 뿐이었다.


처음 휴직이라는 말을 꺼낸 이후 엄마는 나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서 '엄마 옆'에 와 있으라는 말을 했다. 나는 매번 다른 강도로 숨이 막혔다. 가슴이나 명치 어디쯤이 너무 막히는 것 같아서 버럭 화라도 내서 단 며칠이라도 나에게 전화를 걸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이후 엄마의 울분은 몇 배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것 같고, 화가 나면 혼자 삭히는 걸 어려워하는 엄마는 분명 큰언니나 내 동생에게 전화를 걸겠지 하는 생각에 꾹 참았다.




나는 29년 동안 엄마와 함께 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 아빠, 할머니 그리고 남동생과 한 집에 살았다. 할머니 때문에 속이 상한 엄마, 아빠 때문에 속이 상한 엄마, 언니들 때문에 속이 상한 엄마, 동생 때문에 속이 상한 엄마, 그리고 그 외 내가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고 속이 상한 다양한 감정의 엄마는 나에게 그 감정들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내가 지금 힘든 이유는 나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라고 생각해왔다. 또한, 엄마와 부딪히거나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불필요한 책임감이나 엄마가 겪는 모든 어려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가 너무 힘든 상황인데 나 마저도 받아주지 않으면 엄마가 없어져버릴 것 같았고, 내가 딸이라서 그것도 셋째인데 또 딸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힘들었던 거라 생각했다. 엄마의 에고가 나타나서 나에게 으르렁거릴 때마다 매번 에고의 먹잇감이 되었고 나를 기꺼이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게 내버려 두었다.




심리치유 에세이「천 개의 공감」의 저자 김형경 작가는 한 언론 매체 상담 코너를 통해 독자들의 질문과 작가의 심리상담이자 답변을 바탕으로 엮어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의 모든 꼭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생략되어 있다고 전한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들고 읽어 내려가는 순간 내 마음속 상처들이 마법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적은 없었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도 그렇습니다."라고 한 저자의 말처럼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나의 이런 생각들이 내가 한심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겠구나"하는 안심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준다.


철이 들면서부터 '완벽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은 없다'라고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유년기에 내가 겪은 무언가의 '결핍'이나 무의식에 남아있는 '부당한 대우', '환경'의 힘을 믿지 않았다. 믿게 된다면 나의 유년기를 모두 바꾸고 싶은 과거라고 인정하게 될 것 같고, 불운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나의 오래된 상처들을 저 멀리에 두고 뒤집어보지 않았다.


저자는 상담자들의 사례를 객관적이고 담백하게 풀어준다. 때로는 그들에게 냉정한 조언을 해주며 이렇게 말한다.


마음 깊은 곳을 파내려 가 내면의 자신,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일은 본인이 주도적으로 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에 대해 가장 잘 감지할 수 있는 사람, 스스로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도 오직 자신뿐입니다. - 천 개의 공감, p.18


자기 알기, 가족 관계, 성과 사랑, 관계 맺기의 4개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은 자녀나 부모 등으로 편향되어 있는 질문이나 답변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남자와 여성, 약자와 강자, 그리고 아빠와 엄마 등의 다양한 시각에서 각자의 인간이 겪는 어려움을 다양한 시선으로 풀어준다.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반대 입장의 누군가의 위치에 나를 내려놓게 한다. 자연스럽게 상담자들의 사례를 따라 각 역할에 감정이입을 하며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내가 다양한 역할을 맡아 연극을 해본 것 같이 상처를 준 사람, 받은 사람 모두의 입장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딸을 향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엄마에게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식은 부모의 욕망을 대신 성취해 주는 대체물이 아니며, 부모의 감정적 앙금을 받아 내는 하수구도 아닙니다. - 천 개의 공감, p.99


나의 엄마는 어떨까. 객관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았다. 우선 나의 엄마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다룰 줄 아는 것 같다.


우리 마망이가 예전에는 참 너그러웠는데 애교도 많고 그랬는데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요는 이렇다. '예전에는 나에게 기쁨과 행복만을 주는 딸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화를 자꾸 내고 엄마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를 않으니 엄마는 너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


이 말을 들으면 "아, 그래. 근데 밥은 먹었어?"하고 대화 주제를 돌리고는 했다.


엄마는 나에게 '너는 항상 나에게 좋은 에너지만 줘야 하는 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감정을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부여해왔으며,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런 역할을 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온 것 같다.


휴직을 하면 친정에 내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자던 엄마와의 의견 충돌 문제로 돌아와 보자. 어제 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대략 10번째로 자꾸 친정으로 내려와 있으라 하는 엄마에게 나는 화를 눌러가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 내가 좀 소심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잖아. 이번에 쉬어보려고 한 것도 그러다가 병이 난 것 같아서 나 혼자 차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랬더니 엄마가 하는 말


(슬픈 목소리와 말투로)마망이는 엄마랑 있고 싶지 않은가 보네.
나는 우리 딸이랑 같이 있고 싶은데...
내려와서 엄마한테 속이야기도 하고 그래 응?


엄마는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본인의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나의 죄책감을 건드린다. 레퍼토리처럼 그에 뒤이어 신세한탄이 이어진다.


내가 식당을 하면서 얼마나 많이 고생을 해서 너희를 키웠냐.
나는 오죽했겠냐.


엄마의 한탄을 들어주다가 내가 한마디 꺼냈다.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안 돼. 그건 나한테 죄책감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엄마는 항상 그랬지. 언니들한테 속상한 거, 아빠, 할머니, 동생한테 속상한 거 다 나한테 풀었잖아.' 하는 억울한 생각에 몇 마디 보태니 "그건 니가 젤로 편하니까 그랬제. 이제 나는 암말도 못하겄네." 하는 엄마.


나는 다시 받아쳤다. "엄마 속 이야기하라고 하니까 내가 서운했던 거 이야기한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아무 말 못 해. 그리고 항상 생글생글 웃는 딸은 없어 엄마." (많은 발전이다. 심리학 책 독서를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내가 울거나 화만 내버렸지, 이렇게 또박또박 말로 내 감정을 설명하지 못했다.)


어제의 통화는 분명 이런저런 솔직한 대화가 통한 듯했는데, 토요일 오전 엄마에게 전화가 다시 왔다. 결론은 "엄마 말대로 안 할 거면 다시는 전화도 하지 말고 오지도 마라"였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전화를 들고 있던 그때, 요가원 앞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들숨과 날숨으로 나의 화를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 애정을 구걸하지 않았다. 엄마도 나도 상황을 객관적으로 다시 볼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오빠 : 마망이 주말인데 엄마랑 싸웠어?
마망 : 싸운 건 아니고, 내가 엄마의 에고(또는 분노)에 먹이를 주지 않았어.
오빠 : 그럼 내가 어떻게 중재를 하면 될까?
마망 : 응 오빠 아무것도 하지 마.
오빠 : 왜??
마망 : 엄마의 인생이니까. 엄마가 선택한 거야.


요가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혹시나, 요가를 통해서 경험한 알아차림이나 깨달음이 너무 좋다고 노부모님들에게 요가나 명상을 강요하지 마세요.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본인이 살아온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깨달음이 오히려 그들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바뀌어야 해요."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사랑해주고받아주고 싶지만,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요즘 부쩍 마음이 어려워질 때가 많다. 아직 엄마의 미운 부분까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3, 4 챕터의 상담 사례를 마저 읽으며 나를 이해해보고, 나아가 엄마의 상처도 되짚어보고 유추해보려 한다. 내면에 떠오르는 왜곡된 생각들에 말대꾸하는 인지치료 연습을 해보니 이제는 소리 내어하는 말대꾸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너무 신기한 요즘이다. 지금은 당장 나와 엄마가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지금을 지나서 나도 엄마도 우리 가족들 모두가 더 행복해지길 바랄 뿐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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