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더 ~ 잘 지내고 있는가?

내 친구 군대 보내기(공대여자 말고 그냥 나)

by mamang


불타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선배들은 우리를 4~5명씩 묶어 수강신청을 도와줬다. 우리를 담당한 선배는 학점 따기 좋은 과목, 여학생이 많은 과목(나도 모르게 이 과목도 수강 신청했다), 학생 출결관리를 대충 하는 과목들을 야무지게 집어줬다.


나는 대학 1년 내내 수강신청을 같이 한 남사친 3명과 함께 다녔다. 여학생들이 많은 수업에서 예쁜 여학생들을 곁눈질로 함께 보며 수업을 들었고, 공대 후문에서 많은 김치볶음밥을 먹었고, 많은 공강들을 때우며 보냈다.


친구들은 나에게 '여자가 시켜주는 소개팅, 미팅'의 위험성을 알려주었고, '여자가 예쁘다고 하는 여자'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에게는 "너도 남자 친구 사귈 수 있어! 나는 공대여자 같은 여자랑 결혼할 거야." 하면서도 "내 친구 중에 공대여자 있어! 다른 과! 소개팅할래?"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추운 공대를 벗어나 따뜻하고 공기도 다른 인문대로 진출해보겠다고 했다.




6개월이 지나지 않아도 살이 빠지지 않는 나를 포기할 줄 모르는 남사친들은 나에게 인기 많은 여자가 되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피시방에서 하는 총싸움 게임(써든)에 가입하는 방법, 총을 쏘는 법, 앉았다 일어나는 법과 어떻게 숨어서 헤드샷을 날려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시크하게 총 좀 쏴줘야 남자들이 반한다고 했는데, 나는 자꾸만 헤드샷을 당하는 통에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그다음으로 내 미니홈피 BGM 선곡을 도와주었고, 노래방에서 어떤 선곡을 해야 동아리 뒤풀이, 학과 행사 때 어필할 수 있는지도 알려줬다. 친구들은 부디 제발 소찬휘의 'Tears'만은 참아주라고 했으며, 나는 "너희들이나 임재범의 '고해' 좀 제발 그만 불러라" 하고 항의했다.


친구들과 1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남자, 여자가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장 친했던 내 친구 진모 씨(살만 빠지면 주진모가 될 거라며 붙은 별명)에게는 "나는 네가 외국에서 결혼식 한다고 해도 꼭 갈 거야! 너도 그럴 거지?" 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작년, 올해에 각각 결혼했지만 서로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지금은 서로에게 미안해서 연락도 못하고 있다. 허허.)




대학 2학년이 되니 친구들이 한 명씩 군대에 갔다. 각자의 남사친들을 차례대로 군대에 보낸 토목 여학우들은 뭉쳐 다니며 함께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렇게 함께 사회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때쯤 우리는 군대에서 걸려오는 수신자부담 전화에 고통받고 있었다. "야! 나야! 이거 전화 수락해주..." 짧은 어필의 시간이 주어지는 이 수신자부담 전화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군대 안에서 멈춰있는 2년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은 본인의 여자 친구에게 붙일 편지를 써야 한다며 우표 좀 보내주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자 친구에게 사용하는 전화카드를 우리에게는 쓰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쌍욕을 하면서 "내가 너의 호구니 친구야?" 했지만, 사실 1학년의 기억과 추억들만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그때 좋았는데. 그때 그거 기억나?" 하는 친구들이 그 시간 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참 속상했다.


여학생들이 비교적 빨리 사회에 나올 준비를 하는 동안 그들은 나보다 2년 늦은 시간표를 갖게 되었다.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낼 때 많이 울던 고무신은 꼭 신을 거꾸로 신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잔정이 많아서 금방 다른 데에 눈을 돌린다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친구들을 군대에 보내면서 훈련소 앞에 친구들과 따라가서 울며 배웅하기도 했고, 군대 들어가기 전에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너 없으면 나는 누구랑 노느냐며 한참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매일 전화해도 받을 거라고, 편지도 정말 자주 쓰겠노라며 약속도 했다.


그런데 매일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하는 친구들과의 대화는 점점 귀찮아졌고,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에 비해 바깥의 나는 자꾸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그때 즈음 나는 친구들이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바깥세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조급함에 쫓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동기 남자애들과 멀어졌다.




공대여자 : OO이 제대했데! 들었어?
토목 여학우 : 그래? 우리도 이제 예비년이네.
공대여자 : 예비역 친구니까 예비년이야? ㅋㅋㅋㅋㅋ


학교에 돌아온 친구들은 내가 2년 전에 들었던 과목들부터 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3년 전에 나와 함께 들었던 과목들을 다시 수강 신청하며 그때의 방탕함과 방황으로 인하여 학점에 구멍이 났으니 메워야 한다고 했다.


예비역 : 야 공대여자야. 이 과목 어때?
공대여자 : 아. 그 교수님 수업도 시험도 빡세.
예비역 : 아! 그래? 그럼 듣지 말까?
공대여자 : 그래도 부전공 같은 거 안 하고 전공 심화하려면 전공을 좀 들어놔야 하지 않겠어?
예비역 : 오 역시! 고마워! 땡큐!


솔직히 말하자면 위의 예시처럼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해주지 못했다. 고백건대 친구들의 2년이라는 멈춰있는 시간이 너무 안타까웠던 처음과 달리, 군대에 다녀와서 2년이 늦어진 친구들에게까지 따라 잡히게 될까 봐 나중에는 무척 조바심이 났다.


영어공부, 대외활동 등의 스펙을 준비하느라 2년이라는 최대 휴학기간을 다 써버린 나는 "너도 군대에 다녀왔냐"는 놀림을 선배 예비역들에게 자주 들었으니까.


그 무렵, 나는 사기업들의 공채 전형에서 줄줄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여자인 게 문제인지, 실력이 문제인지 하는 생각에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여자 선배들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고 공부하기 어렵더라도 공기업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취업에 대한 보장은 없었지만, 그나마 성별로 서류에서부터 필터링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후 하나 둘 복학하는 동갑내기 예비역들이 늘어나면서 나는 아직 취업은 물론이고 졸업도 못하고 예비역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비년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쌓여가면서 나는 괜스레 남자 동기들에 비해 여자인 내가 아주 큰 약점을 가지고 있는 듯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시작부터 여자라는 취약함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직업을 갖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해맑게 어울렸던 예전과는 나의 결이 많이 달라졌다.


사회에 나올 본격적인 준비를 하는 그때부터 나는 너희는 남자, 나는 여자로 우리를 나누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애를 쓰고 양손을 꽉 쥐어야 하나 둘 겨우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선배들을 오빠라고 불렀지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남자로 살아오면서 나눴던 그들만의 끈끈한 연대를 내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그들은 나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기는 할까. 하는 생각에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 무엇보다 내가 정말 지원서에 써 내려간 것처럼 여성만의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과 융통성으로 그들보다 더 나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대학 생활 내내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은 남자들에게, 꼰대 예비역 선배들의 잔소리를 듣는 것도, 조교들과의 의사소통도 그들을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자들에게 미뤄왔던 게 떠오른다. 편하게 지내고 싶어 내 의무를 다 하지 않았는데 그제야 나도 끼워주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취업을 너무 하고 싶었기에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정말 되고 싶은 사람을 자기소개서에 그려 넣었고 취직하면 정말 그렇게 열심히 할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무슨 일이든 발 벗고 나서서 열심히 하는 사람, 남녀 구분 없이 최선을 다 하는 사람, 무엇보다 남자의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들과 여자의 장점을 모두 갖춘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사람으로 나를 포장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단 취업부터 하고 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예비역 친구의 고군분투 취업 준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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