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여행기
가장 오래된 올리브 농장 방문기
Da Olivi Secolari
나에게 이탈리아는 아무리 보아도 싫증 나지 않고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나라이다. 이곳에 대한 허기와 갈증은 하루하루 더 커져만 간다. 10년 가까이 로마와 베네치아에 살면서 이제 볼만큼 봤다는 생각이 몰려올 때면 숨겨놓은 매력을 발산하여 나의 교만을 무너뜨리고 나를 다시 이 땅에 붙잡아 놓는다. 세계적인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표현처럼 현기증 나는 고딕 성당이나 거대한 피라미드는 없고 또 인간을 압도하는 장엄한 풍경도 없다. 하지만 유럽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올리브나무 한 그루에도 남다른 이탈리아 다운 무엇이 존재한다.
200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올리브 밭을 한국의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이탈리아 남부 유명 관광도시 소렌토, 포지타노, 아말피에 비해 유명세는 덜하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뿔리아 Puglia에 있는 올리브 농장이다. 그들의 자부심인 올리브 열매는 지금도 뜨거운 남부의 태양 아래서 알알이 여물고 있다. 올리브 밭으로 떠나기 전에 이 나무의 기원을 알아보자.
대부분의 유럽 역사처럼 올리브 이야기도 이 곳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유네스코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테네에서 인간과 올리브의 첫 만남이 시작되었다.
먼 옛날 이 아름다운 땅을 가지기 위해 지혜의 신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대결을 시작했다. 이 지역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선물을 주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그들에게 말과 샘을 선물하며 환심을 샀다. 반면 지혜의 신 아테나는 땅을 향해 한 창을 던졌는데 땅에 꽂히자 곧 그 창은 올리브 나무로 변했다. 사람들을 말과 샘보다 이 올리브 나무를 더 좋아했고 결국 아테나가 승리한다. 그리고 이도시를 아테나의 도시 '아테네'라 선포하였다.
그리스 크레타 사람들은 연간 30리터 정도의 올리브기름을 소비한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소비량이며 가장 장수하는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어쩌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선택이 지혜로웠음이 지금도 증명이 되고 있는 것이다. 높은 도시라는 뜻인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면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그 뒤편에는 아테나가 선물했다는 올리브 나무가 지금도 생명을 이어간다. 물론 그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없다. 올리브의 기원도 지금의 레바논과 이스라엘 지역인 페니키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스인들은 탁월한 이야기 꾼들이다. 풍풍한 상상력으로 사물을 묘사하고 표현했다. 아테나가 선물했던 나무가 남아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녀의 선물을 닮은 올리브 나무를 나는 이탈리아 남부에서 만났다. 다시 이탈리아로 떠나 보자.
방문할 올리브 농장으로 가는 길의 풍경은 자꾸만 차를 멈추게 했다. 흔들리는 차에서 바라본 올리브 나무와 야생화는 인상파 그림이 되고 자동차 창은 그 작품을 담아내는 액자가 되는 곳이다. 수백 년을 버텨 온 올리브 나무와 한철 피었다 지는 야생화의 조화는 오묘했다. 앞을 볼 수 없게 끝없이 운전자를 유혹했다.
남부의 태양 빛은 머금은 얼굴과 미소를 가진 농부가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호탕함과 정겨움이 느껴진다. 간단한 소개와 인사를 나누자 곧 농부는 이곳의 자랑인 올리브 나무를 보여주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올리브로 유명한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과 토스카나 그리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터키를 다니며 유명한 밭과 질 좋은 올리브는 열매는 꽤 많이 접해 보았다. 그리고 미국과 호주를 여행하며 아찔한 높이와 압도적인 두께를 가진 나무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이 올리브 나무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문명의 손이 닿지 않는 원시림이 아닌 문명 속에 심긴 이유 때문일 일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과 역사를 거쳐왔을까? 감히 가늠할 수 없다. 반복되는 자연과 인간의 도전이 이겨내고 서있는 늙은 나무 한그루에서 경이로운 생명력을 느낀다. 이곳에 3000년 정도 된 올리브나무도 있다고 한다. 보통 올리브 나무 수명은 500년에서 길게는 1000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남부 사람들의 허풍을 감안하더라도 이곳에는 수령이 1000년이 넘는 나무들이 즐비하다. 큰 나무는 성인 남성 10명 정도가 둘러서야 할 정도이다.
올리브 밭을 등지고 지하로 내려가면 올리브 열매를 가공했던 공간이 나타난다. 기원전 9세기에 자연동굴이던 이곳에 사람들이 들어왔고 이후 확장되어 올리브를 가공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남부 햇살을 피해 작업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로마 곳곳에 만들어져 있는 지하묘지 카타콤베를 닮았다. 올리브기름을 추출했던 장비들은 지금도 남아있다. 올리브기름은 열을 가하지 않고 27도 이하의 온도에서 냉압착(올리브를 빻는 과정)하여 원심분리기에서 물과 기름을 분리하여 기름을 추출한다. 세탁기 탈수 기능을 생각하면 비슷하다.
농장 견학을 마치고 일행들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이제 오감으로 이곳 올리브를 체험하는 시간이다. 수확 시기와 기름 추출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는데 와인과 비슷하기도 하다. 귀로 듣고 입으로 확인하면서 신의 선물이 주는 행복을 느꼈다.
그날의 글과 사진을 하는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우리는 이탈리아 슬로 푸드 운동에 열광하고 그들이 지켜온 옛것 보기 위해서 이 나라를 찾는다. 길에 흔한 영어 안내 하나 없는 이 불편한 나라에는 그 불편을 감수하며 옛것을 지켜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 느림의 맛과 멋이 행복을 찾아 이탈리아를 방문하는 바쁜 한국 여행자들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심플하게 올리브기름과 소금으로만 맛을 낸 이탈리아 음식을 먹어보라. 양념으로 인해 느끼지 못했던 원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따라올 것이고 이탈리아에 머무는 기쁨이 베어 나올 것이다.
글 사진. 임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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