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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일 Aug 06. 2020

나폴리 여행기

나폴리를 보라 그리고 죽어라


나폴리는 반전의 도시였다. 오 솔레미오, 산타루치아 그리고 돌아오라 소렌토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선율로 기억되는 이 도시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지저분함과 무질서의 도시였다. 일과 여행으로 이도시를 여러 번 더 다녀오며 나폴리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음식과 문화 속으로 조금씩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도시는 내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나폴리 해안과 그 넘어 떠있는 카프리 섬
아말피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포지타노 마을
A.D. 폭발하여 폼페이를 집어삼킨 베수비오 화산

나폴리는 가진 게 많다. 세계적인 휴양지 카프리 섬이 눈앞에 떠있고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아말피 해안도로도 가깝다. 폼페이라는 도시를 삼켜버린 베수비오 화산도 나폴리 어디에서든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잔인한 화산 폭발 때문에 고대 로마의 문명이 인간 손에서부터 보호되었고 잘 전시되어 있는 도시다. 오래된 나폴리 골목에 들어서면 관광객들이 아니라 멋쟁이 이탈리아인들이 가득하다.

나폴리 유명 피자집 다 미켈레에서 피자를 굽는 요리사 ㅣ 줄리아 로버츠 주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촬영지

이탈리아의 음식은 남부의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피자뿐만 아니라 해산물 파스타도 이곳이 시작이다.

이곳 사람들은 피자 잘 굽는 요리사를 '피자욜로'라 부른다. 번역하면 피자 장인이라는 뜻인데 그들이 구워낸 갓 나온 피자를 한입 물면 원조가 주는 깊은 맛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한 유명 피자집이다. 이 사이즈의 한판 가격이 4유로이다. 물가가 비싼 유럽에서는 아주 저렴한 편이다. 참고로 내가 살고 있는 베네치에서는 피자 한 조각에 4유로이다. 

음식이면 음식, 역사면 역사, 음악이면 음악, 풍경이면 풍경 

유럽의 어떤 도시와도 비교해도 눈부신 이 도시의 매력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나폴리 식당 메뉴판에는 피자 소스페사 Pizza Sospesa라는 메뉴가 있다. 따로 표시된 가격이 없다. 피자뿐만 아니라 커피 소스페사 cafe sospesa라는 메뉴도 존재한다. 다양한 음식 뒤에 소스페사 sospesa라는 메뉴가 붙어 있다. 소스페사 메뉴는 무엇일까? 

엘레나 코스튜코비치라는 러시아 여행작가의 경험담이다. 이탈리아 식문화를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으로 유명해진 그녀는 나폴리의 한 카페를 찾았다. 작은 테이블을 잡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중년의 남성 두 명이 커피 세 잔을 주문하고 한잔은 소스페소 sospeso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두 잔의 커피만 마시고 카페를 나섰다. 한잔은 다음번에 마시겠다는 뜻이었을까? 잠시 후에 네 명의 여성이 카페로 들어와 네 잔이 아닌 다섯 잔의 커피를 주문했다 한잔은 소스페소라며 나갔다. 그 작가는 이 상황이 궁금하여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소스페소 커피가 무엇인가요?'

그러자 카페 주인은 바로 답을 주지 않고 잠깐 기다려 보라는 말과 함께 다른 이의 커피 주문을 받았다. 기다리던 그녀는 카페 주인이 정답을 말해주기 전에 소스페소 커피에 대한 의문을 거두었다. 

한 노숙자 행색을 한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여기 나를 위한 커피가 있나요?' 

라고 묻자 카페 주인장은 흔쾌히 커피 한잔을 내어주었다.

나폴리만의 문화 소스페소 Sospeso는 나눔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그럴 수 없는 형편을 가진 자에 대한 배려이다. 그들은 구걸하지 않고 향긋한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열 수 있다. 낯선 사람에게 커피 한잔을 대접하는 따듯함이다. 북부 지방에 없는 따듯한 피가 흐르는 남부 사람들의 문화다. 개인주의가 강한 유럽에서 보기 드문 오지랖이다. 

여행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순간도 사람이고 행복한 추억 중심에도 사람이 있다. 결국에는 사람이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는 휴양보다는 여행이 어울리는 나라이다. 낯선 음식을 접하면서 내리는 결론이 라면보다 맛있는 파스타는 없다 일지라도 그들의 음식을 먹으로 그들의 문화로 한발 더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싫으면 그냥 동남아의 휴양지에 누워있는 것이 최고다. 시끌벅적한 나폴리의 거리를 걸을 용기 있는 여행자에게 이 도시는 정과 인간미를 전한다. 어지러움은 곧 사라지고 이 유쾌한 사람들이 내어놓는 그 무엇으로 인해 남부의 커피 향보다 더 진한 아쉬움을 안고 이곳을 떠날 것이다.


Vedi Napoli e poi muori / 나폴리를 보라 그리고 죽어라.


글 사진 임성일

유부브  임성일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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