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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Mar 30. 2020

봄의 향기

햇빛에 취하다


 파도가 밀려와 갯바위에 부서진다.

쏴아~


 아침 6시가 되자 일제히 시동을 켜고 일렬로 먼 바다로 향하는 고깃 배들이 한참 항구를 빠져 나간다. 무전을 통해서인지 이미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인지, 한번의 혼란도 없이 배간 거리마저도 자로 맞춘듯 질서정연한 모습, 하얀 거품을 쏟아내며 등실등실 춤을 추는 파도를 가르며 나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제 막 빨간 해가 수평선 저멀리 기지개를 켜고 아침을 맞이한다. 만선을 기대하며 멀어져 가는 배의 뒷모습을 간절히 바라보는 엄마와 아이의 맞잡은 손이 배가 떠난 항구에 아련히 그려진다.


 금방 햇살이 차오른다.

그늘진 산등성이 도시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고 배 떠난 항구는 고요를 되찾았다. 고요한 파도따라 넘실대던 낚시 찌는 행방을 찾을 수 없는데 바다에 비친 햇살은 빨갛게 넓게 퍼졌다. 새벽 5시부터 부랴부랴 낚시 가방을 싸들고 나설때부터 확인한 아침 기온은 영상 5도였다. 손이 시릴까 염려했지만 다행히 낚시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고 아무도 없이 고요할 것이라던 예상은 항구를 떠나는 배들로 인해 잠시 소란했지만 처음 본 장관을 이루었다. 요란하던 파도와 쌀쌀하던 바람은 찬란한 해돋이로 인해 잠시 잊혀졌다.


거제도 장승포 앞바다에 던져 놓은 낚시대와 일출



[오늘은 봄향기에 취해보리라!]


 오랫동안 낚시를 해왔던 취미 생활은 배를 타고 나가지 않으면 그 흔한 손 맛을 느끼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다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새벽 산을 타고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는 즐거움과 새벽 낚시를 떠나는 즐거움을 비교해 보라면, 돈 들이지 않고 새벽의 신선한 공기와 조용하고 음산한 산길을 혼자 올라가는 산행을 단연 꼽겠지만, 그도 매일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아까운 잠을 아껴 배를 타고 새벽 낚시를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실행 옮기지 못했다. 갯바위나 방파제 낚시도 밑밥 등 준비해야할 재료가 적지 않은데 배를 타고 나가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전에 한 번 해봤던 선상낚시로 인해 당연히 바다로 나가야한다는 사실을 인지 했음에도!


 물때가 바뀌어 급속하게 물이 빠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잡았던 놀래미 몇 마리 바다에 던져주고 낚시대를 걷어 가방에 챙겨 넣고 차로 돌아온다.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려 근처 편의점에 들러 주문해서 깊숙히 들이킨다.


[귀가할까...... 옥녀봉을 오를까? 아침 햇살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까?]


 잠시 장소 고민을 하다가 차를 쉽게 댈 수 있는 옥포대첩 기념관으로 향한다. 차에서 내리지 않아도 망망대해를 바라 볼 좋은 뷰가 옥포에서 덕포를 넘어가는 언덕 길에 있지만 웬지 옥포 대첩 기념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침 조깅 코스로 즐겨 이용했던 이 언덕 길엔 해변으로 나 있는 산책로와 더불어 왕복 코스로 거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선주사 외국인들도 주말이 되면 산책로로 자주 이용하는 이 곳은 아침이 되면 조깅과 산책, 공원에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벼, 가족들이 동네 휴식처로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옥포에서 덕포 넘어가는 언덕길에 바라보년 대우조선해양



 요번 겨울은 춥지 않았다.

오히려, 겨울이 이렇게 춥지 않아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간단한 옷차림에도 겨울의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눈 덮인 설악산을 올랐을 때도, 비내리는 지리산에 올랐을 때도 춥다는 느낌보다 아직도 건강하게 활동하며 땀흘리고 있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으니 춥지 않았던 것이 당연한지 몰랐다.


 가을이 끝나던 때부터 봄이 오는 향기가 가득한 바닷가 햇살 아래, 올 여름은 열심히 활동적인 일을 하면서 땀흘렸으니 어쩜 겨울의 맹추위를 느끼지 못했으리라! 노동은 즐거웠고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중하고 신성했으므로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감사했다.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언제나 푸른 소나무 길엔 따사로운 햇빛이, 아침의 찬기운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찬란했다. 저 햇빛 아래 앉아 커피를 마시면 그만한 사소로운 즐거움도 없겠다 싶어 벌써 마음이 달아 올랐다. 주차비를 지불하고 용포루까지 한걸음에 달려 도착하고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몇개 안되는 곳에 주차를 하고 곧장 내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제일 명당 벤치를 바라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어 혼자만의 호사를 누릴 수 있으리라!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아침엔 느낄 수 없던 향기가 진동하는 듯 따사로운 햇살이 현기증을 느끼게 할 만큼 황홀하게 나를 감싸 안았다. 잠시 눈을 감고,


'음......'


 햇빛에 취했다.

부드럽게 살갗을 감싸는 포근하고 감미로운 햇살, 나풀거리는 바람이 볼을 스쳤다. 잘 정리된 정원의 잔디는 아직 푸른 싹을 틔우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녹음이 우거질 게 뻔했다. 그렇게 봄향기에 취하고 바쁜 일상으로 접어들면 어느 새 여름이 그렇게 불쑥 찾아와 태양을 원망하겠지만 시원한 나시 옷에 단정하고 검소하게 멋을 낸 할머니들을 보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누가 만들어 놓았을까? 사람들의 길가에선 보이지 않는 비탈길에 심어 놓은 누군가의 빨간 마음

 잠시 정원 위를 걸어보았다.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보다 편안한 땅의 촉감이 발 끝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이리저리 둘러 보는 길에 정원에 떨어진 동백꽃 잎을 모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누군가의 정성이 눈에 들어왔다. 선혈처럼 빨간 꽃에 누가 저렇게 마음을 담았을까? 첫 사랑을 탐하고자 정성을 들인 소녀들의 바램이었을까? 이루지 못한 사랑을 추억하는 중년의 그리움이었을까! 고운 마음 눈으로 호강하며 가슴에 담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마치 누군가에 들킬까 염려되어 비탈길 아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몰래 심어 놓은 빨간 마음을 혼자 몰래 본듯한 설레임과 기쁨이 일었다. 누군가가 뿌려 놓은 그리움을 줍듯, 행여 누군가 볼까봐 얼굴이 붉어졌다.



 봄 향기 가득한 공원은 이제 봄의 여신 페르세포네를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봄이 오는 길목에 항상 생각나는 땅의 여신 데메테르와 제우스의 딸인 페르세포나는 수선화에 정신이 팔린 사이, 지옥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 되어 지하세계로 사라져버렸다.  찾아 삼만리,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며 식음을 전폐한 끝에 지상의 모든 생물은 겨울처럼 삭막해져 버렸다. 보다 못한 제우스는 동생 하데스의 결혼을 위해 공범 노릇을 했지만 세상의 모든 사물은 시들어 병들고 오뉴월 서리처럼 한 맺힌 데메테르의 실의를 보다 못해 이실직고하고 협상을 한다.


 페르세포나와 달콤한 신혼에 빠져버린 하데스, 이왕 버린 몸 지아비로 섬겨야 하는 페르세포나, 동네방네 소문 나 빼박 인생망친 딸을 위해 통곡하는 데메테르는 1년 열 두달 중, 4개월만 하데스에게 딸을 맡기기로 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갖기로 제우스와 협상을 타결한다. 그리하여 고된 시집살이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시기에 친정을 찾는 딸을 맞이하는 엄마의 가슴이 설레듯 땅은 새록새록 새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한 여름 무르익은 곡식을 수확하는 가을이 갈 때즘, 도둑놈 하데스에게 딸을 보내는 시름에 세상만사 시들어 가는 겨울을 보내는 사계절이 탄생하게 되었으니, 이 봄의 향기는 페르세포나의 향기려나!


프랑스 르와르 강의 유채꽃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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