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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Aug 17. 2020

겨울 설악산 2, 2020년 1월 18일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과의 악몽


***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과의 악몽


 내가 경험한 첫 번째 그들의 간섭은 ‘담배 끄세요’였다. 이른 아침 담배 피우는 곳에서 담배를 끄지 않고 밖에 있는 젊은 직원에게 ‘뭐 좀 물어봅시다’면서 말을 시작하려 하자, ‘담배 끄세요, 그냥 앞에 버리세요. 담배 끄세요’ 가소로운 웃음을 지으며 명령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국립공원에서 담배 피우면 안 됩니다’라는 설명을 들어보지 못했다. 가끔씩 산행 길에 만나는 플래카드에서 보기도 했던 것 같지만 산행 길에 담배를 피우지 말고 취사를 금한다는 말은 순전히, 사람을 통제의 대상으로 판단한 것이며, 뒤치다꺼리가 귀찮아 잔소리를 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대자연을 배경으로 피우는 담배가 자연의 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한편에 울타리를 치고 흡연장을 만들어 놓고 조금만 벗어나도 화를 내며 담배를 끄라는 말이 그들이 할 일이었을까! 담배를 피웠던 죄로 안전한 산행과 자연의 황홀함을 즐기려는 의도는 재수 없게 하산을 하는 계기가 되어 그의 비웃음과 가소롭게 쳐다보는 미소가 겹쳐 잊히지 않았다.


두 번째 기억은 악몽이었다. 

외인부대에서 아프리카 콩고 내전 참전 후에 한국으로 들어와 혼란한 정신을 가다듬고 싶었다.


[지독한 장마가 지리산에 가득했다.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장마철의 산은, 땀인지 비인지 분간하기 힘든 냄새가 불쾌했다. 높은 습도 탓에 땀이 비 오듯 했다. 습관처럼 찾곤 했던 지리산이라 장마도 상관없이 오른 길이라 무거운 마음에도 즐거운 마음이었다.


“아니 왜 안 주무시고?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불 켜진 산장 안 불빛이 기분 나빴지만 짜증을 내기 전에 시간을 확인하고 목석처럼 앉아 있는 사람을 향해 물었다. 밤 11시였다. 산장에는 10시면 소등했다.


“같이 온 사람들이 아직 안 올라왔어요”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장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미동이 없었다.


“뭐라구요?”

“저녁 6시쯤 저와 친구만 올라오고 여자 셋과 남자 친구 한 명이 아직 못 올라왔어요”

“산장지기에게 얘기했어요?”

“아까 내려갔어요. 7시 즘……”


산장지기의 방문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잠겨 있었다. 잠이 확 달아났다.


“위치는 요?”

“폭포 근처 이정표 있는 곳인데……”


 랜턴을 머리에 쓰고 산장을 나섰다.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문 밖에선 랜턴 빛을 받은 산짐승의 눈빛이 보였다. 폭포라면 산장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빗속을 짐승처럼 뛰었다. 폭포로 연결되는 조그만 계곡에 이르니, 물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조금 아래, 물이 불어 날 때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나무다리를 이용해서 건너고 삼거리까지 내려가서 고함을 질러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허탈하게 산장으로 돌아와 산장지기의 문을 땄다.


“주인 없는 방에 뭐 하는 짓이오?”


 등산객 하나가 큰일 난 듯 소리쳤지만 무시했다.

무전기를 찾아 주파수를 맞추었다. 마침 산 아래 관리공단과 통신이 닿았다. 상황을 전달한 후, 다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네 시, 앉았던 그 자리에서 목석처럼 졸고 있는 동료 학생을 깨워 다시 비가 조금 누그러진 산장을 나섰다. 삼거리에서 몸을 피할만한 곳은 다 뒤적여 보았지만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산장으로 돌아와 배낭을 챙겨 메고 길을 나서자 젊은 여자 한 명이 따라나섰다.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을 때, 상황이 염려되어 공단 옷을 입고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엊저녁에 실종 신고 건, 혹시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 들었습니까?”

“니가 신고했나?”


 나이도 얼추 비슷해 보이는 직원이 다짜고짜 비웃으며 반말을 했다. 신고 내용에 불만이 있는 듯했다. 반말에 대답 않고 한 번 쏘아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따라왔던 여자가 자초지종을 얘기해 줬는지 나중에 따라 나온 직원에 내게 말을 붙이려 했지만 이미 그의 신뢰도는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기분은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직원은 한국의 어느 특수부대 출신 즈음으로 보였다. 십중팔구, 공수부대 정도로 보였다.

 

 상할 대로 상한 기분에 라면도 먹지 않고 자리를 떴다. 따라오는 여자와 함께 삼신봉을 거쳐 청학동으로 하산해서 진주로 가 저녁을 같이 먹던 와중에 접한 지방 신문에, 지리산에서 조난당한 여학생 세 명과 남학생 한 명을 구조한 산장지기 기사가 실렸다. 불어난 빗물 때문에 계곡을 건너지 못하고 다른 안전한 곳을 찾아간다고 먼 길을 돌아 구조했다는 것이었다. 직원이 내게 기분 나빴던 것은, 계곡의 통나무 다리를 두 번이나 건넜다는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야간 산행 하산길


봉정암의 황홀경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봉정암이 기암괴석과 눈 속에 아담하게 안겨 황홀한 불빛을 밝혔다. 절벽과 눈 속에서 빛나는 가로등 불빛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듯, 봉정암으로 내려가 여유를 즐겼다. 3층 석탑이라는 국보가 있다는 것도 몰랐었고 부처의 사리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 루트를 확인하며 새롭게 발견한 터였다. 이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사찰을 둘러싼 기암들도 경이로웠고 옛 것을 그리워하는 내게 고풍스러운 사찰은 충분한 위안을 주었다. 예전에 먹지 못했던 절 밥을 청해보려 했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곧 어둠이 질 터였다.


 백담사까지는 10km가 넘는 먼 길이었다. 올라갈 때부터 내리던 싸락눈은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랜턴에 비치는 눈발이 거세었지만 나는 점점 평온을 찾았다. 야간 산행은 의외의 긴장감과 함께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아직 체력은 멀쩡했고 낙엽과 눈이 덮여 보이지 않는 빙판길을 밟아 엉덩방아를 찧어도 즐거운 마음에 혼자 신나는 밤길에 흥얼거리며 여유를 즐겼다.

 고요한 적막 속에 깊어지는 어둠 속에 세상 걱정 없이 깊은 산중을 걷는 일은 내게 흔한 일이었다. 예상치 않게 지리산 밤길을 하산한 경험이 많았다. 깊은 산속에선 겨울임에도 따뜻했고 어떤 두려움보다 마음의 안정과 여유가 생기는 것이 신기했지만 오히려 한적한 마을의 어둠 깊은 길에서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던 적은 많았다. 그럴 때면 어김없는 공포가 밀려왔음에도 깊은 산속에서는 그런 두려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머지않은 곳에 불빛이 보였다.

산길에도 인터넷이 되는 문명의 혜택 덕분에 설악 만경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대피소가 나타났다.


[이곳에도 대피소가 있었구나]


어둠이 내리는 설악산 하산길, 교각이 어둠에 잠기며 멋스러운 풍경을 만들었다.



 모든 것을 잊었던 덕분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창문을 두드렸다. 창문 넘어 직원이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쳐다보곤 문을 열고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8시였다. 내려오는 길이라고 말하자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영시암에서 자겠다고 했지만 위험하니 내려가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피소에서 자기 싫으니 내려가겠소. 못 본 척해주세요. 잠을 자도 영시암에서 자겠습니다.”


 젊은 직원은 영시암에서 잘 수 있는지는 가서 물어봐야 한다고 말했고 나이 든 직원은 위험하니 못 내려간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아, 모른척하고 갈걸 괜히 들어왔네요. 그냥 백담사까지 갈걸”

“이 시간에 백담사를 간다구요? 멧돼지 출몰해서 위험하니 통과를 허락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서 고수의 풍모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고수는 무슨, 아무것도 준비 안 한 사람이!”


 무시하고 통과를 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지만 버너가 없으니 빌려달라고 했다. 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재수 없기는!] 가스는 살 테니 버너는 빌려달라고 했다. 나이 든 직원이 낡은 버너를 들고 나왔다. 가스를 사서 끼워 넣었다. 산장에는 등산객 한 명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 대피소



 중간에 깨지도 않고 잔 덕분에 개운했다.

직원들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등산객은 아침밥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젊은 직원에게 따뜻한 물 한잔만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산발을 한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내게 꽂혔다. 경직되고 잠에서도 덜 깬듯한 눈초리를 보며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정말 아무것도 준비 안 했네요. 줄 수 없습니다”

“어제 가스버너도 못씁니까?”

“안됩니다!”


 공포영화의 모습을 한 젊은 직원의 단호한 말은 공단 직원의 수준과 이들의 교육 수준마저도 의심하게 했다. 대피소는 그들의 것이 아닌 마땅히 등산객들의 안전한 휴식처여야 했다. 설령 등산객들이 잊어먹고 온 것이 있다 하더라도 주지 않을지언정, 그 준비성이 부족한 것에 대한 비난을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단지, 따뜻한 물 한잔의 선심을 내가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비난했고 거기엔 상대의 나이도 살아온 경험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단지, 이른 아침 자신의 평온을 괴롭히는 불한당 취급이 아니던가!

 이들을 나의 논리와 지식으로 공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밖에서 요리를 하던 사람이 들어왔다. 머리가 허연 까탈스러워 보이는 노인이었다. 대피소로 들어온 그는 폭설로 인해 등반을 할 수 없다는 말을 곱씹었던 모양인지 들어오자마자, 어떻게 자신 같은 전문가의 산행을 막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내가 백두대간과 매년 겨울의 눈 덮인 산을 찾는 사람이오! 아마추어가 아닌 전문가란 말이오! 어떻게 산행을 무슨 권리로 금지한단 말이오?”


 노인의 말엔 힘과 결기, 당당함에 설득력이 있었다. 설령 그가 산에서 죽는다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다 그렇게 되는 것이고 다친다 한들, 그것은 고액 연봉을 받고 대피소를 지키는 직원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나이 든 직원이 나와서 하는 얘기는 안전을 위해 위의 지시를 따르며, 관리공단의 제일 말단인 자신들에게 따져도 소용없다는 말로써 상황을 정리하려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묻자, 어린 직원의 본분을 망각한 서비스 정신이나 사람에 대한 존중 같은 깜빡 잊어 먹고, 수줍게 커피 먹을 따뜻한 물 한잔……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물은 저 아저씨에게 달라고 하세요!”


 라고 말했다. 이런 수모와 모욕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만연한 갑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알까? 설악산의 설경이 그들로 인해 오랫동안 재수 없는 날로 기억되리라는 것을! 화가 났던 마음을 추스르고 이들 수준에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계를 주유한 얘기를 했다. 한국에 오랜만에 와보니 갑질 천국이더란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젊은 직원이 삼성물산에서 알제리 ‘나아마 프로젝트’와 ‘모스타가넴 프로젝트’를 본사에서 수행했다고 했다.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마음이 넉넉해졌으나, 그가 한 짓이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란 것을 알기나 할까?


 씁쓸하게 노인이 식사를 하는 취사장으로 내려가 다방 커피 두 잔을 탔다. 그는 조금 전의 분을 삭이지 못하고 흥분한 목소리로 어떻게 자기 같은 전문가를 무시해서 등반을 막느냐고 분노하며 내가 버너와 컵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아마추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 부끄러워라 ㅜ,.ㅜ;;;


산장을 나와 백담사로 향하는 설산 계곡은 내게 첫 소원을 들어주었다.



 30여 분도 채 걸리지 않고 도착한 백담사는 밤새 내린 눈 속에 고요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분주한 스님들의 이른 발걸음이 영시암을 향하는지 봉정암을 향하는지, 깔끔한 승복을 입고 향내 가득한 냄새를 풍기며 옆을 지나쳤다. 넓고 볼게 많다고 생각했던 눈 덮인 백담사는 백곰 같이 깊은 겨울잠에든 듯 고요하며 작고 아담했다. 어쩜 백담사가 이렇게 작을 수 없어!라고 단언하며 [다른 곳에 진짜 백담사가 있을 거야] 생각하고 ‘템플스테이’를 구한다는 절간 한 칸을 장식한 플래카드를 보곤, [진짜 백담사가 아닌가 보다] 얼른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한참을 가도 더 이상 절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 어떻게 이렇게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는가!]


서울로 돌아가는 용대리, 점심을 먹으며 낮술을 하지 않는 불문율을 깨고 도토리 묵에 막걸리를 시켰다. 10시 30분, 서울행 버스를 타고 곤한 잠에 빠졌다. 그리고 지리산을 향했다.


눈에 덮인 백담사는 그저 템플스테이를 하는 작은 암자 정도로만 보였다. ㅜ,.ㅜ;;;
2011년의 백담사.
등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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